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야 될 신인상 도둑 맞아 그대로 은퇴해버린 80년대 최고 아역배우

서울 여의도 국민학교 6학년.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이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조윤숙은 1978년 동양방송 아역 2기로 발탁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되어 <소나기>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녀의 맑고 처연한 눈빛은 곧장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에겐 석이와 연이의 순수한 첫사랑이 남았지만, 그 장면을 완성한 연이는 아역배우 조윤숙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조윤숙은 연희 역을 맡아 어른도 하기 힘든 감정선을 오롯이 표현해냈다.

누군가 "실제 연이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이라 했을 만큼, 연기와 존재가 하나로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혹한의 대관령, 그리고 혼신의 연기

1981년, 조윤숙은 영화 <하늘나라 엄마별이>에서 주인공 민수 역을 맡는다. 중학생이던 그에게 이 역할은 쉽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봉양하며 살아가는 시골 소녀의 삶, 그 고단함과 슬픔을 눈물 연기로 끌어안은 조윤숙은 겨울 대관령의 영하 30도 속에서도 맨손으로 개울가 빨래 장면을 찍었다.

손발이 동상에 걸려도, ‘춥다’는 말 한마디 없이 버텼다.

후시녹음조차 본인이 직접 마쳤다.

감기로 목소리가 쉬어 있었지만, 신인상을 위한 조건이 직접 녹음인 걸 알고, 끝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완성했다.


도둑맞은 신인상

1981년 제20회 대종상 영화제. 조윤숙은 여자 신인상 수상이 유력하다는 말을 들으며 드레스를 차려입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시상자가 말했다.

“<하늘나라 엄마별이>에서 열연한 주인공이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조윤숙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호명된 이름은 조윤숙이 아닌, 명정옥이었다.

명정옥

조윤숙 주변에 병풍처럼 등장했던 단역. 영화 전체에서 대사 몇 줄, 2분 남짓의 출연이 전부였던 인물이었다.

감독도 놀라고, 영화계가 말문을 잃었다

조윤숙

당시 영화 <하늘나라 엄마별이>의 이영우 감독과 김영한 조감독은 “수상자가 바뀌었다”며 즉시 집행부에 항의했다.

조윤숙

그러나 돌아온 답은 “일사부재리 원칙상 번복 불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16살 소녀 조윤숙은 충격과 상처 속에 그 길로 연예계를 떠났다.

이 사건은 조윤숙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한국 영화계가 두 명의 배우와 한 명의 감독을 잃은 날이기도 했다.

그날 신인상을 받은 명정옥 역시 단역으로 두어 편 더 출연한 뒤 영화계를 떠났고, 이영우 감독은 이 일을 계기로 영화계 은퇴 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조윤숙 근황 (벤쿠버교회에 새가족으로 등록할 때 찍은 사진) 출처: 커뮤니티

그리고 조윤숙은 서울예고를 거쳐 1985년 이화여대 무용과에 진학, 1991년 결혼 후 캐나다로 이민 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이야기가 올라온 적이 있다. 형이 대학에 들어가 처음 나간 미팅 자리. 그 자리에 조윤숙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놀랐고, 동시에 설렜다. <소나기>의 연이, 첫사랑의 아이콘 같은 존재가정말 평범한 여대생의 모습으로 미팅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너무 예뻐서 후광이 비쳤다고 한다.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두어 번 만난 뒤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친구들이 물었다.

“왜 더 안 만났어?”

그는 대답했다.

“응, 차일까봐… 내가 먼저 찼어.”

그 후, 그는 한동안 "조윤숙을 찬 남자"로 불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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