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아!" 외마디 비명…112 경찰은 '이것'부터 뒤졌다

손성배 2024. 10.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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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 상황1팀 접수요원 이인영 경위가 경기남부 3권역(안양·군포·과천·안산) 접수요원 자리에서 신고 접수를 받고 있다. 손성배 기자

살려주세요. 아!
지난 8월 22일 밤 0시 25분쯤 경기남부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 상황1팀 이인영(47) 경위는 전화기 너머 비명을 들었다. 신고자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완전히 끊기진 않았지만, 남성의 욕설과 함께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이 경위는 심상찮은 정황에 ‘코드 0’(code 0, 강력범죄 현행범 등 최단 시간 내 출동해야 하는 경우)를 발령한 뒤 신고자의 휴대전화 번호로 접수된 신고 이력을 뒤졌다. “전에 사귀던 사람이 (가게에서) 안 나가요”라는 내용이 이 경위 눈에 띄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가·피해자를 분리하고 종결 처리한 건이었다.

이 경위는 당시 신고 내용을 토대로 신고자 A씨와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B씨의 자택, 사업장 등의 주소를 확인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토대로 안양 지역 경찰관들은 3곳으로 동시 출동했다. 신고 접수 14분 만에 B씨 주거지에서 A씨를 발견했다.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손등을 3㎝가량 베인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 경위는 “혹시 신고자가 잘못될까 봐 식은땀이 뻘뻘 났다”며 “현장에 도착한 동료 지역 경찰의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고 말했다.

이 경위의 대처는 지난 8월 전국 112 접수 최우수 사례에 꼽혔다. 신고 전화를 끊지 않으면서 주변 소리를 통해 위급 상황을 직감, 신고 이력·종결 내용을 파악해 강력 범죄를 막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위는 지난 2002년 10월 순경 공채로 경찰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3년 차를 맞았다. 2019년 1월부터 6년간 112상황실에서 접수 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30년 간 강도·절도범을 잡는 형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됐다. 범죄 피해에 직면한 신고자를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게 그의 112 업무 신조다.

이 경위는 지난해 6월 “11층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죽나요?”라고 묻는 17세 청소년의 자살 의심 112 신고를 받기도 했다. 30분간 통화를 이어가며 청소년의 극단 선택을 막았다. 이 경위는 “초등학교 4학년 딸,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내 자식이란 마음으로 위로하면서 삶의 의지를 불어 넣어주고자 했다”며 “‘가족이 슬퍼할 것 같다”는 말을 먼저 하기에 나도 눈물을 왈칵 쏟았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 경위는 112상황실 근무 첫해인 2019년 ‘신고를 받은 분 덕분에 살 수 있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경위는 “112 신고를 받는다는 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며 “교제폭력,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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