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차 간호사가 본 초고령 사회 돌봄의 서글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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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호사의 삶 중 25년 이상을 산부인과와 여성보건의 최전선에서 보내며, 제 손은 늘 새로 태어난 아기의 따뜻한 온기와 산모의 떨리는 손길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눈부신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이 제 본업이자 삶의 전부라 여겼지만, 최근 제 삶에는 보건의료 전문가라는 타이틀로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슬픔과 무게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통증은 곧, 가정의 헌신에만 돌봄의 무게를 전가하는 현 사회적 구조에 대한 서늘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왜 이토록 수많은 대안이 이야기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노년의 삶과 돌봄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것일까요? 가족으로서, 그리고 보건의료 현장의 눈으로 바라본 초고령 사회의 돌봄 현실에는 세 가지 가슴 아픈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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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숙 기자]
30년 간호사의 삶 중 25년 이상을 산부인과와 여성보건의 최전선에서 보내며, 제 손은 늘 새로 태어난 아기의 따뜻한 온기와 산모의 떨리는 손길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눈부신 순간들을 지켜보는 것이 제 본업이자 삶의 전부라 여겼지만, 최근 제 삶에는 보건의료 전문가라는 타이틀로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커다란 슬픔과 무게가 찾아왔습니다.
지난 6월, 긴 시간 치매로 투병하시던 시아버님을 세상에서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남겨진 슬픔 속에 급격히 건강이 악화된 시어머니마저 결국 정든 집을 떠나 요양원에 모셔야만 했습니다.
가족의 손을 잡고 삶의 마지막 길목을 지나가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지켜보고, 아버님의 부재 이후 점차 삶의 의지를 잃어가시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며 돌아서던 그날. 30년 동안 보건 현장을 지켜온 전문 간호사였지만, 정작 사랑하는 가족의 노년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한 며느리이자 가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개인적이고 가슴 아픈 경험은 우리 사회가 처한 어르신 돌봄의 현실을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하고 뼈아프게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30년간 보건 현장을 누빈 간호사였음에도, 사랑하는 가족의 노년 앞에서는 한 명의 무력한 자식이자 며느리에 불과했습니다. '간호사 며느리가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는 가혹한 내면의 자책은 밤마다 깊은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통증은 곧, 가정의 헌신에만 돌봄의 무게를 전가하는 현 사회적 구조에 대한 서늘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아픈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 어르신 돌봄의 구조적 한계를 뼈아프게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마을마다 어르신들의 인구 비율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으며, 홀로 외로이 노년을 견뎌내거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어르신의 수도 눈덩이처럼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 각계에서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다양한 대책과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발표하지만, 정작 아픈 몸을 누이고 계신 어르신들과 그 곁을 지키는 가족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는 여전히 버겁기만 합니다.
왜 이토록 수많은 대안이 이야기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노년의 삶과 돌봄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것일까요? 가족으로서, 그리고 보건의료 현장의 눈으로 바라본 초고령 사회의 돌봄 현실에는 세 가지 가슴 아픈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첫째, '살던 곳에서 맞이하는 노후'가 아닌 '격리와 시설화'로 내몰리는 구조적인 한계입니다.
어르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평생 살아온 정든 집과 익숙한 동네에서 가족, 이웃들과 온기를 나누며 노년을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돌봄 구조는 어르신이 스스로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거나 한쪽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겨지는 순간, 정든 터전을 떠나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로 옮겨가도록 내몰곤 합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의료와 간호, 일상 보살핌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보살핌망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존엄한 여생' 대신 '시설에서의 고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둘째, 어르신 돌봄의 중증도와 복합적인 질환을 담아내지 못하는 형식적인 지원입니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치매와 만성 질환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잃은 후 찾아오는 상실감과 우울증 등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복합적으로 겪으십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제공되는 도움은 단시간의 방문이나 단순한 가사 지원 등 파편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건강 상태와 삶의 맥락, 그리고 심리적 슬픔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맞춤형 간호·돌봄 서비스가 결합되지 않는다면,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셋째, 돌봄의 최전선에서 헌신하는 요양보호사와 간호 인력의 피로 누적과 처우 문제입니다.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고, 몸을 씻겨 드리며, 밤새 체위를 변경해 드리는 돌봄 종사자들은 초고령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소중한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직면한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하며, 감정 노동과 육체적 노동의 강도에 비해 사회적 인정과 현실적인 보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돌보는 이의 마음과 몸이 지쳐간다면, 그 피해는 결국 어르신들과 그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살피는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아야만 돌봄의 질도 비로소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제 어르신 돌봄은 단순히 예산을 집행하고 시설 숫자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한 인간이 일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인간다운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지역사회 중심의 밀착형 존엄 돌봄'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르신이 살던 집에서 필요한 간호와 의료, 일상 보살핌을 종합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문 간호 및 지역 통합 돌봄망을 대폭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어르신과 그 가족이 응급 상황이나 밤시간대에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지역 거점의 돌봄 지원 체계를 공고히 구축해야 합니다. 나아가 현장의 돌봄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교육 체계와 근무 여건을 현실적으로 개선하는 일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타인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어르신들을 대하고 보살피는 모습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자신이 맞이하게 될 모습이기도 합니다. 지난 6월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며느리의 마음, 그리고 30년 보건 현장의 경험을 담아 진심으로 제언합니다. 어르신들의 노년이 두려움과 외로움이 아닌, 감사와 안식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하고 세심한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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