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현의 시선] 미국 없는 나토, 미국 없는 아시아?

차세현 2025. 12. 1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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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에 유리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안을 몰아붙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우린 유럽의 나토(NATO) 동맹국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 없는 나토’란 말은 이젠 낯설지 않지만, ‘미국 없는 아시아’는 아시아 동맹국에 여전히 생소한 용어였다.

「 중국의 대일 압박에 조용한 미국
강대국 ‘세력 균형’의 신냉전 개막
미·중 결탁과 동맹 배신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부산 김해국제공항의 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근자감’이 아니었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위해 미국이 아시아로 전력을 집중하면서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아시아 동맹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기 때문이었다. 트럼프가 국방비 증액을 압박할 때 아시아 동맹들은 그간 미군이 책임지던 안보 부담을 덜려는 의도라고 여겼을뿐 이를 미국이 유럽을 대하는 것 같은 ‘동맹의 방기(abandonment)’와 곧바로 연결 짓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과 이후 중국의 강력한 대일 압박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서 아시아 동맹은 ‘설마 우리도 유럽처럼?’이란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다.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2025 회계연도 국방예산의 GDP 대비 2% 증액을 약속한 일본은 이상 기류를 감지했다. 중국의 압박이 강화되는 와중에 미국의 대응이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이다.

12월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 함재기는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 조준을 하고, 중·러 폭격기들이 함께 난세이 제도를 빠져나와 수도인 도쿄를 향해 위협 비행을 했다. 이에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서둘러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과 통화를 했는데, 미 국방부는 중국의 대일 위협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은 채 ‘중국의 군사활동들’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을 썼다.

백악관 대변인은 한 수 더 떠 “일본은 위대한 동맹국”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으로선 여간 섭섭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급한 다카이치 총리는 “내가 워싱턴에 가도 좋고, 트럼프 대통령의 해외 방문 때도 좋은 만큼 조기에 만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과거 미·러 냉전 시대 강대국 외교의 귀환과 이에 따른 ‘강대국 간의 결탁(great power collusion)’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와는 달리 ‘강대국 경쟁’을 언급하지 않은 채 대(對)중국 정책의 목표를 상호 호혜적인 경제관계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의 도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다.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지역은 ‘미국 영역’, 아시아는 일정 부분 ‘중국 영역’으로 인정하는 듯한 인식을 담고 있어서다.

한발 더 나아가 헤그세스 장관은 최근 한 포럼에서 미·중 ‘세력 균형(balance of power)’을 언급했는데, 이는 미·러 냉전 당시 양국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였다. 자연스럽게 미국이 미·중 양극 체제와 두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줄을 이었다. 전문가들이 1기 NSS와 비교할 때 “중국에 더 행복한 메시지”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달라진 전략에 비춰보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미국 입장에선 오버 액션일 수 있다. 그러니 트럼프가 다카이치와의 통화에서 “대만에 대한 목소리를 낮춰라”고 조언했다는 보도가 일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실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미국의 강대국 외교 기조는 또 다른 아시아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그간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개입하면서 우리는 원치 않는데도 연루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강화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트럼프 2기 NSS와 최근 일본 사례를 보면서 과연 미국이 뉴욕을 향한 북한의 핵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울을 지키려고 하겠느냐는 ‘동맹의 방기’ 우려가 되살아나고 있다. 오비이락일지는 몰라도, 이번 NSS에 북한 관련 언급은 없었다.

제5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다. 한국 대표로는 김홍철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미국 대표로는 로버트 수퍼 전쟁부 핵억제·화생방 정책 및 프로그램 수석부차관보대행이 참석했다. 국방부 제공


독일 슈피겔지는 얼마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2월 1일 유럽 정상들과의 비공개 통화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큰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우크라이나처럼 대만이나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경우 한·일 정상이 미·중의 결탁과 동맹 배신을 걱정하며 각자도생을 얘기할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차세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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