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의 역설… 배움보다 평가가 많아진 학교

김대성 2026. 5. 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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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적 성장의 이름 아래 커진 부담, 이제는 '배움 중심 평가'를 다시 묻다

[김대성 기자]

 수행평가
ⓒ 김대성(Ai생성)
학교는 언제부터 이렇게 평가가 많은 공간이 되었을까?

수행평가는 본래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단순 지필시험의 한계를 넘어 학생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 협업과 표현 능력, 그리고 배움의 과정을 평가하자는 것이었다. 시험 한 번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다면적 역량을 살피겠다는 교육적 이상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풍경은 그 취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교육과정을 다루는 장학사를 거쳐 학교 현장을 지키는 교감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학교는 과연 '배움을 위한 평가'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새 '평가를 위한 학교'로 방향이 뒤바뀐 것은 아닌가.

멈추지 않는 수행평가… 학생들은 왜 지치는가?

학생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연중 계속되는 평가 부담이다. 수행평가는 중간·기말고사를 피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모든 교과가 비슷한 시기에 평가를 계획한다는 데 있다. 결국 학생들의 학사 일정은 중간고사 전 수행평가, 시험 직후 수행평가, 다시 기말고사와 수행평가가 이어지는 구조로 굴러간다. 배움의 리듬보다 평가 일정이 학교생활을 지배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시험보다 수행평가가 더 힘들다"이다. 과제가 겹치는 시기가 되면 밤늦게까지 발표 자료를 만들고 보고서를 준비하며, 평가 하나를 끝내기도 전에 다음 평가를 걱정한다.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시 도전할 시간적·정서적 여유는 점점 사라진다.

수행평가가 성장의 과정이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일정이 될 때, 교육은 본래의 방향을 잃기 시작한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365일 시험이 이어지는 곳'으로 기억될 위험이 있다.

관찰은 줄고 암기만 남은 수행평가의 변질

문제는 양만이 아니다. 수행평가의 방식 역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과제형 수행평가는 '부모 찬스'와 대리 수행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의 역량보다 가정의 지원 수준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교육당국은 수행평가를 수업 시간 안에서 실시하도록 권장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또 다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수행평가는 대부분 사전 예고를 전제로 운영된다. 공정성과 민원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절차이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학생들은 미리 문제와 주제를 알고 답안을 준비한다. 일부 수행평가는 수업 속 사고와 탐구를 관찰하는 평가가 아니라, 미리 작성한 내용을 외워 발표하거나 제한 시간 안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본래 수행평가는 학생의 실제 역량과 과정을 살피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일부 평가는 새로운 형태의 암기 부담과 평가 대응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진짜 배움보다 '어떻게 평가를 통과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셈이다.

AI 시대, 수행평가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수행평가의 의미 자체를 다시 묻게 만든다. 과거 학생들이 자료를 찾고 고민하며 답안을 구성했다면, 이제는 챗GPT를 비롯한 여러 AI 도구를 활용해 발표문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최신 AI를 여러 개 교차 사용하거나,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AI 활용 자체를 문제로 볼 수는 없다. AI는 앞으로 학생들이 살아갈 사회에서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며, 활용 능력 역시 새로운 역량이다.

그러나 현재의 수행평가는 AI 활용의 범위와 평가 기준을 충분히 정립하지 못한 채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학생의 사고력보다 AI 활용 기술과 경제적 여건이 결과물의 질을 좌우하는 새로운 불평등과 '사고의 외주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학교는 AI를 완전히 금지하기도, 그렇다고 명확한 기준 아래 활용하도록 지도하기도 어려운 과도기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수행평가 무용론과 변별력 논란까지 키우고 있다.

더 많은 평가가 아니라, 더 좋은 평가를 위해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수행평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수행평가 자체를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를 되살리자는 주장이다.

첫째, 수행평가는 수업 중 활동과 관찰 중심으로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발표, 협업 과정, 문제 해결 노력, 참여 태도와 같은 정의적 요소를 교사가 실제 수업 속에서 관찰하고 평가하는 방향이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기록과 증빙의 어려움, 민원과 공정성 문제라는 현실적 과제가 따른다. 그러나 평가를 위해 수업하는 구조가 아니라, 수업 속 배움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둘째, 수행평가의 횟수와 점수 비중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좋은 제도도 과도하면 학생을 지치게 한다. 평가의 양이 교육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 학기당 평가 횟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고, 교과서 활동이나 수업 결과물과 같은 일상적 배움의 흔적도 충실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학생부 평가 편차와 공정성 문제 역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어떤 학교와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부 기록의 질과 경험이 크게 달라진다고 느끼는 학생과 학부모가 적지 않다. 최소한 학교생활에 성실히 참여한 학생이라면 배움의 과정과 성장 노력이 안정적이고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평가는 칼날이 아니라 성장의 거울이어야 한다

교육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외부적 보상과 압박이 내재적 동기를 약화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배움의 즐거움보다 평가 회피와 점수 경쟁이 앞서는 순간, 학습은 지속성과 행복을 잃는다. 친구가 함께 배우는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가 되고, 학교는 성장의 공간보다 끊임없이 평가받는 공간으로 기억될 수 있다.

평가는 본래 학생을 걸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다시 배우도록 돕는 장치여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어도 회복할 수 있고, 모든 수행평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학교. 성적의 압박보다 배움의 경험이 중심이 되는 학교. 수행평가 역시 그런 교육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평가가 수업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움이 다시 학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더 많은 평가가 아니라, 더 좋은 평가를 말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이자 교육현장을 지켜보는 교육자로서, 최근 과도해진 수행평가 부담과 AI 시대 평가 왜곡에 대한 학생·학부모·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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