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생명받았는데, 주고 가야지”… ‘다정한 남자’ 이건창씨[기억저장소]
“받은 장기를 다시 기증할 수 있나요?”
홍근 이대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은 한 외래 환자의 질문을 잊지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 어렵사리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일상을 찾아가던 그는 간 이식을 받은 덕분에 몸이 좋아졌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도 가능하다면 기증 등록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겨우 생명을 되찾은 환자가 다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셈이다.
2013년 가을 무렵, 홍 교수가 몸담았던 이대목동병원이 첫 간 이식 수술을 시작한 해 만난 환자 이건창(사망 당시 62세)씨 이야기다.
당시 건창씨는 간경변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간신증후군 환자로, ‘뇌사자 이식 0순위’가 돼 간이식을 받게 됐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수술대에서 개복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장기에서 피가 쏟아지던 위급한 상태였다.
그런 건창씨 이식 수술을 맡은 게 홍 교수다. 밤샘 수술로 살려낸 건창씨가 건강을 회복하며 일상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했다. 그런데 건창씨는 건강을 되찾은 이듬해인 2014년, 새 생명을 받았던 이대목동병원을 찾아 아내 주정희씨와 함께 장기기증희망등록을 했다.
홍 교수는 “의료진이 기증받은 환자에게 기증을 (서약하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환자가 먼저 기증받은 사실에 너무 감사해서 물어보는 경우는 있는데, 건창씨는 항상 감사해하는 마음을 표현하던 분이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건창씨는 이식 환자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2~3개월에 한 번씩 오는 외래진료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 게 불과 며칠 전이였다.
그런데 건창씨 아내 정희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간이식을 하겠냐는데 어떡해요, 교수님.”
건창씨가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이 왔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고 했다. 원래 안 좋았던 신장 기능이 악화해 신장 이식 대기를 올려두고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던 건창씨는 그날도 출근하는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서 병원에 가 투석을 마치고 집에 잘 돌아왔는데 사고가 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린 가족은 건창 씨의 평소 바람대로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그렇게 건창씨는 6년 전 자신이 받은 간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하고, 2019년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정희씨는 자신보다 8살 위였던 건창씨를 “참 다정한 남편”이었다고 떠올렸다. 결혼 30년이 다 되도록 건창씨는 항상 “정희야 정희야” 이름을 불러줬다고 했다.
1986년 백화점 판매원이었던 정희씨와 처음 만났을 때 건창씨는 인근에서 쟁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리봉동에 있던 두 사람 일터가 가까워 지인들과 다 같이 밥을 먹은 게 시작이었다. 밥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만남의 장소는 카페에서 포장마차로 옮겨갔다. 6년간의 긴 연애는 1992년 결혼으로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보통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이랑 결혼 잘 안 했죠. 그런데 신랑이 나이가 있어서 그랬는지 참 다정다감했어요. 잘 챙겨줘서 반했나...” 쑥스러운 듯 말을 흐리던 정희씨는 이내 “남자가 이쁘장하게 잘 생겼다. 호리호리하고 옷 스타일도 되게 좋았다”며 웃었다.
‘다정한 남자’였던 건창씨는 늘 섬세하게 주변을 챙겼다. 부부싸움을 해도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은 항상 건창씨였다고 한다. 연애할 때처럼 두 사람만의 술자리를 가지면 언제 싸웠냐는 듯 사이가 풀렸다.
주말엔 두 아들과 꼭 함께 시간을 보냈고 매년 설날엔 여동생 생일 케이크를 직접 챙겼다. 건창씨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어린 두 아들은 서른이 가까워진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갔던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해수욕장 그리고 근린공원에서 먹은 도시락을 떠올린다.
건창씨의 다정함은 친구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친구 한모씨에겐 더 각별했다. 전 축구선수였던 한씨와 영문과 교수를 꿈꿨던 건창씨는 40년 우정을 이어온 동갑내기 친구이자 핏줄로도 이어진 고종사촌 사이였다.
한씨는 건창씨를 늘 “이건창이”라고 불렀다. 그만의 애정표현 방식이었다. 한씨는 건창씨가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만나면 막걸리 먹는 게 일이었다”는 두 사람은 취향도, 대화도 잘 통했다. 종일 얘기만 나눠도 시간가는지 몰랐다.
“제가 노래방 가면 꼭 부르는 노래가 있거든요. ‘You mean everything to me’라고. 그것도 이건창이한테 배운 노래예요”. 한씨는 그러면서 빛바랜 A4용지를 보여줬다. 종이에는 영어 가사 한 줄, 그 발음대로 적은 한글 한 줄이 번갈아 가며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한씨는 “제가 그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어느 날 이건창이가 써서 줬다”며 “라디오에서 들어서 노래 멜로디는 알았지만 정확한 가사를 몰랐는데 건창이 덕분에 이게 노래방 18번 곡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건창씨를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자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일절 티 내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건창씨가 간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하던 때 한씨가 수술받을 일이 생기자 자기 일처럼 손을 걷어붙이고 도와준 적도 있다. 한씨는 “본인 몸도 성치 않을 때였는데 자기 집이랑 가깝다면서 병문안까지 왔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건창씨가 쓰러진 건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어렵게 얻은 생명을 다시 재기증하는 선택은 오히려 예상했던 일이라고 그의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한씨는 “평상시에 이건창이가 그런 의식이 있었다”며 “자기도 받았으니 내가 가게 되면 주고 가야지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이어 “건창이가 ‘젊은 사람 거 받았으니까, 사회가 그렇게 구성이 돼서 기증을 받아 이만큼 살았다’는 말도 했었다”고 덧붙였다.
건창 씨가 뇌사 상태에 빠진 후에도 혹여나 하는 기대에 신장 투석은 계속하자고 했던 아내 정희 씨도 장기기증 선택만큼은 곧바로 ‘남편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건창씨와 함께 장기기증희망등록을 하러 가는 길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건창씨는 그때 정희씨에게 “나도 힘들게 받았으니 기증을 하고 싶다. 난 간을 받았지만 눈, 피부 다른 것도 다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이 새 삶을 기증하고 떠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희씨 또래 부부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리움이 사무친다. 정희씨는 “애들 크는 것도 보고 같이 여행도 다니면 좋은데 이젠 옆에 없으니까 그게 제일 아쉽다”며 휴대폰에 남은 건창씨 사진을 들여다 봤다.
건창씨의 부재에 남몰래 눈물 흘린다던 한씨는 이날도 결국 눈물을 훔쳤다. 한씨는 울먹이며 “건창이는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 나는 친구다. 건창이와의 추억을 얘기 하는 게 너무 어려웠는데 건창이를 생각해서 응했다”면서 “다들 착하게 살다간 건창이를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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