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3개로 버틴 무대... 여돌 다이어트 따라 하다 깨달은 것

박주연 2026. 5. 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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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돌 덕후의 고백 ③] 극단적 식단 강요하는 업계, 팬들까지 자기혐오로 내몬다

케이팝 여돌을 사랑했지만 케이팝을 사랑하지 못한 덕후의 환희와 기쁨, 슬픈, 분노의 축약적인 기록이다. <편집자말>

[박주연 기자]

최근 컴백한 여자아이돌 그룹 빌리의 츠키의 무대 영상이 SNS에서 화제다. 츠키는 예전부터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과 탁월한 퍼포먼스로 '무대 장인'이라 불린 멤버다. 하지만 무대만큼 츠키의 다이어트가 화제가 됐다. 안무나 노래의 탁월함 대신 "살 빼서 더 예뻐졌다"는 댓글과 언론 보도가 상당했다.

새 앨범을 발매한 후 출연한 방송에서도 츠키를 비롯해 빌리 멤버들의 다이어트 비결을 물었다. 극단적인 방식이기에 "이렇게 다이어트하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오긴 했지만, 결국 대중을 사로잡는 건 '다이어트에 성공한' 여자 아이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청소년 시절부터 여자 아이돌(이하 여돌)을 사랑한 일명 '여덕(여자 아이돌 덕후)'으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돌이 겪는 수많은 고초, 사회가 여돌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이다. 동시에 내적 갈등도 있었다. 여돌의 몸과 내 몸의 간극이다.

여돌의 몸
 빌리의 '츠키'
ⓒ 츠키 SNS
청소년 시절, 내가 사랑했던 여돌들은 당연히 예뻤다. '요정'이라 불리던 이들이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을 사랑하는 감정 속엔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것 말고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자 롤모델이었으니까. 물론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건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저 언니들처럼 멋있는 여자가 되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등. 그리고 '저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여자가 되기 위해선 저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 또한 그걸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에게 엄격한 외형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도 서슴지 않았으니까. 예쁘고 날씬할 것, 이 기준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여돌을 사랑하는 건 이들을 찬양하는 기준마저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내 몸과의 불화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일이었다.

마르고 얇은 아이돌의 '한 줌 몸'은 아이돌이 수행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 중 일부로 여겨진다. 이건 케이팝 세대가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당연한 일이 되고 있다. 아이돌 혹은 연예인으로서 외형을 가꾸는 건 정말 당연한 거 아니냐,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연예인으로서 어떤 '관리'를 하고 노력을 하는 건 직업인으로서의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오랫동안 여돌을 지켜봐 온 내가 보기에 그 방식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여돌은 앨범을 발매할수록 콘셉트도 새로워야 하지만 외적인 변화도 이뤄내야 한다. 예쁜 것도 기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돌은 성형 티가 과하게 나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예뻐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돌은 어렸을 때 사진을 올리며 '원래 예뻤다'는 걸 증명하기도 한다.

몸에 대한 기준도 있다. 살을 빼면 뺄수록 무대를 열심히 준비한 것처럼 평가받는다. 그렇기에 여돌의 다이어트 에피소드는 이제 흔한 서사 중 하나다. 여돌 중에 그런 에피소드 하나 없는 이가 없을 정도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기획사에서 몸무게를 확인해 측정 전날 변비약을 먹었다, 일부러 헌혈했다, 사과 3개로 3일을 버텼다, 아몬드 5~6알로 하루를 버텼다는 등 극단적 식단의 경험이 공유된다. 몇몇 기사는 이런 이야기를 '찐 다이어트 꿀조언'이라고 포장해 다루기도 한다.

우리의 몸
 이제는 여돌을 다이어트 하도록 내몬 분위기를 미워한다. Unsplash Image
ⓒ senadpalic on Unsplash
나 또한 때때로 내가 사랑한 여돌들이 했다는 다이어트에 도전한 적이 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다이어트 해가며 나름의 만족감 그리고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여돌들의 몸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무대에 서고 카메라에 비치는 그들의 몸은 많이 작고 많이 말랐다. 아무리 여러 방식의 다이어트를 여돌의 몸이 내 몸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와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만큼 좌절되는 일은 없다. 그 좌절을 몇 번이고 겪으며 어느새 난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여돌의 몸과 다른 내 몸을 미워하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움의 감정이 거세져 나와는 다른 빼빼 마른 여돌의 무대를 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결국 한동안 여돌을 사랑하는 일을 잠시 쉬어갔다.

물론 지금 다시 여돌을 사랑하고 무대를 찾아보고 있다. 며칠 전 발매된 엔믹스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으며 '이게 내가 사랑한 케이팝이지'라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노래와 무대에 반한 엔믹스뿐 아니라 여전히 무대에 선 여돌의 몸은 나와는 다르다. 다만 이제 내 몸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사랑을 방법을 찾았기에 여돌을 사랑하되 여돌의 몸이 되려 나를 내몰지 않는다. 그 대신 여돌을 다이어트 하도록 내몬 분위기, 이들의 극단적 다이어트 비법을 앞다퉈 소개하는 상황을 미워한다.

케이팝에는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여돌의 극한 다이어트를 부추기는 분위기, 마른 몸에 대한 추앙을 멈춰야 한다. 맛있는 걸 먹은 그리고 빼빼 마르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여돌들의 노래와 퍼포먼스, 무대는 충분히 아름답다. 여돌이 그리고 여돌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몸에서 자유로워 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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