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習 19개국 '폭풍외교'에 줄줄이 중국行…韓·美는 제자리
14~19일 G20·APEC 정상회의
공식적으로만 19개국과 만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내년 초 방문
필리핀·쿠바도 방중 일정 확정
[아시아경제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인 최근 대외 행보는 ‘폭풍 외교’로 요약된다. 3연임을 확정지은 뒤 처음으로 나선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양자회담을 기다리는 긴 줄을 세우며 보폭을 넓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애매한 태도를 보인 탓에 서방으로부터 적잖은 비난을 들어야했던 그간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성공적으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지난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17~18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시 주석은 총 19개국 정상 및 UN 사무총장과 공식적으로 만났다. 비공식 회담 등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자리를 포함하면 수십개국 정상과 대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매 자리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설파하는 한편, 패권에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태평양 역내 협력과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미국에 견제구를 날렸다.
◆프랑스도 필리핀도…줄줄이 중국行= 지난 닷새간의 국제회의 일정은 중국 대면 외교 정상화의 신호탄인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고립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기회로 작용했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해외 방문을 극도로 꺼리고, 방중하는 외빈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말고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3연임을 확정할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 앞선 9월 중앙아시아 순방에 나선 것은 32개월 만의 외유였지만, 이 역시 러시아를 포함한 우호국으로 구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국지적 무대에 불과했다. 3연임 이후의 중국 주석으로서는 이번 G20 정상회의와 APEC 정상회의가 집권 3기의 외교 구상을 밝히고 국제 정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시 주석이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를 접고 대면 외교를 재개하자, 각국은 방중 일정을 잡으며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그간 중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유럽 사회의 태도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15일 시 주석과 회담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회담을 계기로 방중 일정을 조율한다는 소식을 전한 데 이어, 로랑 빌리 프랑스 대사가 20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확인했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언급했으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 이은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이 유럽과 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냐는 글로벌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유럽과 중국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보전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바탕으로 대화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방중 일정이 내년 1월 3일로 구체화 된 것 역시 주요 성과다. 미·중 ‘양강’ 사이에서 오랜 기간 줄타기 실리 외교를 택해온 필리핀은 최근 신임 마르코스 대통령의 선출 취임 이후 외교 중심을 미국으로 기울이는 듯했다. 지난 9월 22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관계를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방중을 통해 마르코스 대통령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한 갈등 요인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밖에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이 이달 24일 중국을 찾을 예정이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7일 태국 방콕 APEC 회담 후 시 주석으로부터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 초청 요청을 받았다며 관련 일정을 조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미 관계 긴장감은 여전…習 역내 결집 강조= 다만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는 별다른 기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3시간여 동안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시 주석은 "현재의 중미 관계는 양국 이익 및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잘 지내는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일정이 논의되고 양국 통상협상이 재개되는 등 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구체적인 성과나 실무 차원의 변화는 현재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시 주석은 G20 정상회의 직후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줄곧 아·태 지역의 집결과 공동 대응을 촉구하며 다자주의를 외쳤다. 그는 17일 APEC 회담 서면 연설을 통해 "새로운 냉전을 일으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국민과 시대에 의해 절대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태 지역은 그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며, 권력 경쟁의 무대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튿날인 18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APEC 연설에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에 수십 년, 여러 세대에 걸쳐 기여해왔다"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미국보다 더 좋은 동반자는 없다"고 응수했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국 간 시각차가 더욱 극명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맬컴 데이비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 박사의 발언을 인용, "미·중 관계에서 핵심 강등 포인트들은 해결되지 않았으며,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가 핵심 포인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류웨이둥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도 SCMP에 "회담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전망하기는 시기상조"라면서 "두 나라가 정치·사회적 관계를 크게 개선하기 전까지 양국의 군사 협력을 개선할 가능성은 매우 작거나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한중관계 역시 진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양국 관계는 지난 15일 발리에서 사실상 준비해온 모두 발언을 읽는 수준의 25분짜리 회담을 마친 뒤 별다른 후속 진전이 없는 상태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시 주석에게 방한을 요청했으나, 그는 "상호 편리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주기를 희망한다"면서 우회적으로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은 도발로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도 팽팽하다. 윤 대통령은 회담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이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중국은 이와 관련된 내용을 외교부 공식 문서에서 제외하고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시 주석이 "한중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을 가진다"며 "평화를 수호해야 하며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다. 북한에 제안된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시 주석은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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