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상장사 경영권 분쟁 '역대급'…"한국식 지배구조 경고음"

오유교 2024. 10. 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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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이었던 지난해보다도 소송건수 많아
경영권 분쟁에 취약한 한국식 지배구조가 분쟁의 원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없이는 리스크에 계속 노출될 것"

상장사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최근 5년 내 가장 많은 수준이었던 지난해보다도 많은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식 지배구조에 경고음을 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소송등의제기·신청(경영권분쟁소송)’ 공시가 지난 1~3분기 동안 231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14건보다 7.9% 증가했다. 2023년은 총 266건의 소송전이 발생해 2020년대 들어 경영권 분쟁이 가장 많았던 해다. 현재 페이스대로라면 올해 경영권을 둘러싼 소송은 300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연초부터 분쟁에 휘말렸던 한미약품그룹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최근 고려아연까지 분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옛말…'메기'로 떠오른 사모펀드

경영권 분쟁이 대폭 증가한 표면적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 2세 경영 이후 희석된 오너가의 지분율과 유대관계 ▲ 높아진 사모펀드의 위상 ▲ 개인주주의 증가와 행동주의 펀드 증가 등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는 "과거엔 순환출자, 지금은 지주회사 형태로 오너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등으로 지분율이 희석되면서 지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관전용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개입할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재 자본시장의 흐름"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고려아연의 사례를 대입해보면 회장을 맡은 최씨 일가의 지분은 15.6%에 불과하다. 최대 주주는 장씨 일가 소유의 영풍(25.4%)이다. 근본적으로 경영권을 쥔 오너가의 지분율이 취약하기 때문에 '동업 의식'이 흔들리면 언제든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 역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취약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21년 전 외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이 SK㈜의 최대 주주에 올랐던 '소버린 사태' 당시나 현재나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변한 게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또한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규모와 위상이 날로 커지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북아 최대 규모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지난 2월 말 기준 자산이 약 40조원에 달하며 투자 기업의 매출 합계가 약 63조원에 이른다. 국내 기관전용 사모펀드 약정액은 136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또다시 갈아치웠다. 일반 사모펀드, 이른바 '헤지펀드' 중에서도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행동주의 펀드'가 대폭 늘어난 것도 경영권 분쟁의 또 다른 요인이다.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받은 국내 기업은 지난해 77곳으로 2019년(8개) 대비 9.6배 증가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분쟁에 한몫

한국은 상장사가 주식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밸류)와 인수합병(M&A) 거래가의 격차가 큰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명목으로 시세보다 훨씬 웃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올해만 봐도 사모펀드 운용사 큐캐피탈이 최근 거래가의 3배 이상을 주고 드라마 제작사 초록뱀미디어를 인수하는 등 주식 시세보다 적게는 수십 퍼센트, 많게는 몇 배를 쳐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가치가 주식 시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의 저평가)가 계속된다면 경영권 분쟁이 절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기업 지배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며 승계 리스크가 앞으로 더욱 발생할 일이 많기 때문에 경영권 분쟁은 당분간 계속 증가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장의 전망이다. 제2의 '고려아연' '한미약품'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상장사 최대 주주는 아직까진 1세대가 가장 많지만(55.7%), 2세대(25.6%)와 3·4세대(10%)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사모펀드가 최대 주주인 곳도 2.2%(58곳)다. 한편 전문가들은 경영권 이슈로 치솟은 주가는 분쟁이 끝난 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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