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비겁한 종교 아니었다

조호진 2024. 10. 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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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야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 특집 다큐 <다시 쓰는 백년>

[조호진 기자]

 2017년 3월 1일 오전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한기총 주최로 3.1만세운동 구국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프롤로그, 한국 개신교에 희망은 있을까

한국 개신교는 전투기와 기관총 대금 헌납은 물론이고 교회 종까지 떼어다 바치면서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했다. 이들은 우상 숭배를 금하는 십계명을 짓밟았다. 일제의 사당인 '신사'(神社)를 참배하고 황국신민 사상을 전파하면서 조선의 청년들을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내모는 등 일제에 협력했다.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에는 국가조찬기도회로 독재자를 고무· 찬양하면서 종교 권력을 확장했다. 친일과 친미 그리고 극우 반공으로 무장한 한국 개신교 주류 세력은 일제가 패망하고 독재자들이 무너졌는데도 하나님과 민족 앞에서 저지른 죄를 통회 자복하거나 뉘우친 적이 없었고 심판받은 적 또한 없었다.

이들은 중·고교, 대학교, 신학교, 보육원 등을 사유화하고 차지하면서 거룩한 종교인으로 회칠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고 꾸짖은 선지자 세례 요한과 예수가 외려 반국가 사범으로 처형당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의 부활을 조롱하면서 욕망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이들은 김대중과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등 '좌파'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 것이 억울했다. 물질 숭배와 교회 세습 등으로 쇠락해 가는 한국 개신교 주류 세력이 반역의 무덤에서 드디어 부활했다. 윤석열 정권이 친일 극우화로 치닫자 기회를 엿보던 기독교 뉴라이트 세력이 독립기념관장 등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반역의 무대에서 다시 활개치고 있다.

친일과 친미, 친독재와 물질 숭배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 주류 세력이 장악한 한국기독교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을까.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한 물질 신앙과 무당처럼 천박해진 기복신앙 그리고 어둠의 도시를 붉은 무덤처럼 잠식한 한국 교회에 '복음'(福音 기쁜 소식)이 울려 퍼질 것인가. 아니면, 독사의 자식들에게 화가 있을 것인가.

천국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라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백년> 타이틀
ⓒ CBS
CBS-TV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 설립 100주년을 맞아 특집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백년>(연출 반태경 PD)을 지난 9월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방영했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 'CBSJOY'을 통해 재방영하고 있으니 짬을 내어 시청하길 권한다.

올해는 NCCK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NCCK는 '에큐메니컬 운동'(국가·지방·종파를 초월한 교회연합운동)을 위하여 창설된 범기독교 협의체다. 1924년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연합 구축을 위하여 결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전 NCCK)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 사회개혁을 위한 12조의 '사회신조'(社會信條)를 발표했다.

그것은 '기회 균등과 인종 차별금지' '남녀평등과 여성 지위 개선' '아동 인권 존중' '노동조합 설치와 근로시간 단축' '협동조합 장려와 상속세 누진법 적용' '최저임금법과 사회보험법 제정' 등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재 한국 개신교 주류 시각에선 상상조차 힘든 진보적 사회개혁 신조이다.

교회 장로인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사회신조'에 대해 "기독교가 단순히 하늘나라 천국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고민하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사회신조의 의미가 크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 기독교는 일제에 부역만 했을까. 교계 권력자들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부역하며 민족을 배신할 때, 북간도의 민족교회는 독립군 기지 역할을 하면서 봉오동 전투 승리를 견인했고, 민족독립을 위한 구국기도회와 부흥회를 열었고, 일제의 금융 횡포에 맞서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일제의 보복 만행에 의해 교회는 불태워졌고 기독교인들은 학살됐다.

한국 기독교는 비겁한 종교가 아니었고, 침묵의 종교가 아니었으며, 배신의 종교는 더욱 아니었다. 그 기독교인들은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으며 항일무장투쟁을 서슴지 않았다. 64세의 강우규 전도사는 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으며 기독교인 이재명은 민족 반역자 이완용 처단에 나섰다.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한 번 죽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함이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했던 기독교인 윤동주의 기도를 이어받은 기독교는 고난의 십자가를 메고 박정희 유신 독재와 전두환 군부 독재에 저항했다.

CBS만이 담을 수 있는 에큐메니컬 백년 이야기
 목요기도회에 참석한 김영삼 대통령과 사상가 함석헌 선생.
ⓒ NCCK
 1978년 인권 주일 연합예배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 NCCK
<다시 쓰는 백년>은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사독재 억압통치에 맞서 인권과 민주화, 평화운동의 십자가를 메고 저항했던 한국 개신교 에큐메니컬 운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다시 쓰는 백년>은 박정희 유신 헌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최초의 사건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의 주역인 고(故) 박형규 목사의 생전 육성을 통해 NCCK의 3선 개헌과 유신 반대 운동을 다각적으로 조명했다. NCCK는 유신을 반대하다 구속된 양심수와 70년대 동일방직과 YH무역 해고노동자 등 고난받는 이들에게 피난처가 됐다.

NCCK는 목사와 전도사 등이 투옥되자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를 시작했고,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던 언론인들이 구속되자 금요기도회를 열었다. 5·18 광주민중항쟁에서 시민군 활동을 하다 광주를 탈출한 기독 청년 김의기는 기독교방송국 6층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와 광주 유혈진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뿌린 뒤 투신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독재자를 무너뜨린 것은 한국 기독교였다. 억눌린 자와 갇힌 자를 해방하라는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한 NCCK는 기독교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의 인권 탄압 사실을 국제 사회에 고발했고 독재자는 끝내 무너졌다.
 목요기도회를 회고하는 이해동 목사.
ⓒ CBS
<다시 쓰는 백년>은 엄선한 NCCK 아카이브 사진을 통해 기독교 사회 운동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1970년대 말 인권 주간 연합예배에서 기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분신한 김종태 열사의 장례식에서 설교하는 문익환 목사와 1980년대 초 목요기도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쓰는 백년>은 다루지 않았으나 제주 4·3 항쟁 70주년을 맞이한 2018년 4월 NCCK는 '제주 4·3 역사 정의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에서 학살에 동참한 기독교인의 과거를 사죄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과 빨갱이 사냥으로 저지른 극우 기독교의 만행에 대한 역사 증언과 기록은 계속되어야 한다.

도시를 뒤덮은 붉은 십자가, 하지만 피난처는 없다
 <다시 쓰는 백년> 2부 내레이터로 참여한 새민족교회 황푸하 목사
ⓒ CBS
사유화된 대형 교회의 목회 세습과 극우 기독교의 정치세력화,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교회의 모습에 실망한 시민들은 교회에 등을 돌렸고 청년 교인들은 교회를 떠났다.

대형 교회들은 교회를 이벤트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면서 부흥에 성공했다. 교인들은 쾌적한 예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센터 같은 교회를 선호하고 영세한 개척교회는 오지 않는 교인을 기다리다 문을 닫고 가난한 목사들은 실업수당조차 받지 못한다. 밤이 되면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도시를 뒤덮는데도 고통스러운 삶에 시달리는기독교인들은 눈물의 기도를 드릴 교회를 찾지 못해 목자 잃은 양처럼 유리방황한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NCCK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하지만 고난받는 자는 여전히 피난처를 찾고 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와 궁중족발 피해 상인,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한 거리 기도회와 부활절 예배,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위한 캠페인, 정의와 생명을 위한 뉴욕 평화대행진 참여 등으로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NCCK의 고민을 <다시 쓰는 백년> 2부에서 다루었다.

<다시 쓰는 백년> 2부에 등장한 '새민족교회' 담임목사이자 '옥바라지선교센터' 운영위원장인 황푸하 목사처럼, 배달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쿠팡의 로켓배송을 규탄하면서 심야 노동 금지를 촉구한 NCCK 정의평화위원회가 "세계교회와 연대하여 쿠팡의 살인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할 것이며, 사회적 타살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한 것처럼, 이기기 힘든 싸움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 에필로그, 반태경 PD여 더욱 고군분투하라
 반태경 피디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다시 쓰는 백년>
ⓒ CBS
CBS-TV 반태경 PD가 2019년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와 전국언론노조 CBS 지부장 임기를 마치고 제작한 <다시 쓰는 백년>은 뛰어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연대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제작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열악한 제작 조건에서 분투한 그의 수고와 노고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가 아니라면 그 누가 북간도의 독립운동과 기독교 사회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여 오욕으로 일그러진 한국 개신교 역사에 일침을 가하겠는가.

CBS 또한 대형 교회의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과 권력이 장악한 한국 개신교계에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는 진보 크리스천 방송쟁이는 불온할 뿐이다. 뚝심 있는 그가 아니라면 <다시 쓰는 백년>은 제작비와 인력 등이 열악한 상황에 부딪혀 좌절됐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채널이 여럿이지만 친일과 친독재로 얼룩진 한국 기독교의 민낯을 까발릴 방송은 CBS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므로 CBS-TV 고참 PD 반태경의 고군분투는 계속되어야 한다. 혼자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지 않게 하려면 고난받는 자, 억울한 자, 작은 자들이 연대해야 한다. 말뿐인 기도보다는 제작 투쟁에 가담하는 행함 있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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