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빌 게이츠 비교에 ‘발끈’… “나는 진시황, 제국 건설 중”

강창욱 2024. 9. 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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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전 편집국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해부
“전형적 아싸, 평범한 투자자, 형편없는 트레이더”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 비전, 과대망상적이지만”
“이 불안한 인물,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것 소유”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21일 도쿄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2020년 초 일본을 방문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측이 소프트뱅크 측에 지배구조 개선을 설득하며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나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를 거론하자 창업자 손정의는 터무니없어하며 화를 냈다. 그는 “나에게 적합한 비교 대상은 나폴레옹이나 칭기즈칸, 만리장성을 세운 진시황”이라며 “나는 제국을 건설 중”이라고 받아쳤다.

마크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그들은 한 가지 사업만 하는 사람”이라며 “나는 100개 사업에 관여하고 전체 (기술) 생태계를 통제한다”고 차별화했다. 그는 자신이 단순히 CEO(최고경영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소프트뱅크 지분 3%를 사들인 엘리엇은 이 회사 주가를 올려 수익을 챙겨야 했지만 손정의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주말판에서 이 일화를 전한 라이오넬 바버 전 편집국장은 “마사요시 손은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라며 “이는 그의 끝없는 위험 감수 성향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설했다. 마사요시는 ‘정의(正義)’라는 이름의 일본식 발음이다. 손정의는 해외에서 마사요시 손으로 불린다.

바버 전 국장은 ‘소프트뱅크의 위대한 파괴자, 손정의의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기술에 대한 베팅으로 재산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며 손정의가 선견지명을 가진 투자가인지, 그저 운 좋은 도박꾼인지를 가늠했다.

손정의는 일본 재계에서 비주류로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고 한다. 바버 전 국장은 “그는 애국자를 자처하며 일본의 야성을 되살리고 싶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지만 부흥하는 일본에 대한 비전은 과대망상적 면모가 있다”고 해설했다. 다만 “손정의가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목표에 열중한다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평가했다.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FT를 이끈 바버 전 국장은 다음 달 초 ‘도박꾼: 일본의 손정의가 이끈 대담한 여정’이라는 전기를 출간한다. 손정의를 4차례 면담하고 그를 알거나 함께 일한 사람 150여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헛간’에서 태어난 이민가정 소년의 베팅
손정의는 1957년 일본 서부 규슈에서 가난한 재일 한국인 2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은 헛간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기차역 인근 등록되지 않은 땅에 있는 수십 개 임시 거처 중 하나였다.


어린 손정의는 친구에게 자신이 돼지 똥 냄새를 맡으며 깨는 꿈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구는 “그건 악몽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 일러줬다고 한다. 손정의는 바버 전 국장에게 “우리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했다”며 “나는 심지어 내 국적도 몰랐다”고 말했다.

한국계 일본인인 손정의 가족은 ‘손’ 대신 ‘야스모토’라는 일본 이름으로 살았다. 지금 그가 일본에서 야스모토 마사요시가 아니라 손 마사요시로 불리는 건 당국을 설득해 일본 이름과 한국 성을 합쳤기 때문이다.

손정의의 아버지는 열네 살에 밀주업을 시작해 돼지 사육, 고리대금, 파친코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파친코는 일본 주류 경제에서 배제된 한국인에게 생계를 제공한 저비용 도박의 한 형태였다고 바버 전 국장은 설명했다. 그는 “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수완을 발휘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소년의 야망은 파친코 도박을 훨씬 넘어섰다”고 썼다.

손정의는 일본과 평생에 걸친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열여섯 살 때 영어를 배우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가족에게 선언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학생으로 보낸 3년을 포함해 6년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그때 PC 혁명을 목격하고 빌 게이츠와 애플 스티브 잡스에 대해 읽었다. 핵 입자 물리학자 포레스트 모저 교수가 이끄는 UC버클리 엔지니어팀의 도움으로 휴대 음성 번역기를 개발한 것도 이 시기다.

2021년 10월 버클리를 방문한 바버 전 국장에게 당시 92세였던 모저 교수는 “나는 그의 첫 번째 사업 파트너였다”며 “그는 첫 사업 거래에서 거짓말로 나를 속였다”고 말했다. 그는 손정의가 몰래 일본 기업들과 계약을 했고, 존재하지 않는 음성 번역기용 미국산 마이크로칩을 임의로 붙인 가격에 팔았다고 주장했다. 손정의는 1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수료를 벌게 된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알려주지 않았다고 모저 교수는 말했다.

이런 모저 교수도 그 시절 아내에게는 “저 친구(손정의)가 언젠가 일본을 차지할 거야”라고 말했다.

손정의는 자신이 허가를 받았다고 잘못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둘 사이에 서면 계약이 없었다는 점은 모저 교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바버 전 국장은 “아마도 이 일화는 손정의의 ‘원죄’를 보여준다”며 “많은 기업가가 인정받을 만한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지름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정의는 앞으로 더 신중히 행동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레버리지 중독자’ ‘형편없는 트레이더’
1980년 귀국한 손정의는 세계 1위 경제 강국으로 부상 중인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미국 기술기업의 관문 역할을 했다. 빌 게이츠는 손정의를 상업적 중개자일 뿐 아니라 문화적 통역가로 묘사했다고 바버 전 국장은 전했다. 빌 게이츠는 손정의를 만난 경험에 대해 “정말 안도했다”며 “그는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손정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 후 인터넷 관련 사업 투자로 전환했다. 야후 투자로 6배 수익인 35억 달러를, 알리바바 투자로 1310배 수익인 970억 달러를 벌었다. 바버 전 국장은 이들 투자를 ‘베팅’이라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라스베이거스에 본사를 둔 당시 세계 1위 기술 무역 박람회 ‘컴덱스’, 디지털 콘텐츠 회사 ‘지프 데이비스’를 비롯해 많은 IT기업을 사들였다. 2013년엔 적자였던 미국 통신 사업자 ‘스프린트’를 인수한 뒤 독일 도이치 텔레콤이 소유한 다국적 무선 통신 회사 ‘티-모바일(T-Mobile)’과 합병했다.

소프트뱅크는 일본 회사채 시장에서 거의 공짜로 돈을 빌려 미국 자산을 사들였다. 일본의 이자율은 30년간 거의 0%였다. 손정의는 한때 걱정하는 동료에게 “일본에선 돈이 공짜라는 걸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레버리지에 크게 의존하는 사업 방식 탓에 늘 많은 부채를 끌어안고 있다. 세계 10대 부채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손정의는 주로 소프트뱅크 주식을 담보로 사용한다. 주가 급락으로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은행이 대출금 상환을 재촉하면서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위험이 내재돼 있다는 얘기다.

일부 관계자들은 손정의가 레버리지에 ‘중독’됐다고 생각한다고 바버 전 국장은 전했다. 손정의가 레버리지에 빠진 건 2006년부터로 평가된다. 그는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레버리지 매수였던 보다폰 재팬을 인수하기 위해 200억 달러를 동원했다. 도이체은행 채권 트레이더 출신으로 현재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CEO인 라지브 미스라가 이를 도왔다.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손정의지만 투자에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큰 손실이 나면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오명이 수식어를 대체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이 절정에 달했을 땐 잠시나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버블이 터진 뒤엔 재산의 97%인 약 700억 달러를 잃은 전력이 있다. 그는 투자의 귀재인가 아닌가. 손정의를 아는 이들은 그를 평범한 투자자이자 형편없는 트레이더로 평가한다고 바버 전 국장은 설명했다.

2019~2021년 사이 손정의는 시장 하락으로 비전펀드1, 2호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사내 헤지펀드를 이용해 옵션거래에서 과감하게 베팅하며 손실을 메우려다 수십억 달러를 손해 봤다. 바버는 이를 ‘무분별한 투기’라고 표현했다.

두문불출 18개월간 재기 구상, AI에 올인
그 후 18개월간 손정의는 대중의 시야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지난해 10월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 사무실에서 바버 전 국장에게 “정말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며 자책하듯 소리쳤다고 한다. 손정의는 “줌 통화를 할 때 화면에 내 얼굴이 자주 나오는데 그걸 보는 게 싫다”며 “얼마나 못생긴 얼굴이냐. 나는 그냥 늙어가고 있을 뿐”이라고도 말했다. “내가 뭘 이뤘느냐”고 되물으며 “자랑스러울 만한 일은 전혀 한 게 없다”고 자신을 질책했다.


손정의는 비전펀드 손실 이후 근신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복귀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세계 최고 기업가이자 미래주의자 지위를 되찾기 위해 인공지능(AI)에 모든 걸 걸었다. 이미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분기 및 연간 실적 발표에서 ‘AI’를 500차례 넘게 언급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을 보여왔다.

그런 그가 오픈AI나 챗GPT와 관련해 주요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요인 중 하나는 타이밍이었다. 비전펀드에 집중하던 시절엔 AI 사업이 소규모거나 개발 초기이거나 대중의 눈에 띄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손정의는 도쿄에 머물렀다. 2022년 초 국경이 다시 열렸을 때는 소프트뱅크가 기록적 손실로 손발이 묶였다.

바버 전 국장은 “손정의가 비전펀드에서 500개 넘는 개별 회사에 돈을 낭비하는 대신 화력을 아꼈다면 그는 완벽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며 “금리 인상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유망한 AI 관련 기업 지분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손정의는 “타이밍 면에서 우리가 조금 너무 일렀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손정의는 2016년 310억 달러에 인수한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을 발판으로 소프트뱅크 그룹을 AI 강자로 변신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내년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AI 반도체를 개발해 소프트뱅크 그룹 자체 AI 생태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반도체 생산, 데이터센터 운영, 산업용 로봇 및 전력 생산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게 목표다. 대량생산 시스템이 구현되면 AI 반도체 사업을 분사할 가능성이 높다.

바버 전 국장은 “(취재 결과) 이 불안한 인물이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손정의는 획기적 기술을 발명하거나 통제하거나 소유하지 않았지만 전형적인 중개자”라며 “그는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우리 사회 모든 구석에 침투한 기술의 물결을 타고 왔다”고 덧붙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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