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되는 줄" 12년전 악몽 살아났다…연평도 맴도는 北트라우마
심석용 2022. 11. 22. 05:00
“과부되는 줄 알았어요. 애들이 셋이나 있는데…”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사는 조영미(58·여)씨는 12년 전 느낀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지난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0분쯤 북한이 서해 연평도에 기습적으로 170여발의 포격을 가했을 때였다. 처음엔 사격훈련 중 발생한 오발사고로 여겼지만, 굉음과 함께 포탄이 계속 떨어지자 ‘전쟁’이라는 생각이 조씨의 머리를 스쳤다. 부리나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지만, 바다에 나간 남편과 등교한 아이들은 연락 두절이었다. 대피소에서 뒤늦게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가족은 부둥켜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최근 조씨는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14일 북한이 서해 상으로 300여 발의 포를 쏜 데 이어 지난 5일에 서해 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4대를 발사하면서다. 지난달엔 옹진군 연평면사무소가 주민들에게 “북한의 해상 사격으로 포성이 들리고 있다. 놀라지 말고 집에 머물러 달라”고 방송해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이 급히 회항하는 일이 두 차례나 있었다. 조씨는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포격 소리만 나면 신경이 곤두선다. 연평도민 대부분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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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중국어선에 살얼음판
조씨는 24년 전 어민 홍용만씨와 결혼하면서 연평도에 들어왔다. 서해 북단 섬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이 터졌고 셋째를 품고 있던 2002년 6월엔 제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다. 임신 중이던 조씨는 조업을 나간 남편 걱정에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고 한다. 연평도 인근에 몰려드는 중국어선도 근심을 더 했다. 2008년 5월엔 피를 흘리는 중국 선원이 조씨의 횟집에 들이닥치기도 했다. 불법으로 조업하던 중국어선 사이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는데 부상을 입은 이들이 연평도에 몰래 상륙한 것이다. 뒤늦게 해경이 출동해 수습했지만,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은 2010년 가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극에 달했다. 갑작스러운 포격에 해병대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하면서 작은 섬은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주민들은 자신들의 어선을 타고 피난을 떠났지만, 생업을 놓을 순 없던 이들은 3일 뒤 다시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야 했다. 포격 이후 지자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원책이 나왔지만 조씨는 ‘진정 연평도민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평도 내 중·고교와 초등학교를 합친 통합학교를 지으면서 설계도에 대피소를 반영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었다. 대안으로 제시된 창고형 임시대피소는 가스여과기나 환기 시설이 없고 1인당 대피 인원 기준(1.43㎡)을 충족하지 못했다. 조씨는 연평초중고 통합교사동 신축정상화추진위원회를 꾸려 목소리를 냈다. 논란이 일자 인천시교육청은 뒤늦게 전면 재공사로 선회했다. 이때 조씨는 “연평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선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연평도 학교 운영위원회와 연평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연평도의 교육환경 개선과 유사시 대피방안 마련 등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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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환경 개선이 상처 보듬는 길”
조씨의 바람은 섬의 정주 여건 개선이다. 조씨는 안보 상황 때문에 조업시간이 제한되는 점과 여객선사 사정에 따라 인천과의 일일생활권에서 제외되는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가을은 꽃게잡이가 흉년이라 근심이 큰데 어업 시간이 제한되면서 어민들의 타격이 컸다”는 게 조씨의 말이다. 조씨는 “정책을 수립할 때 연평도민에게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논의했으면 좋겠다”며 “그게 포격 트라우마를 겪는 연평도민의 상처를 보듬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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