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피살 헤즈볼라 하산 나스랄라는 누구인가

김지방 2024. 9. 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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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그의 죽음은 정의의 척도"라고 말했다.

1960년생인 하산 나스랄라는 9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압바스 알 무사위의 뒤를 이어 헤즈볼라의 수장이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그가 지난 4반세기동안 수백명의 미국인을 죽였다"며 그의 죽음을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레임 축제) 학살 직후 하마스와 손잡고 분쟁을 전개한 넓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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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베이루트 인근 출생, 이란에 유학
79년 이란 혁명으로 등장한 청년 시아파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에 테러 지지로 논란
하산 나스랄라의 2019년 모습. Ali Khamenei 및 위키피디아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그의 죽음은 정의의 척도”라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를 “이란 악의 축의 중심, 핵심 엔진이었다”고 말했다. 이란은 ‘총력 보복’을 천명했다. 튀르키예 브데트 일마즈 부통령은 “중동에서 확전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공중 습격으로 숨진 하산 나스랄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그룹 헤즈볼라 지도자의 피살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1960년생인 하산 나스랄라는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이라는 충격과 함께 등장한 시아파 청년그룹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란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9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압바스 알 무사위의 뒤를 이어 헤즈볼라의 수장이 됐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이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고, 대내적으로는 의회에 진출해 합법적인 정치 조직으로 헤즈볼라를 성장시켰다. 레바논 남부를 점령 중이던 이스라엘군 기지를 넘어 이스라엘 본토까지 날아가는 미사일로 위협했다.

이 과정에서 97년에는 장남을 이스라엘 공격으로 잃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장남 시신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사망자 유해의 교환을 요구했으나 “계속 보관하라. 아들과 같은 더 많은 이들이 투쟁에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며 거부했다. 결국 2000년 헤즈볼라의 공격에 지친 이스라엘이 철수하면서 나스랄라는 레바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헤즈볼라는 그를 카리스마 넘치는 희생적 지도자로 홍보했다. 시아파 이슬람 내에서 그는 예언자 무하메드의 직통을 이어 받은 사이드(Sayyid)로 불리며 검은 터반을 쓰고 다닌다.

헤즈볼라는 현재도 이스라엘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는 테러 집단으로, 러시아와 중동 시아파에게는 합법적인 정당이자 군사단체로 불리는 다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영국 로이터뉴스는 이스라엘 안보단체 알마연구·교육센터를 인용, 헤즈볼라 병력이 2만5000~3만명에 이르고 보유한 미사일은 15만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 대원은 시리아 내전에서 활동하면서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보다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헤즈볼라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국가 군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하산 나스랄라는 중동 지역에서 반이스라엘의 기치를 가장 앞장서 흔들어 각광을 받았지만,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을 비판하며 테러를 옹호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에서도 이란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과 싸우던 범 중동의 영웅이 일개 정파의 수장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레바논 내에서도 나스랄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시리아 내전의 여파를 국내로 끌어들였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그는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려 왔다. 1998년과 2008년에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암살을 시도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오랫동안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나스랄라는 지난해 10월 TV 연설에 깜짝 등장해 미국을 규탄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 직후였다. 이달에도 레바논에서 무선호출기 동시 폭발 사건이 발생하자 지난 19일 TV 생중계 연설에 나서서 이스라엘에 강력한 보복을 예고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그가 지난 4반세기동안 수백명의 미국인을 죽였다”며 그의 죽음을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레임 축제) 학살 직후 하마스와 손잡고 분쟁을 전개한 넓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르단의 알자지라뉴스는 나르랄라를 형제처럼 지지해온 레바논 시민들이 그를 순교자로 부르며 “헤즈볼라의 저항을 이어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접경에 병력 배치를 늘리는 가운데, 미국 NBC방송은 미국 국방부가 중동에 미군을 증강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중동에 4만명의 병력을 배치중이다.

나스랄라의 후계자로 부각된 하셈 사피딘은 27일까지 생존이 확인됐으나, 주요 외신들은 이스라엘이 암살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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