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폭식의 시대… 수치심을 먹고 큰다
식이장애에 대한 모든 것
김준기 지음 수오서재, 418쪽, 2만2000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가 전공의 과정을 마치던 1991년만 해도 식이장애는 익숙한 병명이 아니었다. 아직 먹고살기 힘든 나라에서 식이장애는 사치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1994년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연수 중인 병원의 청소년 병동 입원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식이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미 서구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식이장애 환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한국에서도 곧 식이장애 환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식이장애 클리닉을 개원했다. 그리고 이후 30년이 넘는 동안 1만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해 왔다.
역시나 그의 예상은 맞았다. 식이장애는 현재 급속히 증가하는 질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식이장애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심각한 저체중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성 거식증, 정상 체중을 유지하면서도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신경성 폭식증, 그리고 과체중 혹은 비만을 동반하면서 조절되지 않는 폭식을 반복하는 폭식 장애가 그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식이장애로 진단받은 환자 수는 2016년 7647명에서 2021년 약 1만3000명으로 5년 사이 70% 정도 증가했다. 저자는 주목할 만한 특징을 여럿 나열한다. 우선 발병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 10세 전후의 초등학생 환자 수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또 전체 환자 중 80% 이상이 여성이지만 남자 환자의 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식이장애는 정신질환 중에서도 사망률이 높은 편이다. 특히 신경성 거식증의 경우 방치할 경우 전체 환자의 5~10%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최근 식이장애가 늘어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 압력’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인을 짚는다. 우선 미의 기준이 점점 더 마른 체형으로 편향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마른 몸’은 외모를 넘어 자기 관리의 상징이자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소셜미디어를 3시간 이상 사용하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식이장애에 걸릴 위험이 약 2배 높다. 이밖에도 현대인의 삶에 불가피한 스트레스나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심성을 이용해 이익을 창출하는 다이어트 산업도 식이장애의 간접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책에는 제목 그대로 식이장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식이장애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놓치기 쉬운 식이장애 초기 증상과 진단 기준, 거식과 폭식 등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 방법 등이 임상 경험과 함께 정리돼 있다. 저자도 강조했듯이 무엇보다 책의 핵심은 식이장애 환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부분이다. 식이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이나 식이장애 환자의 가족이 아니라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들어 있다.

저자는 식이장애 증상을 생존을 위한 정서적 적응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식이장애 증상의 이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애초 수치심은 불안과 분노처럼 선천적으로 지니는 1차적 감정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배우는 후천적 2차 감정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내 말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었나’ ‘이건 상대방이 원치 않는 행동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수치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은 자신의 무리에 안전하게 소속돼 있는지 확인하는 정서 시스템을 발달시켰는데, 이것이 수치심의 기원이다.
중요한 것은 수치심이 그저 우리의 행동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감정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식이장애 환자에게 수치심은 단순한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이 아니라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독성 수치심’으로 변해 있다는 게 문제다. 독성 수치심이 주는 고통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다이어트에 집착하거나 폭식을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들이 다시 수치심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저자는 “수치심이 고통스러워 외면하고 숨고만 싶은 순간, 지금 내가 무엇을 수치스러워하는지,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고 있는지, 몸에서 어떤 반응이 얼마나 강렬하게 일어나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이 더 불안하고 두려울 수도 있지만 저자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려는 시도가 바로 회복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우선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우리 존재를 무가치하고 쓸모없다고 단정 짓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더 조화롭게 주변과 연결되도록 경계를 알려주는 감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수치심과 마주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용기를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수치심의 반응을 피하지 않고 말을 걸어보는 ‘멈춤과 인식’, 수치심에서 비롯된 몸의 신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체 감각 수용하기’, 자기 비난의 목소리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새로운 관계 형성’, “나는 실수해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보는 ‘자기 연민’ 등이다. 내 안의 수치심과 대화를 시작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식이장애 환자뿐 아니라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다.
·그야말로 식이장애의 모든 것을 알 수있다
·30년의 경험과 통찰이 녹아 있다
·수치심 부분만으로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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