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오기출 기자]
▲ 2022년 8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에서 열린 제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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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위기 예상되자 정부와 산업계 때늦은 협의
이번에 문제가 된 미국의 청정경쟁법은 2022년 6월 미국 상원에서 발의되어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를 받는 초당적 법안으로, 당장 2025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청정경쟁법이 시행되면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 알루미늄, 화학제품, 유리, 종이 등 12개 제품에 대해 미국의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톤당 55달러(약 7만 4000원)를 부과한다고 한다. 부담금은 매년 5%씩 상승해 2030년에는 톤당 90달러(약 12만 1000원)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 탄소국경세는 철강, 알루미늄 등 6개 제품에서 시작하지만, 미국은 12개 제품에 국경세를 부과하고 있어 그 파급도가 훨씬 크다. 2023년 한국의 미국 수출은 총수출액의 18.3%로, 445억 달러(약 60조 원)라는 역대 최대 무역흑자를 냈다. 그런데 한국이 미국에서 최대 무역흑자를 내자마자 미국발 탄소국경세로 위기를 맞이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미국의 '청정경쟁법'이 왜 한국에게 문제가 될까? 한국의 탄소발생량이 미국보다 높아 부담금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미국의 철강 약 70%가 고철을 전기고로로 녹여 생산하는데 비해, 한국은 반대로 철강 약 70%를 석탄용광로로 만든다고 한다. 미국 전기고로의 탄소 발생량은 석탄용광로의 25%에 불과해서 사실상 한국의 탄소집약도는 미국보다 약 4배 높다. 이 탄소집약도의 차이로 국경세가 부과되기에 한국의 미국 수출이 위축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 청정경쟁법 대상인 한국산 알루미늄, 정유 등 12개 제품들 모두 탄소집약도가 높아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철강 생산 세계 1위인 중국은 어떨까?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으로 미국에 수출하는 중국의 철강 규모가 크지 않기에 그 영향도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1월 25일 미국 철강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미국의 수입 철강은 한국이 4위로 263만 톤, 중국은 7위로 59만 톤에 불과하여 한국이 약 4.5배가 많다. 따라서 청정경쟁법으로 중국이 받을 타격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중국은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대책도 세운 것으로 보인다. 7월 11일 <로이터>는 올해 1월에서 6월까지 중국 지방정부가 승인한 신규 철강 생산 프로젝트 710만 톤이 모두 고철을 녹이는 전기고로 방식이라고 밝혔다. 동 보도는 석탄용광로로 만든 철강은 2030년에 유럽연합에 톤당 약 250위안(약 5만 원)의 부담금을 내야 하지만, 전기고로 방식은 추가 부담금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8월 2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6년부터 10년간 철강의 유럽연합 탄소국경세 누적 금액이 3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 영향을 줄여가고 있지만, 한국은 심각한 타격이 예상되어 실효성 있는 전략이 절실해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의 1월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미국과 유럽연합 수출 비중이 총수출액의 29.1%라는 점에서 유례 없는 위기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철강은 자동차, 배터리 등 제반 제품의 소재이기에 철강의 생산 위축은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지난8월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제1차 산업 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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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산업부는 ▲ 철강 부문의 핵심기술 개발 ▲ 세제·융자 지원 강화 ▲ 기업 간 탄소 데이터를 공유하는 플랫폼 구축으로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이 강조한 핵심기술인 그린수소의 실태는 어떨까? 그린수소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서 만든 수소다. 따라서 그 전제는 풍부한 재생에너지여야 한다.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미국의 '에너지경제 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8월 14일 보고서에서 2023년 한국의 재생에너지는 9.64%로, 세계 평균 30.25%에 한참 뒤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31일 공개한 한국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신(新)재생에너지는 2038년이 되어야 32.9%에 도달한다고 밝혔다. 15년이 지난 2038년이 되어야 지금의 세계 평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15년 이상 뒤처져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무엇으로 그린수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일까?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의 탄소중립 대응 실태와 지원 과제〉라는 조사보고서에서 수소사업을 추진 중인 A사는 "탄소중립을 위해 무탄소 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을 듣고 수소라는 신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기존 에너지보다 비싸 수요처도 찾기 힘들고 정부가 주는 인센티브도 경쟁국에 비해 현저히 부족해 계속 사업을 이어갈지 고민"이라고 보고했다.
아울러 풍력설비 제조기업인 B사는 "풍력 시장 확대를 기대하며 관련 제품 개발과 설비투자를 추진했는데, <풍력발전 보급 촉진 특별법>은 국회 계류 중이고 전력 계통도 부족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탄소국경세가 작동하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탄소중립에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국가 전체가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정부와 국회가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가 없고, 탄소중립 시장도 없는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국가적 수준에서 명백한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 폰데어라이엔 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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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유럽연합 정책전문지 <유랙티브>는 유럽연합 철강 기업들이 폰데어라이엔의 공약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린 철강 시장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린 철강은 기존 철강보다 톤당 300유로(약 44만 2500원)가 비싸 시장이 없었는데, 국가가 선도적으로 비싸게 구입해 시장을 만든다는 것을 지지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공공 조달 시장 규모는 매년 2조 유로(약 2950조 원)이며, 국내총생산(GDP)의 14%로 규모가 크다. 공공부문이 집행하는 건설 분야에만 유럽연합 철강의 35%를 사용하고 있다.
국가가 그린 철강의 시장을 선도하는 이 공약은 이미 독일 정치인들이 승인했고, 노동조합들과 환경단체들이 지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보조금보다 더 효과적으로 탄소중립 시장을 만들어 청정산업과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연합의 청정산업딜은 시장의 창출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가 한국 제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가 현재 발표한 핵심기술 개발, 세제와 융자 지원으로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기업들, 노동조합, 지역공동체, 시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공공부문이 탄소중립 시장을 선도하는 유럽연합의 정책들을 전략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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