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높은 게이 커플의 사랑, 파격적 설정에 담긴 감독의 의도

김상목 2026. 5. 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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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뒷자리에 태워줘>

[김상목 기자]

크리스마스이브, 내성적인 청년 '콜린'은 클럽에서 출중한 외모의 바이커 '레이'와 마주친다. 첫눈에 끌린 콜린에게 레이는 무심한 듯 메모를 건넨다. 둘만의 만남 후, 콜린은 레이와의 관계를 통해 경험한 적 없는 세계로 들어선다. 낯설고 두렵긴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욕망에 눈뜰 기회이기도 하다. 그들은 함께 살게 되지만, 둘의 관계는 흔히 상상하는 것과는 퍽 다르다.

평범함과는 아득히 먼 이 커플의 일상
 <뒷자리에 태워줘> 스틸
ⓒ 찬란
여기 기이한 커플이 있다. 콜린은 레이에게 첫눈에 반했다. 레이 역시 콜린을 집으로 들여 함께 살 정도로 마음에 드는 눈치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일상을 공유하는 멀쩡한 연인이긴 하다. 다 큰 성인이라 육체적 사랑도 당연히 한다. 아니, 죽고 못 살 정도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둘 사이는 남들에게 이해받기 힘든 구석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비밀을 엄수해야 한다.

각자 역할은 정확하게 나뉜다. 철저히 일방적이고 수직적 위계질서다. 레이는 명령을 내리고 지시한다. 모든 일상이 레이의 지침에 의해 정해진다. 콜린은 수동적으로 레이의 주도 아래 놓인다. 상대가 '헌신'적인 면에 소질이 보여 선택했다는 '간택' 이유처럼 콜린은 질문이나 저항 한 번 시도하지 않고 순종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장을 보고 요리하고 반려견을 돌보고 청소와 빨래도 도맡는다. 모범적인 전업주부, 현모양처다.

그런 둘의 관계는 일상에서 몇 몇 행위로 상징화한다. 유희 겸 체력단련으로 둘은 자주 레슬링을 벌인다. 그야말로 육체와 육체가 끈끈하게 밀착하는 격돌이다. 하지만 가녀린 체구의 콜린 vs 고대 그리스 조각상 올려다보듯 위압감 넘치는 레이의 경합은 승부랄 것 없이 늘 일방적이다. 비명을 지르며 졸림을 당하거나 바닥에 깔리기 일쑤다. 게다가 둘의 복장도 뭔가 야릇하다. 종종 스포츠 대결은 다른 형태로 즉석에서 전환된다.

바쁜 일과가 끝나면 잠자리에 들 시간. 한 방에 자긴 하지만, 레이는 침대, 콜린은 바닥에 눕는다. 침대가 비좁아서도, 레이와 콜린 사이가 주인과 하인과 다를 게 없어서도 아니다. 레이가 정한 규칙에 콜린이 순응하는 형태로 합의한 관계다. 물론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긴 하다. 그래서인지 둘의 일상은 비밀주의를 고수한다. 누가 방문하거나 초대할 일은 없다. 콜린의 부모는 아들의 '남자친구'가 궁금하지만, 레이는 딱 잘라 만남을 거부한다.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힘든 그들만의 유토피아
 <뒷자리에 태워줘> 스틸
ⓒ 찬란
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속도를 즐기는 바이커다. 그에겐 특별한 동료들이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회동하며 은밀한 우정을 이어간다. 콜린 역시 레이와 동거하며 자연스레 일원이 된다. 우락부락 근육질에 가죽바지와 점퍼 등속, 금속 사슬과 장신구 착용 등 사람들이 생각하는 폭주족 외양 그대로인 험상궂은 이들이지만, 동료의 연인에겐 다들 친절하게 대한다. 콜린은 이들과 금방 허물 없는 사이가 된다.

건장한 남자들만 득실대는 건 클럽 특성상 자연스럽긴 한데, 이들은 은근슬쩍 두 부류로 정확히 나뉜다. 모두 콜린과 레이처럼 역할이 정해져 있다. 이중의 취향을 공유하는 은밀한 공동체인 것.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콜린은 레이와 그의 폐쇄성에 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지만, 약간의 정보는 더 큰 궁금증과 고민을 안긴다. 지금의 관계에 만족할 순 있어도 연인 관계라면 다른 방법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닥친 갈망은 점점 커져만 간다. 늘 레이의 명령에 불만 없이 복종하며 이견을 단 적 없던 콜린은 용기를 내려 한다. 물론 상대편 입장으로 보면 서로 합의한 룰을 깨려는 소탐대실이나 다를 바 없다. 왜 정해둔 규칙을 어기고 관계를 굳이 위기로 몰아가는 걸까? 레이는 당황할 만하다. 물론 외부의 잣대로 보면 둘의 사이가 전혀 대등하거나 수평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문제이긴 하다. 콜린이 욕심을 부리는 걸까 레이가 지배욕이 과도한 걸까.

커뮤니티의 룰은 확실하다. 이들은 파트너 사이 역할이 신분처럼 고정된 방식을 고수한다. 물론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억지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고민일까 망설이던 콜린에게 본인과 같은 역할 동료가 들려준 속내는 지금보다 더 진실한 관계를 위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의를 굳히게 만든다. 이제 사랑을 위한 콜린의 반역이 시작될 차례다. 과연 레이는 어떻게 반응할까?

보편적 시선 바깥에 존재하는 소수자 커뮤니티의 명암
 <뒷자리에 태워줘> 스틸
ⓒ 찬란
<뒷자리에 태워줘> 원제는 'PILLION', 국문 제목이나 영문 원제나 큰 차이 없이 '뒷좌석/안장'을 뜻한다. 간단명료하지만 참 많은 걸 암시하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콜린이 레이의 제안을 허락하는 방식은 그의 바이크 뒷좌석에 올라타는 것. 철저하게 상대의 주도에 나의 몸과 안전을 맡긴다는 은유다.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부모님이 나서서 남자친구를 소개해주려 애쓸 정도인 콜린의 원래 성향으로 봐선 이상적인 궁합이라 봐도 좋겠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주류질서에 속한 고대 그리스가 아니라 색안경 끼고 볼 수밖에 없는, 폭주족 외양 게이 바이커 클럽 내 SM 성향 커뮤니티 이야기다. 콜린은 그 일원으로 정해진 질서에 순응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할지, 자신이 꿈꾸는 진정한 사랑을 쟁취할지 결단해야 한다. 자칫하면 운명의 상대와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가득하다. 레이 없이 하루라도 못 살 그로선 정말 운명을 건 도전.

'청·불' 딱지 붙은 영화답게 <뒷자리에 태워줘> 수위는 꽤나 맵고 센 편이다. 물론 포르노와는 다른 차원이다. 성적 장면을 전시하는 게 아닌, 이야기를 풀기 위해 최소화한 성적 표현만 절제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헉' 소리가 날 장면이 제법 된다. 자칫 선정주의로 흐를 위험이 다분하기에 제작진은 영화 속 모습과 흡사한 커뮤니티를 수소문해 자문은 물론, 다수의 클럽 회원이 출연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그만큼 생생한 재현도를 자랑한다.

차이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결국엔 사랑이 이긴다

콜린이 초반에 잔뜩 겁먹었던 것처럼, 관객을 질겁하게 만드는 무서운 '형님'들이 가득 등장해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과감한 표현이 난무하긴 해도 <뒷자리에 태워줘>는 배경만 바꾸면 그야말로 사랑에 처음 눈뜬 이가 과정을 거치며 성숙한 인간이자 연인이 되는 정석적인 이야기다. 오히려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초반 느끼던 불편함이 막바지에 이르면 그들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이들이란 공감을 의도한 '큰 그림'처럼 느낄 정도다.

콜린은 (남들 눈엔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풋풋한 첫사랑에 돌입한 존재다. 처음엔 레이처럼 상대를 휘어잡는 방식이 오히려 편하다. 굳이 이것저것 시도하다 실패할 이유가 없기 때문. 그러나 사람은 고정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사랑 역시 시시각각 변해야 한다. 둘에겐 관계의 수정과 보완이 절실하다. 레이 역시 퉁명스럽게 대하는 척해도 콜린을 늘 마음에 두고 세심하게 살핀다는 증거는 내내 차고 넘친다. 다만 표현법이 다를 뿐.

영화는 더없이 섬세하게 콜린이 진정한 사랑에 닿는 경로와 주체적 성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는다. 온실 속 화초처럼 부모님이 챙겨주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테두리에 안주하던,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갇힌 채 머물던 그가 조금 위험하긴 해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으며 온갖 감정이 충돌하는 위태로운 과정을 밟는다. 마치 망망대해로 항해를 떠난 조각배처럼 그의 여정은 아슬아슬하지만,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한 번은 감행할 모험은 분명하다.

파격적이지만 알고 보면 보편적인 첫사랑 이야기

<해리 포터> 시리즈 주인공의 사촌 '더들리 더즐리'로 얼굴을 알렸던 해리 멜링이 내면 연기를 제대로 펼친다. 다 큰 어른이지만, 진정한 사랑도 가족으로부터 독립도 겁내는 콜린을 빙의한 듯 소화한다. 안쓰러움과 귀여움을 오가지만, 그가 성숙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 성별과 지향은 무의미해진다. 사랑의 힘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예시와 같은 존재다.

'마성의 남자' 레이 역 '북유럽 조각 미남'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존재감은 영화 안이나 밖이나 이구동성 환호할 만하다. 끝내 알 수 없었던 그의 굴곡 많았을 과거 따윈 콜린이건 관객이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원작의 과감한 묘사를 옮기는 데 집중한 영화를 보고 나니 곧 국내 출간될 소설에서 영화가 축약한 주변 상황과 세부 일상 묘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상 최고의 커플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눈부신 찰나에 매료되고 만다. 처음엔 <매드맥스> 연작에 등장한 것처럼, 종말 이후 세계에서 양민을 괴롭히는 폭주족 모히칸이 따로 없던 클럽 동료들이 주인공의 생일을 축하하며 합창하는 장면에서 귀여움이 폭발한다. 놀랄 게 꽤 많은 작업이다.

<작품정보>

뒷자리에 태워줘
PILLION
2025 영국 드라마, 로맨스, 퀴어
2026.05.27. 개봉 106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해리 라이튼
출연 해리 멜링,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원작 애덤 마스-존스, 소설 《뒷자리에 태워줘》
수입 찬란
배급 ㈜올랄라스토리
공동제공 퍼스트맨스튜디오, 소지섭

78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각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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