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 69년차 배우 인생 김영옥

권혁재 2025. 2. 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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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대본이 내 삶의 학습지"


권혁재의 사람사진/ 배우 김영옥

“원래 예전엔 인터뷰하자면 손사래를 쳤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나마 불러주면 고마운 일이죠.”

이는 중앙일보 스튜디오로 온 87세 현역 김영옥 배우가 한 말이다.

사실 그가 서울 끝에 있는 스튜디오로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 데도 외려 “이렇게나마 불러주니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이는 69년 배우로서 삶의 철학일 터다.

그는 지금껏 활동 비결이 할 수 있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이 들어오면 욕심이 나고 지금도 설레요”라고 덧붙였다.

1957년 연극 ‘원숭이 손’으로 데뷔했으니 정확히 배우로서 69년 차,

지금도 설레는 배우로서의 삶이 그저 순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김영옥 배우는 2년 전 아픔을 겪은 터였다. 샤워 중 미끄러져 뼈에 금이 간 아픔이었다. 남편이 소변까지 받아낼 정도였으니 다시는 못 일어날까 하여 두렵기도 했노라 고백했다. 하지만 다시 회복한 그는 희열이 남달랐다고 덧붙였다.

“돈 한 푼 안 받고 1년에 한두 편 훈련과정으로 연극을 했었죠.

연극을 하느라 오밤중에 들어가고,

아이들 홍역을 앓을 때도 못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게다가 2015년부터 음주 뺑소니에 다친 손자를 품고 살아왔으니….

그는 그때마다 연기 대본을 학습지로 여기며 살아냈다고 했다.

“어떤 역할이건 나를 숨기려 해도 전혀 배제할 순 없어요.

연기하며 남의 인생을 도둑질해보면 얼마나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는 것,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대처법을 배우죠.”

역시 대배우다운 대처법이었다.

최근 그는 나문희 배우와 함께 서울국제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데뷔 이래 처음 받은 주연상이라고 했다.

노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소풍의 주인공으로서였다.

‘뜨거운 씽어즈’에서 김영옥 배우가 부른 천개의 바람이 되어’는 유튜브 조회 수가 300만을 넘었다. 결국 담담하게 진솔한 목소리로 부른 그의 노래가 우리네 삶의 바람이 된 터였다.


사진 촬영을 하며 주연상의 주인공다운 모습을 요구했으나 그는 겸연쩍어했다.

"저는 그냥 할머니니 그렇게 표현해 주면 좋겠네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나지막이 노래를 읊조렸다.

스스로 밝혔듯 그는 박치였다.

하나 소리 하나하나가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69년 배우의 삶을 담은 읊조림이었으니 그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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