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이식받은 남편, 기증한 아내…이들의 ‘삶’ [아살세]

박은주 2024. 9. 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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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남편 안희준씨, 아내 황인원씨.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교사 부부였던 남편 안희준(사망 당시 63세)씨와 아내 황인원(75)씨의 가족에게 불행이 덮친 건 결혼하고 10년쯤 지났을 때였다. 다정하고 건강했던 남편에게 신우신염이 찾아왔다. 의료 기술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80년대였다. 남편의 증세는 점점 악화했고, 1991년 급기야 혈액 투석까지 받게 됐다.

아픈 남편은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하루 세 번 병원에 다녀오고 매일 소독을 하는 게 남편에게도 고생스러웠을 터였다. 황씨와 자녀들은 그런 남편, 그리고 아빠를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느라 숨어서 눈물을 흘리는 날이 잦아졌다.

남편과는 1967년 경인교대에서 만나 캠퍼스 커플로 발전했다. 당시만 해도 2년제였던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1971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 아들을 낳았고, 4년 뒤 딸이 태어났다. 여느 가족처럼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이었다.

건강했던 남편이 결혼 20년 만에 혈액 투석까지 받게 된 사실을 황씨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AB형, 남편은 O형이었던 터라 신장을 이식해 줄 수도 없었다. 남편과 같은 혈액형인 황씨 여동생이 나섰지만, 조직 검사 결과가 잘 맞지 않아 수술이 어려웠다.

황씨는 ‘신장이 망가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이구나’라며 속앓이를 하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장기기증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그는 곧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실을 찾아가 장기기증 서명을 했다. 남편을 도울 수는 없어도, 남편처럼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싶었다. 남편의 이름 역시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그렇게 2년 뒤인 1993년 남편에게 신장을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신장 이식만이 답이었던 남편은 기증자 덕분에 새 삶을 선물 받았다.

가족의 삶은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황씨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며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가고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남편 역시 건강을 빠르게 되찾았다고 한다. 남편은 교직에 복귀했고, 황씨도 예전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며 ‘초등교사 부부’로 매일 함께했다.

그리고 이듬해, 이번에는 황씨에게 신장 기증을 해달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황씨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신장 이식이 필요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의 소식을 듣게 됐다고 한다. 남학생은 신부전증으로 인해 4년 넘게 혈액 투석을 받고 있었다. 황씨는 고민 없이 기증에 동의했다. 아빠의 투병 생활을 지켜봤던 자녀들도 별다른 말 없이 엄마의 뜻을 이해해 줬다고 한다.

황씨와 같은 사례를 ‘생존 시 신장 기증(살아있는 이가 신장 두 개 중 하나를 기증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황씨는 대학생이 된 수혜자가 자신이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찾아왔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교사로서 학생에게 기증을 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했었다”며 “이후 건강하게 훌쩍 큰 모습을 보니 기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당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을 때라 수술 후 기증자와 수혜자가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기증자와 수혜자가 직접 만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이식 수술 후 건강을 되찾았던 황씨의 남편은 2010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신장암에 이어 임파선암, 혈액암이 찾아와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황씨는 남편의 생전 뜻에 따라 남편의 시신을 상지대에 기증했다. 그는 남편에 대해 “교실마다 석유난로가 있을 때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이 추울까 봐 일찍 출근해 먼저 전원을 켜고, 방학이면 핸드볼부 아이들의 끼니까지 챙겨주던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2000년 교직을 그만둔 황씨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3년 전부터는 인천 부평구에서 ‘다문화가정 자녀학습 도우미’로 파키스탄이나 몽골 등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국어, 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황씨 가족은 4대가 시신기증과 장기기증을 이어갈 예정이다. 시어머니가 2004년 세상을 떠나며 시신을 기증했고, 황씨의 자녀와 손자도 장기기증 등록을 마쳤다. 황씨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장기기증의 날’이었던 지난 9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신장 기증 30주년 기념패’를 받았다.

“사람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아름다운 실천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밝고 따뜻한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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