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지은 집의 최고 매력, 다신 아파트로 못 돌아가 [어쩌다 집짓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지희 기자]
▲ 스무 살 시절의 반짝거리는 마음을 집짓고 다시 찾게 됐다. |
ⓒ 최지희 |
점괘는 정확했다. 타로 아저씨 말대로 내 주변에서 평생 얼쩡거릴 남자는 (형제만 넷인) 남편과 아들 둘까지, 도합 셋이 기본값으로 세팅됐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결혼 생활과 육아는 내게 너무 '고레벨'이었다. 아내와 엄마 역할은 책임과 의무라는 '봇짐'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일이었다. 제멋대로 형편없이 살아온, 기껏해야 경험치 2정도의 하수였던 난 그저 '내일은 레벨업'을 위해 달렸다.
▲ 우리 집 빨래 건조대에는 항상 남자들 옷이 가득 걸린다. |
ⓒ 최지희 |
아이러니하게도 빛을 잃은 덕분에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됐다. 이왕지사 내려놓지 못할 봇짐이라면 기꺼이 즐겁게, 내일보다는 지금, 가끔 철없어도 괜찮은 다정한 삶을 살자는 결심.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정답이 없는 질문과 대면하면서 마침내 오답을 각오할 용기가 생겼다.
그 용기의 시작이 집짓기였다. 그렇게 집 짓다가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마흔 넘은 나이에 꿈을 찾아 나서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집짓기는 일종의 자기계발(?)이었던 셈이다. 비록 '대출'의 영역까지 야무지게 계발하게 되리라 미처 예상하진 못했지만.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집 때문에 빚이 생겼고, 가계 수입은 줄고 얼굴의 주름은 늘었는데 왜 때문인지 마음은 다시 반짝반짝해지고 있었다. 마치 스무 살 때처럼. 그 이유를 한동안 찾지 못하다가 집짓기에 관해서 물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알게 됐다. 다른 삶, 다른 인생을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모두 반짝거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의 들뜬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함께 꿈꾸며 설렜다.
▲ 시골 주택에 살다보니 소소한 즐거움에 오늘이 행복하다. |
ⓒ 최지희 |
"여보, 만약에."
"(경계) 왜? 뭐가?"
"아니, 만약이라니까. 진짜 만약에 다시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 짓고 싶어?"
"만약에?"
"당연하지. 어휴~ 어떻게 또 집을 짓겠어? 말도 안 되지."
"하긴. 그렇다면 음... 더 깊은 숲속에 작은 단층집."
슬며시 웃음이 번진다. 남편도 이제 나처럼 더 이상 아파트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집이 좋아서 퇴근하고 한시라도 빨리 집에 오고 싶다던 남편의 말은 백 퍼 진심이었다.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투망 던질 타이밍에 찌나 쳐다보며 자빠져 있을 내가 아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슬쩍 봐 둔 땅이 있는데 말이야, 그게 어디냐면, 여...보오?"
싸늘한 눈빛을 쏘아대며 홱 돌아서는 남편의 (익숙한) 등짝을 보니,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열일하는 무릎 연골에 단층집을 선물할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반짝거린다.
오케이, 좋았어. 어쩌다 '두 번째로' 지을 집은 숲속 오두막 단층집! 너로 정했다. 그 집은 부디 출세하고 떼 돈 벌어서 빚 없이 지어 볼 테다. 집짓기에 나서면서부터 수십 번째 이어지는 그놈의 낭창한 '결심'을 오늘도 기어이 하고야 말았다.
※ '어쩌다 집짓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어쩌다 집짓기' 연재 글은 기사 발행 후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려 이상으로 위험한 인물... 윤 대통령 밑에서 살아남기
- 대법 선고 5년 기다리다 벌어진 일... "원고가 사망했습니다"
- 안전운임제 도입 후 벌어진 일... 정부는 책임질 수 있나
- 광화문광장 '역사물길' 왜곡 논란, 왜 기독교만?
- 역사교사모임 회장 "자유민주주의? 한국 학생만 편협한 교육 받는 것"
- 12.12 반란군에 맞서다 숨진 김오랑 중령... 순직 아닌 '전사'로
- [보도 후] 버스회사가 서울시장 상대로 행정심판 청구한 이유
- 정진석 "이상민 해임건의? 이재명 이슈 덮으려는 것"
- 김진표 국회의장님, 지금은 2022년입니다
- 주거지이자 관광지인 골목... "살 수 없다"와 인증샷의 큰 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