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18번' KBO 두 번째 영구결번 선수는?!

김도정 2025. 1. 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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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투수 별명이 가장 어울리는 선수

1982년 태동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바로 해태 타이거즈 18번 선동열
그의 별명에서도 위엄은 드러나는데요. 국보투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기록이 증명합니다. 야구 명문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연고지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에 1985년 입단한 그는 데뷔 첫해 7승 4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1.70을 기록했습니다.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선동열은 20승만 세 번을 기록하는 등 프로야구 통산 11시즌을 뛰며 146승 40패 132세이브 1698탈삼진을 기록했는데요. 평균자책점은 단지 1.20에 그칩니다.

역시 기록으로 보면, 투수와 타자 통틀어 프로야구 최고 선수라 평가 받을 만하네요. 지금의 선동열을 만든 두 가지 무기가 있는데요. 바로 직구와 슬라이더입니다. 선동열은 당시 시속 153km까지 나오는 빠른 직구를 가진 선수였습니다. 프로야구 초창기 수준에는 과연 독보적인 투수였겠지요. 이와 함께 타자의 눈앞에서 강하게 꺾이는 슬라이더 역시 최고였습니다.

대포알 같은 공, 면도칼 같은 슬라이더. 2가지 무기를 앞세운 선동열은 전무후무 기록을 남겼는데요. 프로 데뷔 2년 차 시절, 선동열은 시즌 최다인 8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24승을 거뒀습니다. 262이닝을 던지며 214개의 탈삼진을 뽑아냈죠. 특히 놀라운 건 평균자책점이었습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무려 0.99였습니다. 9이닝을 던지면서 1점도 겨우 줄 정도라는 뜻이죠.

이러한 선동열이 활약한 시대는 그야말로 ‘해태 왕조’였습니다. 그가 풀타임을 뛰기 시작한 1986년부터 해태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4시즌 동안 선동열은 74승, 그리고 30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리그를 제패했습니다. 김응용 해태 감독은 상대팀에 위압을 주기 위해 선동열을 불펜에서 일부러 몸을 풀게 했다고도 했죠.

또 선동열이 홈런을 맞는 날이면 다소 황당한 일까지 생겼습니다. 1989년 5월 9일 선동열은 대전 원정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 포수 유승안에게 만루 홈런을 처음 맞았는데요. 다음날 신문에 유승안이 대문작하게 나올 걸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게 웬일! 다음날 신문에는 “선동열이 홈런 맞았다”로 도배가 된 거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선동열이 11시즌 동안 허용한 홈런은 단 28개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만큼 드문 ‘뉴스’였던 거죠.

무등산 폭격기는 열도로 날아갔습니다. 한국프로야구는 선동열이 뛰기에 너무나 좁은 리그였습니다. 선동열은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에 2년간 임대 이적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훈련 부족과 새 리그 적응 실패, 극심한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이적 첫 해 마무리에서 탈락, 2군까지 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선동열의 시대는 끝나는 듯 했습니다.

일본 진출 첫 해 굴욕을 맛본 선동열은 독하게 일어섰습니다. 기초부터 탄탄히 다졌습니다. 1997년 선동열은 1승 1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28을 기록하며 센트럴리그 세이브 공동 1위에 올랐습니다. 일본에서도 정상에 오른 선동열이었습니다. 이어 1998년 29세이브, 1999년 28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1999년에는 주니치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선동열은 지도자로서도 승승장구했습니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 은퇴한 선동열은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를 거쳐, 2005년 정식 감독이 됐습니다. 그는 ‘끝판대장’ 오승환을 발굴하는 등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2018년에는 한국야구대표팀을 이끌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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