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산을 나의 시녀에게"... 여성화가들이 남긴 유산
[전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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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미국 샌디에이고 뮤지엄 특별전 |
| ⓒ 세종미술관 |
비록 한 점씩밖에 오지 않았으나 네 명의 여성 화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전시였다. 여성들에게 모든 예술적 교육이 닫힌 상태에서 그들은 어떻게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300여 년에 걸친 여성화가들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여성화가들이 어떻게 그 영역을 확장시켜 왔는지를 살펴보자.
서명 없는 초상화,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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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스페인 왕자의 초상>(펠리페 2세 추정), 1573. |
| ⓒ 전사랑 |
아마도 캄피의 아내에게 보살핌받으며 수업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부학, 야외를 나가야 하는 풍경화 수업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러한 제한적 상황에서 앙귀솔라는 초상화에 집중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로 발전시켰다. 이후 베르나디노 가티에게도 사사하고 부드러운 명암과 심리적 깊이를 지닌 초상화로 나아갔다.
미술 수업을 마친 뒤 고향 크레모나로 돌아온 소포니스바 앙귀솔라는 여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며, 가문 내에서 미술 교육을 이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자신의 배움을 개인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안에서 공유하며 여섯 자매 중 엘레나, 에우로파, 루치아도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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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체스 게임>, 1555. The National Museum in PoZnan |
| ⓒ National Museum in PoZnan |
이처럼 딸들에게 특별한 문화적 환경을 제공했던 앙귀솔라의 아버지는 미켈란젤로, 이사벨라 데스테 등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딸의 그림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 결과 앙귀솔라가 여성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게 되면서 스페인 왕실까지 진출한 것이다.
앙귀솔라를 스페인 궁정화가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앙귀솔라는 공식적으로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의 여성수행원이었다. 당시 14세에 불과했던 왕비의 예술 교육과 교양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공주들의 교육에도 관여했다. 여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며 예술 교육을 이어갔던 경험이 궁정에서도 활용된 셈이다.
스페인에서 앙귀솔라는 많은 초상화를 남겼고 그중 <필리페 2세의 초상>이 있다. 필리페 2세는 1527년생으로, 앙귀솔라보다 연배가 높다. 그런데 왜 중년의 필리페 2세를 어린아이로 그렸을까? 이 그림은 총명한 눈동자, 어딘지 모르게 근엄하고 성숙하지만 맑고 순수한 표정의 펠리페 2세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해 그린 작품이다. 강력한 군주의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린 앙귀솔라의 그림과 달리, 스페인에서 그린 앙귀솔라의 작품에는 앙귀솔라의 서명이 없다. 이는 왕실의 권력 표상을 작가의 저작성보다 우선시하는 스페인 왕실의 관행 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당시 궁정의 공식 초상화가였던 알론소 산체스 코엘요의 작품으로 오해 받기도 했는데 이는 궁정예술의 제도적 관행과 여성화가의 불안정한 지위가 결합한 결과였다.
"나의 재산을 나의 시녀에게" 메리 커샛 & 마리 로랑생
19세기 예술의 중심지 파리는 각지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도전이 만연한 곳이었다. 이런 혁신적인 분위기에서도 해부학 수업에 여성 화가들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노클린의 글처럼, "교육과정에서 궁극적인 단계의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주류가 되는 중요한 미술품을 제작할 가능성을 사실상 박탈당함을 의미했다." 제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파리의 여성들이 있었다.
메리 커샛은 미국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미국 상류층 여성에게 교양수업 같은 예술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급진적인 결정에 반대했으나 커샛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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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리 커셋,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 1903.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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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리 커셋 <파란 안락의자의 소녀>, 1877-8. National Gallery of Art(Public Domain) |
| ⓒ National Gallery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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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 로랑생, <나나>, 1927. |
| ⓒ 전사랑 |
메리 커셋과 마리 로랑생은 현대 여성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화면 안에 담고 있다. 마치 그녀들의 삶을 색채로, 선으로 기억하려는 듯,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독신이었던 커샛은 유산의 일부와 대다수의 작품을 오랜 가정부였던 마틸드 발레에게 남겼고, 아이 없이 이혼한 로랑생은 30여 년간 자신의 곁을 지켜준 가정부 수잔느 모로를 양녀로 맞이한 후 자신이 죽은 후에도 모로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유산을 남겼다(대부분은 직업훈련 보육원과 수녀 자선 산업단에 귀속).
이는 평탄치 않은 여성화가로서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고 헌신하며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인정이었을까.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빛나는 삶 뒤에 이름 없이 노동하고 헌신하는 또 다른 여성의 존재를.
내 초상화는 내가 그린다, 수잔 발라동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수잔 발라동은 일찍이 생계형 직업에 뛰어들어 재봉사, 그릇닦이, 서커스 곡예사 등의 일을 했다. 앞서 살펴본 앙귀솔라, 메리 커셋은 가족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상류층 여성이었고, 마리 로랑생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으나 고위 공무원이었던 생부로부터 충분한 양육비와 학비를 지원받았다. 이에 반해 발라동은 그야말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몸을 다쳐 곡예사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한다. 르누아르, 푸뷔 드 샤반느 등의 모델이 되었으며 미혼모로 아들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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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귀스트 르누아르, <수잔 발라동>, 1885. National Gallery of Art(Public Domain) |
| ⓒ National Gallery of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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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잔 발라동,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1930.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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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전경 |
| ⓒ 전사랑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 –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일반 23000원, 2월 22일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참고도서 그리젤다 폴록, <메리 커셋, 현대 여성을 그린 화가>, 에이치비 프레스, 2025. 린다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아트북스, 2021. 정하윤, <찰나의 회화, 영원한 감각>, 아트 에센스, 2025.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2017. GA Books, 전시도록, 2017. 웹사이트 https://www.studiointernational.com/index.php/suzanne-valadon-review-centre-pompidou-paris https://www.messynessychic.com/2021/10/15/renoirs-art-model-was-the-greatest-painter-you-never-heard-of/ https://artherstory.net/sofonisba-anguissola-portraitist-of-the-renaissance-at-rijksmus eum-twenthe/ https://www.theguardian.com/uk/2005/oct/17/gender.arts https://www.dailyartmagazine.com/sofonisba-painter/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5/jul/21/sofonisbas-chess-game-review-anguissola-the-game-of-chess-renai ssance-art-documentary https://www.nga.gov/stories/articles/mary-cassatt-brings-girls-and-women-museum https://www.sothebys.com/en/auctions/ecatalogue/2004/impressionist-modern-works-on-paper-l04010/lot.4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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