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인민군 최초 상륙 강릉 "전쟁은 안 돼!"

김인성 2025. 6. 2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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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각 시·군에서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돼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때 강릉에만 200명이 넘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은 이젠 80여 명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이 시작된 건 역사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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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당시 인민군 강릉에 가장 먼저 상륙
참전용사 급격히 감소, 보훈 혜택 확대와 처우 개선 필요

오늘 6·25 전쟁 제75주년 기념일을 맞아
도내 각 시·군에서는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특히, 강릉은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가장 먼저 상륙한 지역이어서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참전용사들의 비장한 각오가 가득했습니다.

김인성 기잡니다.

제복을 갖춰 입은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어린 학생들의 손을 잡고 줄지어 입장합니다.

현역 군인들은 거수경례로 예를 갖춥니다.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칩니다.

직접 겪었던 6·25 전쟁을 회고한 한 참전용사는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돼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만근 / 6·25 참전용사]
"이 땅에서는 이와 같은 무모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같이 단결해서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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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들이 강릉시 강동면에 있는
6·25 전쟁 남침사적탑을 찾았습니다.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해무가 잔뜩 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시,
강릉 등명해변으로 인민군이 상륙한 곳입니다.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기습 남침했던
새벽 4시가 되기 전 먼저 상륙해
강릉 방향으로 북진해
군선강에서 8사단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숨' 제1부]
"연곡천에서는 8사단 10연대가 남진하는 인민군 제1경비여단과 5사단에 맞서야 했고, 군선강에서는 8사단 21연대가 등명으로 상륙한 인민군 945 육전대와 삼척 임원으로 상륙한 제766부대의 북진을 저지해야 했다."

6·25 전쟁에 참전해 다리를 다친 참전용사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최남두/96세. 당시 육군 8사단]
"입대하자마자 전투가 붙어 놓으니까 소대장 얼굴도 못 봤다고. 소초장 얼굴도 못 보고 그냥 참호 속에서 포가 어떻게 날아오는지 숨어 있다가 포가 떨어졌는데 뒤에 떨어졌고, (우리가) 셋인데 둘이 죽고 나는 살아서..."

한때 강릉에만 200명이 넘는 6·25 전쟁 참전용사들은 이젠 80여 명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훈 혜택이 회원 본인으로 한정돼 있다보니
처우 개선이 시급하고, 회원 자격의 가족 승계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춘백/대한민국 상이군경회 강릉시지회장]
"6·25 세대 이분들 처우 개선이 우선돼야 된다고 봅니다. 만약에 이분들을 소홀히 한다면 만약에 이 나라에 전쟁이 났을 때 누가 군에 가겠습니까?"

수도권에서 가장 멀어 군인 수도,
무기도 가장 열악했던 영동지역에서
6·25 전쟁이 시작된 건 역사의 교훈입니다.

[임호민/가톨릭관동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적으로 많은 외침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안보 의식과 또 국가를 지키겠다는 그런 확고한 자세 또 준비 이런 것들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MBC뉴스 김인성입니다.(영상취재 : 양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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