골칫거리 '돼지똥'은 어떻게 마을 재산이 됐나
[월간 옥이네]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마을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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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넓게 펼쳐진 논 그 사잇길로 들어서니 군데군데 자리한 주택들이 보인다. 32가구 51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농촌 마을. 평범한 듯 보이는 이 마을은 '에너지자립마을'이라 불린다. 생활에 필요한 전기, 난방 등 에너지를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낸다는 것.
32가구 전 세대에는 가정용 태양광 패널(3.5kWh)이 설치됐고, 13가구는 지열 난방을 사용한다. 그 외에 마을공동 태양광발전시설(500kWh)이 설치·운영될 예정이다. 2020년부터는 가축분뇨로 퇴비, 친환경 액비, 전력을 생산하는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건립돼 필요한 에너지 자체 생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공급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얼마 전에는 마을회관을 '패시브하우스(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적절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된 주택)'로 리모델링했으니 앞으로 더욱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을 테다.
벌써 11회째, 매년 8월이면 '조롱박 축제'를 열어 마을에 손님을 초청하고 에너지 자립을 주제로 한 여러 체험활동을 통해 활력을 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에너지 절약과 자체 생산, 에너지 생산을 통한 마을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원천마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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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산업 1번지'로 이름 붙을 정도로 축산농가가 많은 홍성군. 한우 6만여 두, 돼지 48만여 두를 사육하는 등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인데, 원천마을 역시 축산농가가 많은 편이다. 닭 6만 마리, 돼지 1만 마리, 소 2000두, 젖소 250두, 염소 100두. 현재 마을에서 축산에 종사하는 가구만 여섯 곳이니 농사와 함께 마을의 주 생업에 속하는 셈이다. 때문에 축사 분뇨 해결은 마을의 오래된 숙제였다. 그러나 가업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별달리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옛날부터 있던 축사고 다 같은 마을 주민인데, 불편이 있어도 감수하고 살아가는 거죠. 가끔 얼굴 보면 '냄새 좀 덜 나게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하는 정도예요."(송영수 이장)
"어릴 적에는 지금처럼 축사가 크고 많지는 않았어요.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죠. 아무래도 지금은 농사를 지어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니, 갈수록 축산산업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죠." (마을기업 머내협동조합 황선상 위원장)
▲ 이도헌 농업회사법인 성우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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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양돈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성우농장에 소액 투자자로 참여해 재무 관리 일을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죠. 그러다 가축 전염병 창궐로 농장이 어려워지면서 이곳을 떠맡게 됐습니다. 당시 성우농장은 돼지 4천 마리를 사육하는 산업형 농장, 흔히 공장형 축산이라 하는 양돈농장이었죠." (이도헌 대표)
예상치 못한 계기로 2012년 홍성에 이주, 돼지농장을 경영하게 된 이도헌 대표. 그의 등장과 함께 원천마을은 특별한 변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와 농촌
엉겁결에 오게 된 원천마을이지만, 이도헌 대표는 마을 주민이 된 이상 마을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발전에 보탬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축사 분뇨 냄새로 인한 피해가 있음을 인지한 뒤에는 분뇨처리 시설을 지하에 만들고, 환기시스템을 자동화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힘썼다. 마을 회의와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마을을 알아가려는 노력도 계속됐다.
"외지인이라 경계하실 법한데 오히려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했죠. 농장을 직접 운영하며 축산이 마을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더욱 마을 발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2014년 마을장기발전계획에서 '에너지 자립마을'을 마을발전비전으로 세우게 되었죠." (이도헌 대표)
"함께 마을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농촌의 현실을 많이 나눴어요. 축사로 인한 피해가 있더라도, 이것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고 앞으로 농업도 에너지를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할 거라는 전망을 이야기했죠. 함께 살아가려면 '에너지 자립'이 중요하다는 것에 합의했어요." (마을기업 머내협동조합 황선상 위원장)
마을주민과 이도헌 대표는 의견을 공유하며 마을의 앞날을 그려나갔다. 그가 직접 농장을 운영하며 체감한 기후위기 심각성과 농촌의 현실이 녹아든 결과였다.
"만약 원천마을에 명산이나 관광 명소로 내세울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전을 세우지 못했을 겁니다. 원천마을을 알아가며 이곳에 황금개구리, 두꺼비, 반딧불이가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것이 친환경, 저탄소, 에너지 자립 등을 내세우는 큰 계기가 됐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한 농장 운영자로서 자연환경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송영수 이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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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마을발전추진위원회를 통해 '마을과 축산이 상생하는 에너지자립마을'이라는 커다란 방향을 설정한 원천마을은 가정용·마을공동 태양광발전시설과 지열냉난방 시설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태양광발전시설 3.5kWh 패널을 설치하는 데 지방자치단체 보조를 받아 주민들은 설치 전체 비용의 10%인 80만 원 정도만 부담할 수 있었다. 이는 2016년부터 시작, 2020년 빈집을 제외한 마을의 모든 집에 설치되며 마무리됐다. 약 700만 원 자부담 금액이 드는 지열발전시설은 13가구가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 집도 두 가지 모두 설치했죠. 한 달에 전기료가 7800원 정도 나오는데 1년에 40만~50만 원 정도의 절감 효과가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송영수 이장)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바이오에너지' 사업을 추진한 것이 다음 단계였다. 이는 가축분뇨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환경부 친환경에너지타운 사업에 지원하고자 했다. 마을기업이 주체가 돼 운영하는 방식의 사업이 처음 계획이었지만, 바이오에너지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당시, 지자체 반대로 신청 자체가 무산됐다.
"지금 같으면 놀랄 일이지만, 10년 전 상황은 그랬습니다. 결국 가축분뇨에너지화 사업은 이후 농림축산식품부 사업(표준사업비 98억 원 중 70% 지원)으로 추진하게 됐죠. 이 사업의 특성상 자본력이 있는 농업회사법인이 주관해야 했기에 저희 성우농장이 주체가 됐습니다." (이도헌 대표)
본래 계획대로 마을기업이 운영·추진하는 시설을 설립하는 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성우농장은 이러한 정신을 이어갔고 오랜 준비 끝에 2020년 12월 5일, '원천에너지전환센터'가 마을에 설립됐다. 이곳에서는 시간당 250kW, 월 단위로는 17만kW의 전력과 친환경액비, 퇴비가 생산되고 있다. 4인 세대 한 달 전력 사용량이 평균 약 300kWh이니, 하루에 대략 20가구가 사용할 전력이 생산되는 셈이다.
원천에너지전환센터는 하루 최대 가축분뇨 110톤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로, 4대의 수거 차량이 일요일을 제외하고 홍성·예산·보령 등 총 25군데의 돼지 축산농가에서 분뇨, 홍성 지역의 음폐수를 수거한다. 이렇게 생산된 전기는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전국으로 이동하고 친환경액비와 분뇨는 홍성·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무상 제공 중이다.
▲ 농업회사법인 성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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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농장은 주민들과 함께 방목 토종돼지를 키우며 마을 이름을 달아 백화점 자체 브랜드로 납품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판로가 끊기고, 방목이 어려워지며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마을 주민 대여섯 분이 참여해 토종돼지를 마을에 방목해 키웠었죠. 마을 주민이 수익금을 얻는 기회가 되었고, 인기도 꽤 많았는데 안타깝게 됐어요." (송영수 이장)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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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자립마을로 발돋움하는 원천마을과 기후위기 이야기는 2019년과 2021년 동화책 '원천마을 동화1, 2(서은영 글, 말리 그림)'로 탄생하기도 했다. 머내협동조합은 이 외에도 농산물 가공을 통한 수익창출과 주민들의 여가를 돕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마을에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신데, 함께하는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매년 여름에 있는 조롱박 축제를 준비하며, 박 공예작품을 만드는 작업도 꾸준히 하려 하죠. 마을공동 태양광발전시설 예상수익은 1억 원이고 수익금의 40%는 우리 마을 발전기금으로, 40%는 지역 에너지 취약계층 복지비용으로, 20%는 유지비용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마을기업 머내협동조합 황선상 위원장)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조롱박 축제 홍보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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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마을 마을회관 앞 논길에는 약 110m 길이의 넝쿨 터널이 있다. 조롱박, 수세미, 개구리참외, 여주, 호박, 수박 등 이곳에는 매년 여름이면 주민들이 심은 넝쿨이 주렁주렁 달린다.
원천마을 조롱박축제는 더운 여름 주민들이 어울려 놀고 활력을 더할 목적으로 시작된 축제로, 올해로 어느덧 11회째를 맞이한다. 조롱박을 활용한 공예체험, 전시, 박에 소원 쓰기 등 즐길 거리와 에너지자립마을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전시(신재생에너지로 전력 생산하는 모습)와 체험 등이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도 찾는 축제로 자라나고 있다고.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바글바글했어요. 이 작은 시골 마을에 250명이 모였으니 많지. 회관 현관에 신발이 차고 넘치는 그 풍경이 어찌나 보기 좋았는지 몰라요." (송영수 이장)
주민들은 조롱박공예 장인과 요리사를 초청해 함께 공예를 배우고 돼지고기 요리법을 익히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원천마을은 주민들 대부분이 조롱박공예가이자 요리사가 돼 축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주민들. |
ⓒ 월간 옥이네 |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원천마을 주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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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마을의 골칫거리였던 축산농가의 분뇨가 이제는 마을의 소중한 자원이 돼 가는 모습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천에너지전환센터를 혐오 시설로 생각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모두가 마을의 일원이 되어 함께 마을의 성장 방향을 고민하고 미래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이제는 원천마을을 넘어 결성면 주민자치회에서도 '저탄소 농축산업으로의 전환'을 면 단위 주민자치비전으로 제시하고, 전국에서 에너지 자립 모범 사례로 찾아올 만큼 원천에너지전환센터의 존재도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시설이 됐다.
원천마을은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자립을 통해 마을을 살리고, 그 혜택을 마을 주민들이 누리며 살아갈 날을 그려나간다. 송영수 이장은 "발전소 폐열을 활용한 마을사업을 고민 중"이라면서 "무엇보다 주민당 매월 100만 원가량의 배당금이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한다.
"농촌 마을의 인구가 줄어가는 시대, 우리 마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겨나서 오래도록 공동체가 잘 유지되면 좋겠지요." (송영수 이장)
▲ 농업회사법인 성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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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를 극복할 내일의 계획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 마을과의 협력을 통해 상생해나가고 있는 성우농장의 이도헌 대표. 그는 "농촌을 에너지 자립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마을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건, 그것이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할 거라 보았기 때문이에요. 에너지의 관점에서 농촌·농축산업을 대상화하면 그것이 오히려 농촌을 망칠 수 있어요. 에너지의 관점이 아니라 농촌 지속가능성의 관점으로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에너지자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농촌의 지속가능성, 즉 마을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좋은 해외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원천마을의 이야기는 오늘날 '무엇이 우선돼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목적은 사람을 위하는 것임을, 농촌에도 그 혜택을 누려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머지않아 조롱박이 주렁주렁 자라고 원천마을 사람들은 그 그늘 아래에서 마음껏 웃음을 터뜨릴 테다.
월간옥이네 통권 85호(2024년 7월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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