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가 된 블루워커, '무록' 양희종이 증명한 것

이준목 2023. 2. 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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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가치 설명할 수 없는 선수' 수식어처럼 팀 위해 헌신

[이준목 기자]

▲ 슛하는 양희종 15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안양 KGC 인삼공사와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기. KGC 양희종이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블루워커(Blue collar worker)는 본래 생산직-현장직 노동자 계층을 일컫는 용어로, 사무직을 의미하는 화이트 칼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스포츠에서 힘들고 궃은 일을 전담하는 포지션이나 그런 성향의 선수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대중들에게 더 익숙해졌다. 단체종목들, 특히 농구같이 격렬한 스포츠일수록 화려함이나 스타성은 덜해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수비, 몸싸움, 허슬플레이 등에서 팀을 위하여 희생해주는 블루워커의 가치는 필수적이다.

여기서 양희종(안양 KGC 인삼공사)은 '블루워커도 성공한 선수를 넘어 레전드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진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데뷔 이래 오직 한 팀에서만 '원클럽맨'으로 활약했으며 수 차례의 우승을 이끌며 구단과 모든 영광의 역사를 함께했고, 국가대표로도 10년 넘게 활약하며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내로라하는 슈퍼스타들도 부러워할 만한 위대한 커리어를 이룬 선수가 정작 블루워커의 대명사로 꼽히는 양희종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양희종은 최근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양희종의 소속팀인 인삼공사는 지난 2월 22일 "정규리그 마지막 홈 경기인 3월 26일 원주 DB와의 경기에서 양희종의 은퇴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은 은퇴 시점을 시즌 후반에 발표하면서 은퇴투어같은 이벤트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정도다.

팀의 약점을 메워줬던 양희종

양희종은 농구명문 삼일중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200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안양 KT&G(현 KGC)의 유니폼을 입었다. 양희종은 이미 연세대 재학 시절부터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을 만큼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특히 양희종이 데뷔한 2007년은 김태술, 함지훈, 정영삼, 이동준, 김영환 등 프로농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급 선수들을 대거 배출한 '황금 드래프티'로 꼽힌다. 수비형 선수에 가까운 양희종이, 대학 동기이자 그해 프로농구 신인왕을 수상하게 되는 포인트가드 김태술-귀화혼혈선수 이동준에 이어 신인드래프트에서 3번째로 지명받았을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눈에 띈다.

사실 양희종은 고교와 대학 초기만 해도 오히려 전형적인 블루워커 타입과는 거리가 있었다. 본래 공격에도 재능이 있었던 양희종은 대학 고학년이 되면서 팀 사정에 따라 빅맨 수비나 보조리딩같은 롤까지 종종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궃은 일에 더 주력하는 선수가 됐다. 감독 입장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겨도 자기 몫을 해내는 양희종의 헌신과 다재다능함을 십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양희종은 프로 진출 이후에도 철저한 '팀플레이어'로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정립했다. 양희종 데뷔 초창기의 KT&G는 주희정과 마퀸 챈들러 등을 중심으로 한 단신 라인업에 빠른 농구를 펼치는 '런앤건' 팀이었고, 리빌딩을 거쳐 재단장한 2010년대 이후의 KGC에서는 오세근-이정현-박찬희-김태술 등 각 포지션에 쟁쟁한 올스타급 선수들이 포진해있었다. 양희종은 자신보다 공격에 재능있는 팀 동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면서, 본인은 수비 전문과 리바운드 가담 등 궃은 일에 전담하여 팀의 약점을 메워주는 블루워커 역할을 통하여 정체성을 찾았다.

그래서 양희종의 대표적인 별명이 바로 '무록'이다. 기록이 없다는 의미로, 그의 플레이를 보면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 눈에 보이는 1차스탯이 두드러지지 않기에 생긴 표현이다. 실제로 주전으로 풀타임을 가깝게 소화하고 진짜 득점이나 슈팅 기록이 전무했던 경기도 종종 있었다. 양희종은 정규리그 커리어 통산 기록은 610경기에 나와 평균 6점, 3.8리바운드, 2어시스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록이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양희종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양희종은 상대 주득점원을 꽁꽁 묶는 수비나,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스크린-박스아웃-볼 운반 등 농구 기록으로 집계되지 않는 분야에서 누구보다 팀에 공헌하는 선수였다.

양희종은 2014년 최우수수비상과 5년 연속 수비 5걸 등 커리어에서 수비 관련 개인상만 역대 최다인 7개나 받았다. 어지간한 부상을 참고 뛸 만큼 근성이 강했고 책임감이 투철하여 리더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양희종을 논할 때는 항상 '기록으로 가치를 설명할 수 없는 선수'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붙곤했다.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 레전드
 
▲ 슛하는 양희종 6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수원 KT 소닉붐과 안양 KGC 인삼공사의 경기. KGC 양희종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희종의 농구인생은 곧 KGC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신인 SBS-KT&G 시절만 해도 만년 중위권팀 정도에 불과했던 KGC는 양희종이 입단하고 팀의 중심으로 올라선 시점과 맞물려 프로농구의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 양희종은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오세근과 더불어 2012년과 2017년, 2021년까지 구단이 달성한 세 번의 챔프전 우승 순간을 모두 함께한 유이한 선수다. 양희종은 상무 시절을 제외하면 프로무대에서는 오직 KGC의 유니폼만을 입고 주장까지 역임하며 헌신을 다했다.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도 빛났다. 양희종은 2000년대 중반-2010년대 후반까지 국가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포워드로 활약했고 농구월드컵도 두 번이나 출전했다. 특히 커리어의 정점인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12년 만의 금메달을 수확하던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필리핀과의 예선전, 이란과의 결승전 등 중요한 고비마다 상대 주득점원을 악착같이 따라다니며 봉쇄하고 궃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양희종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숨은 MVP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블루워커나 수비형 선수라는 이미지와 달리, 양희종의 진정한 강점 중 하나는 유독 '큰 경기'에 강했다는 것이다. KGC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 2012년에 원주 동부와의 챔프전 6차전에서는 우승을 확정짓는 위닝샷을 작렬했다. 2017년 삼성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시리즈 평균 3점 성공률 56%에, 특히 최종 6차전에서는 3점슛을 9개 던져서 8개나 꽂아넣는 신들린 결정력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상무 복무 시절에는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국제대회에 나서서 팀내 평균 득점 1위를 기록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팀에 대한 충성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 뛰어난 전술수행능력에 더불어 중요한 순간에 더 강해지는 '강심장'은, 양희종을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닌 레전드급 선수로 만들어냈다.

물론 양희종에게도 빛이 있으면 그림자 역시 존재했다. 전성기에는 수비로 명성을 떨친 만큼이나 지나친 승부욕과 거친 플레이로 도마에 오르며 동업자 정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한국의 브루스 보웬', '에이스 킬러'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2012년 동부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매치업 상대인 윤호영을 의식하여 도가 지나친 도발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고, 커리어 내내 수없이 맞붙었던 득점왕 출신 문태영과도 수 차례 충돌하며 앙숙관계를 형성했다. 다만 가정을 꾸리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언행도 진중해지면서 커리어 후반기에는 이미지가 많이 개선됐다.

양희종과 함께 동시대를 풍미한 동기들이나 슈퍼스타급 선수들도 말년에는 부침을 겪기 마련이었다. 양희종처럼 프랜차이즈 스타-원클럽맨-프로 우승-국가대표 우승 등을 모두 이뤄낸 선수는 프로농구 전체 역사를 찾아봐도 손에 꼽는다. 현재 정규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KGC가 올해 통합우승을 차지한다면, 양희종은 1998년의 마이클 조던이나 2003년 데이비드 로빈슨처럼 '은퇴 시즌에 우승'이라는 위업까지 추가하게 된다. 그야말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복받은 커리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1만 득점-리바운드같은 눈에 보이는 기록이 아니라도 '팀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한 선수'도 충분히 레전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양희종의 커리어는 스포츠계 모든 블루워커형 선수들의 롤모델이 되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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