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산을 나의 시녀에게"... 여성화가들이 남긴 유산

전사랑 2026. 2. 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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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그리고 네 명의 여성 아티스트

[전사랑 기자]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미국 샌디에이고 뮤지엄 특별전
ⓒ 세종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를 찾았다. 르네상스 시대 여성화가인 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2-1625), 인상주의 화가인 수잔 발라동(1865-1938)과 메리 커셋(1844-1926), 그리고 마리 로랑생(1883-1956)으로 이어지는 여성화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비록 한 점씩밖에 오지 않았으나 네 명의 여성 화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여겨지는 전시였다. 여성들에게 모든 예술적 교육이 닫힌 상태에서 그들은 어떻게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300여 년에 걸친 여성화가들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여성화가들이 어떻게 그 영역을 확장시켜 왔는지를 살펴보자.

서명 없는 초상화,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이번 전시에 온 그림은 펠리페 2세의 초상이다. 이탈리아 크레모나 귀족으로 태어난 앙귀솔라가 어떻게 스페인 왕의 초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일까.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화가가 된다는 것은 대개 어린 나이부터 공방에 들어가 엄격한 도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 공방은 단순한 기술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남성들만의 공동 숙식과 신체 관찰, 사교와 네트워크가 뒤엉킨 장소였으며 여성은 배제되었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스페인 왕자의 초상>(펠리페 2세 추정), 1573.
ⓒ 전사랑
이런 시대에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것은 소포니스바에게는 행운이었다. 소포니스바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라틴어, 문학, 회화 등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했다. 회화에 소질을 보이자 1546년경 여동생과 함께 베르나디노 캄피의 문하로 보내졌다.

아마도 캄피의 아내에게 보살핌받으며 수업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부학, 야외를 나가야 하는 풍경화 수업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이러한 제한적 상황에서 앙귀솔라는 초상화에 집중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로 발전시켰다. 이후 베르나디노 가티에게도 사사하고 부드러운 명암과 심리적 깊이를 지닌 초상화로 나아갔다.

미술 수업을 마친 뒤 고향 크레모나로 돌아온 소포니스바 앙귀솔라는 여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며, 가문 내에서 미술 교육을 이어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자신의 배움을 개인적 성취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안에서 공유하며 여섯 자매 중 엘레나, 에우로파, 루치아도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체스 게임>은 이번 전시에는 오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앙귀솔라의 작품이다. 소포니스바의 세 자매, 그리고 보모를 그린 이 그림은 최초의 여성 그룹 초상화다. 마냥 즐거운 자매들과의 시간을 그린 것 같지만, 당대 인식으로는 꽤 도발적인 그림이다. 체스는 이성적, 전략적 사고와 권력구조와 위계 등 남성에게 허락된 세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체스 게임>, 1555. The National Museum in PoZnan
ⓒ National Museum in PoZnan
보모와의 대비를 통해 자매들의 높은 신분, 위계를 드러내며, 주도적으로 체스 말을 움직이는 모습은 앙귀솔라 자매들이 누렸던 환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른편 인물 미네르바가 말을 잃은 상황에서 허망하지만 침착하게 언니인 루치아를 바라보며, 그런 루치아는 여유롭게 관람자를 바라본다. 6세 정도인 가운데 자매 유로파는 체스 말을 잃은 언니를 개구지게 웃으며 바라본다. 각각의 인물 성격이 느껴질 정도로 생동감 있고 심리적으로도 밀도 높은 그룹 초상화이다.

이처럼 딸들에게 특별한 문화적 환경을 제공했던 앙귀솔라의 아버지는 미켈란젤로, 이사벨라 데스테 등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 딸의 그림을 보내며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그 결과 앙귀솔라가 여성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게 되면서 스페인 왕실까지 진출한 것이다.

앙귀솔라를 스페인 궁정화가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앙귀솔라는 공식적으로 스페인 왕비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의 여성수행원이었다. 당시 14세에 불과했던 왕비의 예술 교육과 교양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공주들의 교육에도 관여했다. 여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치며 예술 교육을 이어갔던 경험이 궁정에서도 활용된 셈이다.

스페인에서 앙귀솔라는 많은 초상화를 남겼고 그중 <필리페 2세의 초상>이 있다. 필리페 2세는 1527년생으로, 앙귀솔라보다 연배가 높다. 그런데 왜 중년의 필리페 2세를 어린아이로 그렸을까? 이 그림은 총명한 눈동자, 어딘지 모르게 근엄하고 성숙하지만 맑고 순수한 표정의 펠리페 2세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해 그린 작품이다. 강력한 군주의 정당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인간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 그린 앙귀솔라의 그림과 달리, 스페인에서 그린 앙귀솔라의 작품에는 앙귀솔라의 서명이 없다. 이는 왕실의 권력 표상을 작가의 저작성보다 우선시하는 스페인 왕실의 관행 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당시 궁정의 공식 초상화가였던 알론소 산체스 코엘요의 작품으로 오해 받기도 했는데 이는 궁정예술의 제도적 관행과 여성화가의 불안정한 지위가 결합한 결과였다.

"나의 재산을 나의 시녀에게" 메리 커샛 & 마리 로랑생

19세기 예술의 중심지 파리는 각지에서 몰려든 예술가들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도전이 만연한 곳이었다. 이런 혁신적인 분위기에서도 해부학 수업에 여성 화가들은 여전히 배제되었다. 노클린의 글처럼, "교육과정에서 궁극적인 단계의 수업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주류가 되는 중요한 미술품을 제작할 가능성을 사실상 박탈당함을 의미했다." 제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파리의 여성들이 있었다.

메리 커샛은 미국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미국 상류층 여성에게 교양수업 같은 예술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급진적인 결정에 반대했으나 커샛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파리로 건너온 커샛이었지만 당대 파리에서조차 여성이 외부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공식적 교육 기관이 아닌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가 운영하는 개인 화실에서 교육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상주의 남성 화가들이 술집, 카페, 현대적인 거리, 극장 등을 활보하며 현대적 장면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여성화가들은 자신 주변인물이나 개인소유 별장, 정원 등을 그리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메리 커셋,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 1903.
ⓒ 전사랑
커샛의 여자아이는 소위 말하는 '여자아이다움'의 전형성이 없다. 앙귀솔라의 자매들처럼, 커샛은 어떤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아이의 개성, 고유함을 포착한다.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는 아이답지 않은 성숙함도 보이고, 어딘가 상념에 잠긴 듯하다. 쾌활함이나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그 나이 때 여자아이에게 '요구'되는 어떠함에서 벗어나 있다.
 메리 커셋 <파란 안락의자의 소녀>, 1877-8. National Gallery of Art(Public Domain)
ⓒ National Gallery of Art
드가 친구의 딸이라고 알려진 <파란 안락의자의 소녀>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보고 있다면 서둘러 다리를 모아주고 치마를 끌어당기며 '똑바로 앉아야지'라고 한마디할 것 같다. 아이는 어딘가 풀어져 있고 나른하다. 특히 상류층 아이에게 요구되었을 절제와 규범을 생각하면 여자아이의 자세는 더 도드라진다. 커샛은 후에 "아이들에게는 숨은 의도가 없다"며 아이들을 그리길 좋아한다고 썼다. 당대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여성의 역할을 내면화하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이기에, 어쩌면 더 특별하고 고유해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마리 로랑생, <나나>, 1927.
ⓒ 전사랑
마리 로랑생의 <나나>는 이와 대비된다. 파리 매춘부의 삶을 그린 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늙은 신사 앞에서 치장하고 있는, 어떤 거리낌도 없이 그 시선을 즐기는 듯 산뜻하게 웃고 있기까지 한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나나>와 달리, 로랑생의 <나나>는 음침하고 우울하며, 그 어떤 성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저 삶이 찌들고 어느새 표정이 없어진, 어느 불운한 여성이 있을 뿐이다.

메리 커셋과 마리 로랑생은 현대 여성의 개별적인 목소리를 화면 안에 담고 있다. 마치 그녀들의 삶을 색채로, 선으로 기억하려는 듯,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독신이었던 커샛은 유산의 일부와 대다수의 작품을 오랜 가정부였던 마틸드 발레에게 남겼고, 아이 없이 이혼한 로랑생은 30여 년간 자신의 곁을 지켜준 가정부 수잔느 모로를 양녀로 맞이한 후 자신이 죽은 후에도 모로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유산을 남겼다(대부분은 직업훈련 보육원과 수녀 자선 산업단에 귀속).

이는 평탄치 않은 여성화가로서의 삶을 가장 잘 이해하고 헌신하며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인정이었을까.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빛나는 삶 뒤에 이름 없이 노동하고 헌신하는 또 다른 여성의 존재를.

내 초상화는 내가 그린다, 수잔 발라동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수잔 발라동은 일찍이 생계형 직업에 뛰어들어 재봉사, 그릇닦이, 서커스 곡예사 등의 일을 했다. 앞서 살펴본 앙귀솔라, 메리 커셋은 가족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상류층 여성이었고, 마리 로랑생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으나 고위 공무원이었던 생부로부터 충분한 양육비와 학비를 지원받았다. 이에 반해 발라동은 그야말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몸을 다쳐 곡예사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녀는 모델 일을 시작한다. 르누아르, 푸뷔 드 샤반느 등의 모델이 되었으며 미혼모로 아들을 낳기도 했다.

발라동은 당대 유명한 화가들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에 반기를 든 듯,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녀 그림에 가능성을 발견한 드가와 툴루즈 로트렉의 도움으로, 발라동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욱 과감하게 확장시켜 나갔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수잔 발라동>, 1885. National Gallery of Art(Public Domain)
ⓒ National Gallery of Art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의 모습과 발라동의 여성을 비교해 보자. 발라동이 60이 넘어서 그린 <창문 앞에 젊은 여인>은 그녀의 젊은 시절 얼굴과 닮아있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밝고 순수한 여성의 표본인듯한 발라동의 모습과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속 다부져 보이는 여성과는 차이가 난다.
발라동은 화가로서 성공해 국립 미술가 협회 살롱에서 전시하면서 제도권 내에서 입지를 확인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60이 넘은 나이에도 화가의 '젊은 자화상'이라고 칭해도 될 만한 여성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수잔 발라동,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1930.
ⓒ 전사랑
누드모델로 계산된 각도에 따라 남성화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했던 수잔 발라동의 젊은 시절과 달리, 그림 속 '젊은 여인'은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장소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만끽하듯 편한 옷을 입고 창밖의 자연을 의식한다. 밖을 향해 열린 창문처럼, 젊은 여인의 미래도 그렇게 호기롭게 열려 있는 듯하다. 마침내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그리는 주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전경
ⓒ 전사랑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 이르는 몇 세기에 걸친 시간동안 수많은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화가들 사이에서, 네 명의 여성 아티스트는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딸의 손을 잡고 함께 본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메리 커셋, 마리 로랑생, 그리고 수잔 발라동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전시가 되었다. 그녀들은 모두 제약, 한계에 둘러싸인 채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힘껏 벽을 밀고 비교적 넓고 쾌적한 공간을 후대의 여성화가들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나는 딸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서양미술 600년 –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일반 23000원, 2월 22일까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참고도서 그리젤다 폴록, <메리 커셋, 현대 여성을 그린 화가>, 에이치비 프레스, 2025. 린다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아트북스, 2021. 정하윤, <찰나의 회화, 영원한 감각>, 아트 에센스, 2025.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2017. GA Books, 전시도록, 2017. 웹사이트 https://www.studiointernational.com/index.php/suzanne-valadon-review-centre-pompidou-paris https://www.messynessychic.com/2021/10/15/renoirs-art-model-was-the-greatest-painter-you-never-heard-of/ https://artherstory.net/sofonisba-anguissola-portraitist-of-the-renaissance-at-rijksmus eum-twenthe/ https://www.theguardian.com/uk/2005/oct/17/gender.arts https://www.dailyartmagazine.com/sofonisba-painter/ https://www.theguardian.com/film/2025/jul/21/sofonisbas-chess-game-review-anguissola-the-game-of-chess-renai ssance-art-documentary https://www.nga.gov/stories/articles/mary-cassatt-brings-girls-and-women-museum https://www.sothebys.com/en/auctions/ecatalogue/2004/impressionist-modern-works-on-paper-l04010/lot.4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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