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푸른색 스며든 조지아, 문제는 경제 “차악 누구?”
시골 마을에선 경제·이민 “해리스 뭘 했나”
애틀랜타 광역권 “해리스, 리더이자 롤모델”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잭슨은 버츠 카운티에 속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잭슨 중심가와 인접한 한 주택 앞에서 11일(현지시간) 만난 흑인 여성 사브리나 윌리엄스(53)는 “조지아는 대부분 기간 공화당 주였지만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서 사람들이 많은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조지아는 더 파란색(민주당 상징색)이 돼야 한다”고 했다.
윌리엄스가 강조한 것은 최저임금이었다. 윌리엄스는 “북부 주로 올라가면 시간당 15달러나 20달러 시급을 주는 일자리가 많지만 조지아에서는 그런 일자리가 없다”며 “26세인 내 딸은 월세를 1500달러를 내야 하는데, 시간당 10달러짜리 일자리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문제 해결이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급 출신인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억만장자인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중산층·서민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조지아의 시간당 임금은 7.25달러다. 뉴욕(16달러), 버지니아(12달러)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버츠 카운티에서 ‘소수파’다. 버츠 카운티의 인구는 2만6000여명. 이곳에서 만난 여러 유권자는 경제 문제 때문에 해리스가 아닌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했다. 2020년 대선에서도 트럼프는 조지아를 바이든에게 내줬지만 버츠 카운티에서는 71.4%의 지지를 얻어 바이든을 압도했다.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동심원처럼 확산하는 ‘민주당 바람’이 멈춘 곳이 바로 버츠 카운티다.
백인 남성 유권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번 대선의 최대 의제로 경제와 불법 이민을 꼽았다. 배관공 일을 하는 제이미(54)는 “경제에서는 항상 공화당이 나았다. 모든 것의 가격이 치솟았다”며 “공화당도 여전히 세금을 부과하지만 민주당보다는 낫다. 공화당이 차악”이라고 말했다. 조지아에서 뜨거운 쟁점인 재생산권(출산·낙태 등 여성의 권리)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낙태 문제는 항상 있었다. 또 낙태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선 이슈는 경제와 국경 통제 문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잭슨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던 마이크 스튜어트(59)는 “적어도 트럼프는 뭘 했는지 알겠는데, 해리스는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어차피 차악을 골라내는 것이 선거다. 나는 공화당원이고 공화당 후보가 트럼프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다른 백인 남성은 불법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해리스는 헛똑똑이다. 그 사람이 저지른 온갖 것들을 생각해봐라”고 했다. 트럼프가 해리스에게 붙인 무능한 ‘국경 차르’라는 비판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혹평이었다.
애틀랜타 광역권은 시골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2020년 대선에서 애틀랜타가 속한 풀턴 카운티는 72.6%, 인접한 그위넷 카운티는 58.4%의 표를 바이든에게 몰아줬다. 콥 카운티, 디캡 카운티 등 애틀랜타 주변 카운티로 다양한 인종과 젊은 유권자들이 유입되면서 민주당 지지 성향은 더 짙어졌고 넓어졌다. 그 덕에 바이든은 민주당 후보로는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조지아에서 승리했다.
애틀랜타 북동쪽 그위넷 카운티의 로렌스빌에서는 해리스에게 기대를 거는 유색 인종 유권자가 많았다. 로렌스빌 월마트 주차장에서 만난 흑인 여성 리브니(50)는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월급만 그대로다. 월마트에서 쇼핑할 때조차 물건은 덜 사고 돈은 더 많이 내고 있다”며 경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지 후보는 해리스였다. 그는 “해리스는 노동계급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다”며 “부자에게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들도 공정한 몫을 지불해야 하고, 노동계급에만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정책에서 트럼프는 법인세 인하 등 대규모 감세, 해리스는 법인세 인상과 중산층 세액 공제 등을 내세운 상태다.
젊은 유권자도 해리스에게 기울었다. 그위넷칼리지 캠퍼스에서 만난 흑인 여성 새라(24)는 “여성의 재생산권 회복을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이 사회의 일부”라며 “여성이 남성과 함께 이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는 점을 모두 잊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기성세대가 경제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으로서 나는 우리의 권리인 재생산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옆에 있던 흑인 남성 자바니(22)도 “해리스 우리와 같은 젊은 세대들의 미래에 대해 계획하는 것 같다”며 “나 역시 흑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지금의 내가 되도록 도와주셨다. 일부 기성세대는 아마도 해리스를 경제를 망치는 사람으로 보고 싶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리더로, 롤모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유권자들이 자주 말한 것은 ‘차악론’이었다. 해리스나 트럼프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 더 싫은 후보의 승리를 저지할 목적으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이다. 월마트 앞에서 선적 작업을 하던 백인 남성 알베르토(50)는 “투표를 하겠지만 둘 다 나쁜 후보다. 모두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 투표를 해야 한다면 아주 조금 덜 나쁜 해리스를 선택하겠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될 것 같다”며 “트럼프는 중서부에 가면 농업 일자리를 말하고, 뉴욕에 가면 주식과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보 같은 유권자들은 그런 아첨에 넘어간다”고 했다.
흑인 여성 메리(71)는 “해리스의 성전환 수술 지원 등과 같은 성 소수자 정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쁜 감정은 없지만, 우리가 내는 세금을 그들을 위해 지원하는 건 원치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투표는 해리스에게 할 것이다. 해리스를 지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상대 후보가 트럼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 이후가 더 걱정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는 트럼프가 이길 것 같다.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그를 지지하고 싶다. (트럼프가 재집권해도) 우리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와 싸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만약 그가 진다면 정말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두렵다.”
잭슨·로렌스빌(조지아)=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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