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옛길 걷기가 시작됐다
[이상기 기자]
|
|
| ▲ 조선시대 통신사가 출발한 창덕궁 인정전 |
| ⓒ 이상기 |
1607년 1월 12일 첫 번째 회답 겸 쇄환사가 파견되었다. 이때 상사는 통정대부 여우길(呂祐吉)이다. 부사는 홍문관 교리 경섬(慶暹)이다. 종사관은 전 도사(都事) 정호관(丁好寬)이다. 이때 왕으로부터 국서를 받아 출발한 곳이 현재 덕수궁 석어당(昔御堂) 또는 즉조당(卽阼堂)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임진왜란으로 왕궁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두 번째 회답 겸 쇄환사는 1617년 5월 28일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출발한다. 선조에 이어 즉위한 광해군이 통치하던 시절로 인정전이 다시 지어진 것 같다. 이때 상사가 병조참지 오윤겸(吳允謙) 부사가 군기시정 박재(朴榟) 종사관이 예조정랑 이경직(李景稷)이었다.
|
|
| ▲ 경복궁 광화문을 나와 양재역으로 향하는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회원들 |
| ⓒ 이상기 |
2007년은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이 되는 해로 통신사행이 추구했던 성신교린(誠信交隣) 정신을 되살리기로 했다. 그 때문에 양국간 우정과 평화를 위해 격년으로 평화의 도보 대행진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2년마다 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가 지속되어 금년에 제10차가 된 것이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단체는 (사)한국체육진흥회, (사)일본Walking협회, (사)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다. 행사를 주관하는 팀은 한국걷기연맹과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다. 이번 행사에는 전 구간 참가자 28명, 일부 구간 참가자가 200명 정도 된다.
|
|
| ▲ 경복궁 흥례문 앞에 모인 통신사 우정걷기 회원들 |
| ⓒ 이상기 |
그중 김홍렬은 용산공원(미군부대)에 남아 있는 통신사길과 문화유산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 충주 지역에서 통신사 문화유산을 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중심고을연구원 회원들도 참가했다.
|
|
| ▲ 취타대와 함께 걷는 통신사 옛길걷기 회원들 |
| ⓒ 이상기 |
행렬은 시청, 덕수궁, 남대문, 후암동 고개, 용산고등학교, 전쟁기념관, 용산구청, 보광동, 한남동으로 이어졌다. 마침 덕수궁에서 남대문으로 이동하는 취타대와 근위대를 만나 마치 그들이 통신사 행렬을 호위하는 양상이 되었다. 그들은 10시 남대문 개장식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중이었다.
|
|
| ▲ 통신사 우정걷기 서울-도쿄 전 구간을 완주하는 사람들: 전쟁기념관에서의 기념 사진 |
| ⓒ 이상기 |
여기서 간식도 먹고 휴식도 취하며 30분 정도 쉬어간다. 이곳에서 참가자가 50명 정도 줄어든다. 용산구청을 지나 보광동으로 이어지는 장문로에는 외국대사관이 늘어서 있다. 조선와 일본의 외교를 위해 지나던 길에 주한 외국대사관이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보광동을 지나면 한남동에 이르는데, 그곳 한강가에 제천정(濟川亭)이 있었다. 한남동 현대 하이페리온 앞쪽 길가 장문로와 서빙고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에는 제천정터와 수표(水標)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
| ▲ 제천정과 수표 표지석 |
| ⓒ 이상기 |
"서울의 모든 친우 30여 인이 나중에 나와 제천정(濟川亭) 옛터에서 전별하였다. 취기가 나 썰매(雪馬)를 타고 강 얼음 위에서 놀다가, 서로 붙잡고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해가 저무는지도 몰랐다. 오후 3시가 다 되어 길을 떠나 양재역(良才驛)에 도착하니, 과천 현감(果川縣監) 김영국(金榮國)이 지대관(支待官)으로서 역참(驛站)에 와 있었다."
양재역 지나 청계산 정토사까지 가기로 했으나
|
|
| ▲ 한남대교로 들어서는 통신사 옛길걷기 회원들 |
| ⓒ 이상기 |
한강에서는 어떤 목적인지 요트 형태의 배가 운행한다. 한남대교를 건너면 길은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지만, 걷기 길은 잠원로를 돌아 경부고속도 옆으로 난 공원길로 이어진다. 통신사 걷기 참가자들은 신사동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식사 후 50명 정도가 줄어든다.
남은 회원들 100명 정도가 양재역을 향해 떠난다. 양재역은 순우리말로 말죽거리라고 불렸다. 역의 기능이 말을 바꿔 타는 등 관리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에는 항상 10여 필의 말이 대기하고 있었다. 통신사 삼사는 가마나 말을 타고 갔기 때문에 역을 반드시 지나가야 했다. 그러므로 한양에서는 청파역이, 과천현에서는 양재역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
|
| ▲ 양재역에 세운 말죽거리 표지석 |
| ⓒ 이상기 |
그리고 일곱째 날 충주에서 수안보까지 간다. 여덟째 날 수안보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새재를 넘어 문경까지 간다. 건기 일행이 경상도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 후 경상도 지역을 지나 제21차인 3월 29일(토)에 동래에 도착한다. 3월 30일(일) 해신제 등을 하며 하루 쉬고, 4월 1일(월) 배를 타고 부산에서 대마도로 떠난다.
덧붙이는 글 | 제10차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걷기팀이 3월 9일(일) 경복궁을 출발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도쿄까지 53일 동안 걸어간다. 조선시대 통신사의 역사와 비교하며 현재 통신사 옛길 걷기를 조명했다. 앞으로 이들 걷기팀의 충주와 부산에서의 활동상을 두 번 정도 더 소개할 것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심우정 총장 발언 중 "국민 왜 두 번 죽이냐, 사퇴하라" 외쳐
-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 그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두려워하는 이유
- '디올백 면죄부' 정승윤, 부산교육감 중도보수 단일후보 논란
- "이재명 상속세 완화, 진일보한 정치공학...이제 진보가 주류돼야"
- 전두환 장남 "피 흘릴 각오" 발언... 참담한 두 내란의 '조우'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윤석열, 왜 양승태·임종헌 언급했을까
- "심우정, 본안에서 '다투겠다'고? 직권남용 자백인 이유"
- '탄핵 변론재개 요구' 합세한 오세훈...강성 지지층에 호응?
- [오마이포토2025] '윤석열 파면 촉구' 김경수 단식 농성장 찾은 고민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