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끊긴 부모에 생활고 겪던 아이들…“중‧고생에 직접 생계급여 지급”

김은빈 2026. 4. 1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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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급여, 공무원 ‘직권 신청’ 가능
부모 동의 없이도 위기가구 아동에 생계급여 지급
복지 신청주의 장벽 허문다
지난달 18일 울산 울주군에서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 4명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해당 세대 현관 전경. 연합뉴스

미성년자가 부모 동의 없이도 생계급여를 직접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정부가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안을 제시하면서다. 취약계층이 생계 곤란을 겪을 때 대상자 동의 없이도 공무원이 직권으로 생계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16일 정부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 방안을 이달 중 시행할 계획이다. 불가피한 경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수급권자를 대신해, 간이 소득‧재산 조사를 거쳐 생계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아동이나 중증장애인의 경우, 친권자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신청을 거부하면 지원 대상이더라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부모와 연락이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의 경우, 본인 명의의 계좌로 생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 부친이 집을 나간 뒤 왕래가 끊긴 지 오래됐음에도, 생계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친권자인 부친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문제를 쿠키뉴스가 단독 보도한 바 있다. 특히 생계급여를 지급받는다고 해도 가구주인 부친의 계좌로 지급이 되는 실정이었다.  

이번 개선안에 따르면 부모가 생계급여 신청을 거부하더라도, 위기 아동이 부모를 거치지 않고 국가로부터 직접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박민정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16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 친권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친인척이나 제3자를 급여 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고, 특히 중·고등학생이라면 본인 명의 계좌로 생계급여를 직접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초등학생도 입학하지 않아 의사 표현이 어려운 아동도 지원의 공백이 없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박 과장은 “미취학 아동의 경우 아동보호체계 가운데 후견인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정식 선임까지 2개월가량 걸린다”면서 “선임 전까진 마을 통장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자를 급여 관리자로 지정할 수 있다. 사회복지 공무원이 물품으로 전달하는 방법 등을 통해 지원의 공백을 메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간 청소년들은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가출 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제도권 밖으로 떠밀렸다. 이번 제도 개선안을 통해 부모와 연락이 끊긴 청소년들도 생계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박효상 기자

李 “잔인한 제도”라던 복지 신청주의 한계 깬다

이번 개선안은 복지 신청주의의 장벽을 넘는 첫 시도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신청주의’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제도다. 지금도 공무원이 생계급여를 직권으로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 금융재산 조사를 위한 서면 동의도 받아야 한다. 당사자가 신청을 거부하거나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 사실상 국가가 손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생활고 추정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복지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이 커졌다. 지난달 18일 울산 울주군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30대 아빠와 네 남매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지자체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권고했으나 당사자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7일 전북 군산에서는 7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과급이 체납됐음에도 수급 신청 기록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청주의의 장벽을 넘기 위해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라며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복지부는 ‘선(先) 보호 후(後) 검증’ 체계를 도입했다. 미성년자나 발달장애인 등 스스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가구원이 있는 경우, 공무원이 동의 없이 직권으로 생계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재산 조사는 3개월 뒤로 미루고, 간이조사만으로 즉시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 머무르는 일이 없도록 우선 지원한 뒤 3개월 뒤 수급권자 기준에 적합한지 검증하는 방식이다. 지원 이후 금융정보를 보완해 재조사하며, 3개월 내 금융정보제공 동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엔 수급이 중단된다. 

공무원의 적극 행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면책 조항’도 포함됐다. 금융정보를 사후 보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과다 지급분에 관해서는 환수를 면제하는 특례를 지침에 규정할 계획이다. 또한 업무를 수행한 공무원에게는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 추정이 적용된다.

보건복지부 전경. 박효상 기자

성인 가구는 여전히 ‘신청’ 필요…데이터 연계 자동급여 시스템 필요

다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비장애인 성인으로만 구성된 가구는 현행법상 당사자 동의 없이 직권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박 과장은 “현행법상 성인 가구는 직권 신청 대상으로 두기 어렵다”면서 “필요한 경우 사례관리 등 다른 서비스로 연계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보장급여법에 따르면 심신미약 또는 미성년자 등의 경우 동의 없이 직권 신청을 허용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생계급여에도 적용하기로 한 만큼 비장애인 성인은 법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복지 사각지대와 빈곤층의 수급 미신청 누락을 유발하는 복지 신청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데이터를 연계한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복지 탈신청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에선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급 자격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기 징후 발생 시 즉각적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사회보장급여법을 개정해 ‘자동 수급 등록’ 및 ‘선제적 통보’를 의무화했다. 영국 역시 복지당국이 수급 자격 변동자를 수동적 신청이나 신고 없이 상시적으로 직권 확인하고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용제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복지 제도의 최후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 급여에서 복지 탈신청주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수급 자격을 실시간으로 직권 확인하고 발굴해 잠재적 수급자에게 급여를 사전 통보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달 말 제도 개선안이 사회복지 인력 확충, 생계급여 수급 문턱 완화 등을 담은 종합 대책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제도 개선안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이달 중 지자체에 세부지침을 배포하고, 제도 개선안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연내 의원 입법 형태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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