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든 中 때리기 지속…韓, 반도체 윈윈 전략 펴야"(종합)
“AI는 국가대항전 넘어 기업연합전 전개”...“美의 중국 압박·자국투자 계속”
미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의 중국 견제와 자국 내 투자 확대 기조는 계속될 것이므로, 국내 반도체업계가 위기·기회요인을 간파해 선제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원천 기술을 개발로 대체불가능한 핵심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3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 주최로 열린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에서 주제발표에 나선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미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미·중간 긴장 상태는 이어질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먼저 권 교수는 미·중 반도체 시나리오를 3가지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미·중이 강대강 구조를 이루게 돼 각 클러스터가 형성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이 적어도 2개 이상의 다자간 기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미·일이 1980년대 맺었던 반도체 협정처럼 신사협정을 할 가능성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한계가 생기게 된다. 세 번째는 중국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이 더 이상 담보되지 못하는 경우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온 회사들은 경쟁력을 잃는 수순을 밟게 된다.
미·중 패권 기술 패권의 정점은 AI 반도체를 비롯한 AI 전체가 될 것이라고 권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미·중 패권 경쟁은 반도체를 넘어 AI·양자컴퓨터 등으로 확전될 것”이라며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몇 개의 팹리스(반도체 설계)가 만드는 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들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지만 내년에는 중국산 GPU들이 기술 격차를 좁히며 이 시장을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엔비디아 연합, 미국 IT·첨단기업 위주로 형성된 반(反)엔비디아 연합(UA링크), 중국판 반도체 AI 연합 등으로 구성된 각 연합체가 등장해 AI 판도를 재편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외 정책을 어떻게 유지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패권을 위한 민주당의 대외정책이 동맹국 클러스터 중심(cluster-centered)인 반면, 공화당은 자국 중심(US-centered)으로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만일 트럼프 2기 정부가 구성될 경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유지될 것으로 봤다. 동맹국 보다 미국 이익을 위해 정책을 구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권 교수는 "중국 압박과 자국 투자 확대 수단이 칩법 상 가드레일 조항 및 보조금 수령을 위한 동맹국 투자 요건 강화 형태로 전개될 것"고 언급했다.
또한 대만 등 동아시아 지정학적 리스크 대응이 바이든 정부 때보다는 떨어지게 될 것으로도 전망했다. 그는 "이는 대만발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 혼란이 생길 경우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 제조업에 미칠 영향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같은 공급망 혼란에 따른 경기 둔화, 경제 역성장 시나리오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2027년 종료 시한을 둔 칩스법 1기를 연장하되 전체 승계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권 교수는 "제조업 뿐 아니라 AI, 차세대 통신, 우주항공, 군사용 등 반도체 전반에 영향을 주는 영역들에 대한 칩스법 2.0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정부처럼 동맹국을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도 내다봤다. 권 교수는 "COCOM 2.0 같은 첨단기술 수출 통제 기구를 결성해 중국을 압박하고 CHIPS법 개정을 통해 자국 내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COCOM(Coordinating Committee on Multinational Export Control)는 1949년 미국을 중심으로 결성한 수출 통제 기구로 공산권 수출 금지 품목 명단을 작성하는 등 군사 우위 확보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미국은 중국 견제와 동시에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갈수록 동아시아에 대한 관여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내 생산 시설이 늘어나면서 동아시아 생산의존도가 자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중장기적 반도체 대응 전략이 중요하다고 권 교수는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고성능 AI 전용 메모리칩과 선행기술, 표준 및 로드맵 설정 등 제반 분야에서 미국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 파트너 위치를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국내 메가 클러스터 생태계 확충, 차세대 기술에 대한 R&D·인력 투자 등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고용창출, 해리스는 첨단기술 확보 위해 반도체 지원"
이날 행사에 참여한 패널 토론자들도 미국 리더십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반도체 총론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집권당에 따라 각론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신창환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미국의 반도체 투자 및 R&D 정책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국가 안보와 경제력 향상이라는 큰 틀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트럼프는 고용창출 중심의 반도체 기술에, 해리스는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반도체 기술에 중점을 두고 지원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는 고용창출 성과를 위해 팹 건설·운영 시 상주 인력 규모를 수치화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미·중 갈등 속 일부 화해 무드도 발생할 것으로도 내다봤다. 신 교수는 “누가 되든 미국의 초격차 반도체 개발을 위해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 동맹국과의 연합을 유지·강화시켜나가겠지만, 특정 분야에 있어 중국과 화해하는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특히 칩렛(Chiplet) 기술을 중심으로 미·중 간 기술교류 및 공동 표준 개발 등 선별적 협력 체제가 구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칩렛 기술이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춘 칩을 결합해 하나의 칩으로 만드는 기술로 중국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수율증가 및 제조과정 단순화가 가능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트럼프 당선 시 반도체 투자 지원이 자국기업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어 국내기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해리스는 동맹을 강조하고 있어 종속되는 상황을 유의해야 한다. 결국 한국이 외교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의견에 힘이 실리려면 무엇 보다 원천 기술을 확보해야 하며 이러한 전략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전무는 "국내 반도체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주요국처럼 직접 보조금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특별법 등 관련 법안들이 국회 내에서 신속히 검토되고 통과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화상 연결로 패널토론에 참여한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Gary Clyde Hufbauer)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되든 미국 내 반도체 투자에 크게 기여한 칩법은 바뀌지 않겠지만, 트럼프가 될 경우 아동, 주택 등 사회복지분야 지출에 관심을 쏟는 해리스보다 보조금 확대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대중 압박에 대해서는 “다음 대통령 임기동안 반도체산업의 주요 관심사는 AI가 될 것”이라며 “고성능 반도체와 인재 확보가 필수인데, 만일 트럼프가 된다면 이 두 가지를 중국으로부터 철저히 차단시키는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양국의 윈윈(win-win) 전략으로는 한-미간 반도체 제조, 보조금 등에 대한 사전 협의를 들었다.
그는 “중국에 어떤 반도체를 수출 또는 생산 못하게 할지 양국 간 합의가 있으면 좋은데, 특히 GPU와 삼성전자가 잘 만드는 (200단 이상) 3D 메모리칩이 중점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에 메모리칩을 중국으로 보내지 말고 제3국을 통해서도 중국에 전달되지 않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SK하이닉스 전문 분야인 팹과 패키징 및 테스트 유닛 등 생산능력 격차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한-미가 긴밀히 협의할 것으로도 전망했다. 그는 "기업/기술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적대국, 특히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미국이 원치 않기 때문에 한-미가 어떤 반도체를 생산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대만, 유럽연합과 같은 파트너국이 협력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새 보조금 계획에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게리 연구원은 "한국이 새 보조금을 내놓을 수도 있고 미국이 보조금 패키지를 확대할 수 있다. 양국의 서로 협의해 불필요한 중복 투자를 방지해야 한다"면서 "한국 엔지니어, 과학자, 사업가 등 전문가들이 신속하게 지속적으로 양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배터리분야 패널토론의 좌장을 맡은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로 한 결정 자체에 대한 이견은 이제 미국 내에 없다”며 “다만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견제할지에 대한 문제는 양당의 입장이 다르고, 의회 다수당 여하나 의회 내 규칙·절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미국의 중국 견제에 대한 정치적 디테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 이형희 서울상의 부회장(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 박성택 산업부 제1차관, 제임스 킴(James Kim)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 루카스 베드나르스키(Lukasz Bednarski) ‘배터리 전쟁’ 저자,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국내외 첨단산업 전문가 및 연구원, 기업인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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