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하니의 이야기, 하이브만의 문제일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4. 10. 2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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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전성시대의 그늘] ④ K-POP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하이브만의 문제일까

지난 15일에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는 뉴진스 하니의 출석으로 '역대급'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남은 이야기는 앙상하기만 하다. 하이브라는 기업의 문제로, 개별 하나의 사건으로 남는 양상이다. 이 일을 해프닝으로만 여길 수 없는 것은 K-POP의 화려한 성공에 가려진 이면을 살짝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이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회사 소속임에도 내부에서 무시, 따돌림, 견제와 같은 일들이 생기는 것은 지금의 K-POP 제작 시스템에서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많은 연습생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이면, 그 사실만으로도 치열한 내부 경쟁이 벌어진다.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실 그런 과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런 경쟁을 '순한 맛'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악마의 편집'이 조금만 있어도 당사자에게 괴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과거 모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표 조작 사태까지 가지 않아도 '편집'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울뿐인지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경쟁의 공정성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이다.

미성년자 아이돌 연습생, 관리되지 않는 수 천 개의 기획사들

아동·청소년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한국에서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입시경쟁에서 늘 보고 있고, 학원스포츠에서 들려오는 사건 사고도 보게 된다. 하지만 K-POP이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점은 철저하게 기업에 의한 영역이라는 점이다. 학교 교육은 국가와 사회의 관리 하에 놓여 있다. 운동선수들도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있다.

그러나 K-POP 아이돌 연습생을 관리하는 기획사들은 기업이다. 이윤 창출이 기업의 절대적 목적이고, 대표의 권한은 내부에서 잘 제어되지 않는다. 아동·청소년들이 이러한 기업과 계약관계로 데뷔를 위한 관리를 당하는 것이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꿈을 향한 열정은 대학 입시에 매진하는 학생들도, 춤과 노래를 갈고 닦는 아이돌 연습생들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연습생들을 보호할 제도는 사실상 없다.

익히 알려진 대형 기획사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심각한 곳들은 수많은 중소 기획사들이다. 대중문화예술종합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업체만 6천 개가 넘는다. 이 중 청소년 연습생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조차 되어있지 않다. 실태도 기획사에 신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자발적인 설문조사로 가늠하고 있을 뿐이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등록도 2년 이상의 종사 경력과 관련된 간단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전부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보다 갖춰야 하는 특별한 자격사항도 없다.
 지난 9월 30일,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가 국회에서 진행한 <아이돌 분야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명 국회 토론회>에서 아이돌(연습생)을 경험한 당사자 분들이 직접 참석하여 현장 발언을 하였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엔터테인먼트사에서는 전문성 없이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연습생들을 관리하다 보니까 비전문적인 지식과 비현실적인 다이어트 기준 강요를 하는 등 일관성도 없고 불합리함도 생깁니다. (중략) 인터뷰를 한 연습생 중에서는 중학생인데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 탈모가 온 경우도 있었어요. 기면증이라든가 불면증이나 무월경은 기본이고요. 건강의 많은 문제가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8년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경험한 허유정씨가 지난 9월에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 주최 국회 토론회에서 한 이야기이다. 아이돌 연습생이 일상적으로 겪는 학습권과 건강권의 침해에 한국사회는 무뎌져 있다. 이들이 견디는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아동·청소년 학대가 아니라, 성공한 이들의 후일담으로만 남겨진다.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발언권을 얻지도 못한다. 관리의 책임을 회피하고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 연습생 간의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직업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은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사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차별적인 대우에도 직원의 기분을 맞춰주고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한다.

데뷔한 아이돌도 수납된 채, 경제생활도 못 하는 전속계약

데뷔한 아이돌의 현실도 녹록치 않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산업이다. 1년에 많게는 70여 팀이 아이돌로 데뷔하고, 그 중에서 살아남는 것은 소수이다. 당장은 살아남더라도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자리 잡는 경우는 0.1%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조건에서 기획사는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위험은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핸드폰 사용 금지나 철저히 통제된 숙소 생활 등의 사생활 통제는 기본이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기획사가 관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연애는 금기 중에 금기이다. 사람 자체가 곧 상품이 되는 아이돌 산업에서 상품가치가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기획사가 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이고, 이는 아이돌을 상품으로서만 다뤄지게 한다.

"절대 다수의 아이돌이 처음 계약금 300만 원 정도만 받고서, 데뷔 후 실패하면 버려진 채로 있습니다. 전속계약기간 7년 동안 아무런 소득 없이 버텨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회사는 계약을 유지해도 손해가 없고, 어쩌다가 '역주행'이라도 할 수 있으니, 계약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같은 토론회에서 14년 동안 그룹 틴탑의 멤버로 아이돌 생활을 한 방민수씨의 발언이다. 특히 아이돌로서의 이미지 소모를 이유로 일체의 다른 경제활동을 제한받기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중문화예술인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기획사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된다는 표준계약서의 조항이 현실에서는 독소조항으로 작동한다. 누구나 알만한 아이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몇 번 활동하고서 잊히는 아이돌들은 마치 예쁜 보석을 서랍에 넣어놓듯이 그들의 청춘과 함께 전속계약에 의해 '수납'된다.

기획사 입장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아이돌 그룹 하나를 성장시키는 데 기본적으로 수억 원이 들고, 그렇게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려면 아이돌에 대해서 철저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 관리가 철저해야만, 사생활에 결점이 없어야만 성공하는 것이 현실이고, 당사자도 아이돌로서의 성공을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불공정과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계약이 미성년자일 때 진행되는 점이다. 정말 예외적인 성공을 거둔 경우를 빼고는 기울어진 권력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당장 당사자가 원한다고, 혹은 성공하려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사회가 용인해야 할까.
 지난 7월 미국 LA에서 열린 KCON LA 2024
ⓒ CJ ENM
국위선양도, 일자리 창출도 아닌 그 뒤에 사라진 인권을 보자

지난 국회에서 아동·청소년 보호를 강화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폐기되었다. 방송미디어에 출연하는 아동·청소년도 많아졌다. 그런 환경 변화와 해외의 사례를 감안하여 보호 장치를 갖추고자 하는 것이 법의 골자였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권고하고 문체부도 수용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용역제공시간 제한 강화가 K-POP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이유로 좌초되었다. 제2의 보아를 막는, 17살 이서를 울리는 법안이라며, 연예 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용역제공시간의 범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 활동기간과 비활동기간의 양상이 다른 점을 어떻게 고려할지 등은 합리적 토론의 영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발적인 연습을 왜 규제하느냐,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을 왜 막느냐는 말들로는 대안 없는 트집 잡기이다. 연습이 자발적이라면 용역제공시간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고, 당장은 당사자가 원하더라도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면 제한해야 맞다.

더 문제는 K-POP의 성공을 보며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적 흐름이며, 국위 선양하는 21세기 수출 일꾼으로, 새로운 일자리와 먹거리를 창출하는 이들로 보는 관점이다. 최소한의 인권 보호도 반대하면서 20살도 안 된 어린 학생들의 피와 땀에 의존하는 산업과 경제가 정상적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성공한 극소수의 아이돌 뒤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채, 데뷔도 하지 못한 채, 온갖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를 경험하고 떠나는 이들이 수백 배는 많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하는 공익법인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는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舊 POP-UP)로 모여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역배우, 아동청소년출연자, 아이돌에 이르기까지 카메라 뒤의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이 보호받는 제작환경을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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