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할인된 만큼 관리비 더 내라"…제값 잃은 아파트는 전쟁 중

백경서 2024. 2. 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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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안심호반써밋이스텔라 아파트에서 할인 분양이 진행되자, 기존 분양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 아파트입주민대표]

‘할인 분양세대 입주 불가’
22일 오전 대구 동구 안심호반써밋이스텔라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할인분양에 나선 건설사를 비난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무책임한 할인분양 각성하라’, ‘협의 없는 할인분양 입주저지로 대응한다’ 등 내용이었다.

4개 동 315가구 규모인 해당 아파트는 2021년 3월 최초 분양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시공사이자 시행사인 호반건설 측이 할인분양에 나섰다. 분양가의 85%를 5년 뒤에 납부하는 ‘5년 잔금유예’ 혜택과 잔금유예를 하지 않으면 7000만~9300만원을 일시에 할인받을 수 있는 선납할인 혜택이다. 현재는 주민 반발로 할인분양이 일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파트 입주민에 따르면 건설사가 20여 가구를 할인분양 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재호 할인분양대응 입주민모임 비상대책위원장은 “10억원짜리 집을 1억원 할인해주는 게 아니라 84㎡ 기준 4억6000억 원짜리 집을 3억 원대로 대폭 할인해서 파는 건데, 건설사는 기존 분양자들과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며 “나중에 매매하면 기존 분양자는 상대적으로 손해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아파트 할인받은 만큼 관리비 더 내야”


대구 동구 안심호반써밋이스텔라 아파트에서 할인 분양이 진행되자, 기존 분양자들이 할인 분양을 받고 입주할 경우 관리비 등을 더 부과하겠다고 안내하고 있다. [사진 아파트입주민대표]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 19일 할인분양을 받은 주민이 입주하면서 충돌하기도 했다. 비상대책위가 이날 이사를 마친 주민 집을 찾아가 “할인을 받은 만큼 기존 입주자보다 관리비·주차료 등 15~20% 정도 더 내야 한다”고 안내했고, 해당 주민은 “정상 절차를 밟고 입주했는데 왜 그래야 하냐”고 반발했다.

정 위원장은 “건설사가 주민 갈등을 조장했다”며 “서울 본사 앞에서 이날부터 트럭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건설사 측은 기존 분양자에게도 할인을 소급적용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미분양 무덤’ 된 대구


아파트 할인분양으로 인한 갈등은 대구 지역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구가 전국 최대 미분양 물량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대구에서 아파트 1만245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수도권 전체 미분양 물량인 1만31가구보다 많다.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도 1044가구로, 1년 전 281가구보다 4배 가까이 치솟았다. 지난해 대구의 입주 물량이 3만5000여 가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는 등 최근 4년 새 아파트가 과잉 공급된 탓이다.

수성구 만촌자이르네와 시지라온프라이빗, 서구 두류스타힐스, 동구 동대구 푸르지오 브리센트 등 대부분의 미분양 아파트가 할인분양을 했다. 561가구 규모의 대구 중구 대봉서한이다음은 지난해까지 2000만원을 할인해왔지만, 올해부터 5000만원 페이백 할인에 나섰다. 해당 아파트를 분양받은 30대 신혼부부는 “지난해까지는 할인을 좀 하더라도 사람이 들어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할인 폭이 더 커지니 속상하다”며 “기존 분양자에 혜택을 주거나 아니면 할인 전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나중에 알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할인 분양, 법적으론 문제없어”


22일 대구 동구 안심호반써밋이스텔라 아파트 할인 분양을 반대하는 입주민들이 서울 호반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 트럭을 세우고 항의했다. [사진 아파트입주민대표]
할인분양 시 기존 분양자에게도 이를 소급적용하는 ‘안심보장제’를 계약시 적시하는 게 해결책이 될 순 있지만, 전문가들은 건설사에 안심보장제를 강제하면 결국 건설사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송원배 대구경북부동산분석학회 이사는 “할인 분양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결국 주민들끼리 갈등만 커지는 상황이 온다”며 “건설사는 주 52시간 근무, 자재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인 분양을 하는 대신 추가 커뮤니티센터를 짓거나 정원시설을 확충하는 등 기존 입주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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