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진로가 고민인 부모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 봅니다. 그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송주연 상담심리사·작가]
내겐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 친구들도 대부분 청소년기의 자녀들을 두고 있기에 아이들의 진로 문제로 대화를 나눌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종종 아이들과 부모의 의견이 충돌하는 지점을 만난다. 아이들이 예체능의 길을 가고자 할 때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발견해 준비해 온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부모가 청소년기에 '예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환영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대체로 이렇다.
"예능 쪽은 최고가 되기 힘들잖아. 최고가 돼야만 성공했다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너무 겁이 나."
나도 부모로서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선 이런 질문이 일곤 했다.
'모두가 최고가 될 수는 없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면 그 꿈은 꾸면 안 되는 걸까?'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답을 찾았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tvN 드라마 <정년이> 속 영서(신예은)를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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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서는 '최고' 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 ⓒ tvN |
"연구생 공연까지 내가 가 봐야 되니? 난 너 오페라 배우다 말고 국극으로 가버린 거 아직도 맘에 안 들어. 그치만, 이왕 그걸 하기로 했으면 그 분야에서 1등이 돼야 하는 거야."
이에 영서는 이렇게 답한다.
"알아요, 최고가 될 자신이 없었으면 시작도 안 했어요."
드라마 초반, 영서는 이렇게 엄마의 시선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늘 무표정하게 지내고, '최고'가 아닌 것들은 '가치 없다' 여기는 기주처럼 자신보다 실력 없어 보이는 동료들을 무시하듯 대한다. 이는 영서가 엄마의 마음을 그대로 투사 받았음을 보여주는 면면들이었다.
이렇게 삶의 시선이 '엄마'에 있을 땐 목표 역시 엄마를 향할 수밖에 없다. 영서에게 '최고'는 스스로 만족하고,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공연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에게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기준이다. 그래서 영서는 실력만큼 공연을 즐기지 못하고 늘 긴장하며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할까 초조해한다.
매란국극단에서의 경험
하지만 매란 국극단에서의 경험은 영서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매란 국극단의 단원들은 규율있는 단체 생활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다. 구성원들 사이에 질서는 있지만, 위계적이지 않다. 치열하게 경쟁도 하지만, 서로의 꿈을 존중한다.
영서에게도 국극단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 사이에서 영서는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극이 진행되면서 영서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부드러워지는데 이는 자신을 존중해주는 동료들에게 더 이상 방어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타고난 재능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년(김태리)의 등장은 큰 자극이 됐을 것이다. 정년은 재능과 열정뿐 아니라 한때 유명한 소리꾼이었던 엄마를 두었다는 점에서 영서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정년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영서와 큰 차이가 있다. 정년은 영서가 "내가 한기주 딸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에 힘들어할 때 이렇게 말해준다.
"엄니 그늘에 가려지는 게 무섭다고 그만둘 거 아니면 난 앞만 보고 내 길을 갈 수밖에 없어야. 그러니까 너도 앞만 보고 가. 네가 지금껏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모든 것은 오롯이 다 네 것이여." (7회)
영서의 말에 따르면 "자극시키고 성장시키면서, 마음을 알아주는(12회)" 정년과의 대화들, 그리고 다양한 국극단의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영서는 조금씩 깨달아간다. 자신이 허영서가 아닌 '한기주의 딸'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알아차린 영서는 자신에게 투영된 엄마의 마음을 벗겨내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주변을 대하기 시작한다. 8회 정년이 무리한 연습으로 스스로를 망칠 때 정년을 찾아가 도우려 한 것은 영서가 기주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편법을 써서라도 정년을 깎아내리려는 기주와 달리 영서는 정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최고의 상태일 때 싸워서 이길 거라고." (8회)
그리고 9회 마침내 영서는 엄마의 마음을 모두 걷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동안 전 한 번도 허영서로 살아본 적이 없어요. 아세요? 한기주 딸로만 살아왔다고요. (...) 나는 나예요. 앞으로는 한기주 딸로 안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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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초반 영서는 엄마의 시선으로 자신을 본다. |
| ⓒ tvN |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난 널 뽑을 거야.(...) 너희 엄마한테 가장 어이없는 게 뭔지 아니. 남의 딸 견제하려다 자기 딸이 얼마나 잠재력이 있는지 몰랐다는 거야. 너희 엄마처럼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네 스스로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마." (9회)
"예인의 인생은 길어. 쉴 새 없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 끝도 없는 굴곡을 겪으면서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넌 그 정도로 큰 예인의 자질을 갖췄다." (12회)
소복의 이 말들은 영서가 자기 자신을 잘 수용하도록 도왔을 것이다. 영서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는 '이기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과정 자체에 있음을 깨달아 간다. 또한 엄마에 대한 마음도 평온해진다. 12회 기주는 영인이 성악을 그만두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영서 앞에서 이렇게 오열한다.
"잘난 한기주. 그래봤자 아들도 하나 못 낳고 계집애 둘만 낳았다고 그 죄인 취급 받는 거 지긋지긋해서 더 기를 쓰고 너희들을 키웠어."
이는 기주가 딸들을 '최고'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사회적 차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영서는 이때 엄마의 마음에도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비록 상처를 받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에 어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하게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마지막 회 영서가 관객석에 있는 엄마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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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자신'이 된 영서는 정년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
| ⓒ tvN |
사실, <정년이>의 인물들은 아무도 꿈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한다. 국극이 하향길에 접어들면서 정년조차 다음 무대를 기약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고가 되려다 목을 다쳐 이전만큼 소리를 할 수 없게 된 정년도, 최고가 되진 못했지만 무대를 즐기게 된 영서도, 현실과 타협했지만 한 때 꿈을 이루었음에 만족한 주란도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결국 꿈이라는 건 '최고'가 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과정 자체에 있는 것 아닐까.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 더 나다워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꿈을 이룬 것일 테다. 그러니 최고가 되지 못할까 봐 도전하지 못하는 게 있다면 다가오는 새해에는 용기 내 도전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최고가 되는 기쁨보다 더 큰 나 자신이 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서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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