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유지영 기자]
▲ 한 '픽업 아티스트'가 운영하는 네이버카페에서 '헌팅 후기'라면서 올라온 게시물 중 일부. 여성의 속옷 사진을 올리거나 카카오톡 대화 캡처본을 올리는 등의 자발적인 '인증'을 한다. |
ⓒ 네이버카페 캡처 |
김아무개(남)씨는 지난해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로 소개하며 '몇 천 명의 여성을 상대로 길거리에서 번호를 땄다'고 주장하는 최아무개(남)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회성이 상당히 떨어져 연애도 못 해봤다고 생각해 연애를 하기 위해" 최씨가 운영하는 네이버카페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해당 네이버카페의 회원은 모두 4700여 명으로 네이버에 성별을 남성으로 기입한 이들만 가입할 수 있다.
최씨는 자신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고, '수강생'의 반응도 여럿 있었다.
"그냥 누구나 아무나랑 하는 연애가 아닌 '존예녀'까지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강의의 목표입니다." - 최씨 업체의 소개글 중 일부
"저도 이 강의 듣고 실전에서 써먹었는데 진짜 존예녀 번호 10개 정도 땄습니다." - 수강생 후기 중 일부
김씨는 약 220만 원을 내고 최씨의 강의를 '패키지'로 구입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김씨에게 수십 시간 분량의 동영상 강의와 수백 장 분량의 자료집을 제공했다. 또한 김씨는 유료 강의를 듣는 남성들의 카카오톡 비공개 오픈채팅방에도 입장할 수 있었다. 최씨의 닉네임으로 된 여러 개의 오픈채팅방에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남성이 포함돼 있었다.
최씨는 김씨가 구입한 패키지 강의 외에 VIP 강의를 개설해 550만 원, 990만 원, 1500만 원 상당의 수업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최씨의 VIP 강의는 유료 동영상 강의 외에도 ▲ '로드(road) 실전'이라는 이름으로 길거리·클럽에서 "여성의 번호를 따는" 등의 행위를 VIP 강의 수강생에게 직접 보여주거나 ▲ 일대일 온·오프라인 피드백("저의 모든 것들 거의 다 전수", "수업 외에도 만나서 교류" 등)을 받는 것으로 구성돼 있었다.
나이, 직업, 시간, 장소 등 '후기' 이름으로 올라와
최씨는 유료 강의를 통해 '신고 당하지 않는 법' 등을 가르쳤다.
"'잘 들어갔냐, 조심히 가라, 같이 있어서 좋았다'라든지 안 좋게 헤어진 게 아니라는 거에 대한 증거물을 남겨놓는 게 되게 또 중요합니다."
"혹여라도 만약에 여자가 카톡으로 '너 그때 왜 그랬냐, 스킨십 하고 나 왜 만지고 나 왜 강제로 하고 막 이랬냐' 그래도 절대로 사과하시면 안 돼요."
▲ '픽업 아티스트' 최씨의 한 수강생이 지난해 2월 네이버카페에 올린 여성의 속옷 사진. |
ⓒ 제보 |
▲ '픽업 아티스트' 최씨의 한 수강생이 지난 9월 카카오톡 비공개 오픈채팅방에 올린 사진. 이 사진을 올린 이는 숙박업소 내부 사진과 함께 피임기구 없이 성관계를 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사진과 글엔 여성의 나이와 촬영된 사진의 시간·장소 또한 첨부돼 있었는데 곧장 성희롱성 대화가 이어졌다. |
ⓒ 제보 |
사례를 보면 지난해 8월 A씨는 여성의 신체, 숙박업소 내부 사진과 함께 성관계를 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2월 B씨는 성관계 상대방의 것으로 추정되는 속옷 사진을 올리며 "이성의 수준이 점차 상향되는 것 같아 행복한 요즘"이라고 썼다.
C씨는 지난 9월 숙박업소 내부 사진과 함께 피임기구 없이 성관계를 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사진엔 시간·장소 또한 첨부돼 있었는데, 또다른 남성이 "지금 가면 되나"라고 말하고 작성자가 "이미 끝"이라고 답하는 등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수강생들은 '강간죄로 신고 당해 합의를 요구받는 상황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조언을 주고받기도 했다.
김씨는 <오마이뉴스>에 "최씨 말대로 하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성과 잠자리를 가진 뒤 속옷이나 몸 사진을 인증하는 건 잘못됐다는 인식이 들어 제보를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취재 시작되자 문제적 사진 삭제... 최씨 "앞으로 엄하게 금지 하겠다"
법조계 "몰래 촬영해서 카페에 올리고, 다운 받으면 불법... 처벌 가능"
<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의 취재가 시작되자 최씨는 네이버카페, 오픈채팅방에 있는 사진 등을 삭제했다. 최씨는 14일 <오마이뉴스>에 "네이버카페와 오픈채팅방에 '여성의 신체나 얼굴이 나온 사진은 업로드 금지'라고 공지해두었고, 속옷 사진은 일부 올리는 회원들이 있다고 해 주의를 주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따로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해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전달을 받았으나 도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불편할 수 있고 법적인 것을 떠나 내가 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 한 소지가 많기에 앞으로 더 엄하게 금지하고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자신의 유료 강의 내용 중 다른 부분을 발췌하면서 "여성이 정말 싫어하거나 거부할 경우에는 강제로 하지 말고 상호 간 합의 하에만 해야된다고 하는 내용도 나와있다"며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꽃뱀'에 대해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소속 안지희 변호사(안지희 법률사무소)는 "(신체 일부를 촬영한 사진의 경우 행여) 동의 아래 촬영이 됐다고 해도 픽업 아티스트의 네이버카페나 오픈채팅방에 올리는 것까지 동의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몰래 촬영해 게시물을 올리고, 또 이 사진을 내려받았다면 불법촬영으로 처벌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애를 위해 팁을 준다는 목적으로 모였지만 마치 동물을 사냥하는 것처럼 덫을 놓고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여성을 도구화하는 혐오 범죄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역시 "결국 이들이 모여 왜곡된 성관념을 계속 쌓다 보면 범죄로 연결되기 좋은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수 있을까'를 목적으로 수익화를 하는 것이니 이를 사적인 영역으로만 볼 수 있을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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