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만 뽑는 세상”… 돈 내고 인턴 하는 시대
기업들 경력직 선호에 ‘울며 겨자’

마케팅 분야 취업준비생 A씨는 최근 18만원을 지불하고 온라인 직무 부트캠프에 참여했다. 직무 부트캠프란 구직자가 현직자와 함께 3~5주간 실무 과제를 수행한 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유료 프로그램이다. 주로 구직 플랫폼 회사가 운영하며 통상 5주 과정으로 적게는 15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까지 비용이 든다. A씨는 27일 “직무 경험을 중시하는 회사가 많다 보니 이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적어 구직 과정에서 활용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채용 시장 속에서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일 경험’을 쌓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경기 위축이 지속되고, 인공지능(AI) 활용 등 기술 변화가 빨라지면서 검증된 소수의 신입만 뽑으려는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이 이런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 재학 중인 B씨는 최근 기업 3~4곳의 해외영업 인턴에 지원했지만 모두 서류 단계에서 탈락했다. 학점은 4.5점 만점에 3.8점, 토익은 900점대에 영어 말하기 시험 최고 등급(오픽 AL)까지 받았다. 국제무역사, 무역영어 등 자격증을 보유 중이고 교환학생 경험도 있어 나쁘지 않은 스펙이었다. B씨는 “직무 경험이 없는 게 탈락 원인인 것 같아 직무 부트캠프 같은 프로그램 참여를 고려 중”이라며 “주변에도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는 ‘인턴 때부터 직무 경험을 요구하면 학생들은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불만이 퍼진 지 오래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 동향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기업 315곳은 신규 채용 결정 요소 1위로 ‘직무 관련 일 경험’(35.6%)을 꼽았다. ‘일반 직무 역량’(27.3%)은 2위였다. 이들은 평가 기준에서도 학교·전공·학점 등 스펙(36.2%)보다 직무 경험·경력 등 직무 능력(96.2%)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도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구직자들에게 일 경험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는 실정이다. 노동부가 제공하는 일 경험 프로그램은 인턴형·프로젝트형·ESG형·기업탐방형 등 유형에 따라 최소 5일 내외에서 최대 6개월까지 직무 경험 기회를 준다. 특히 인턴형 참여 청년에게는 주당 35만원, 기업에는 주당 5만원이 지급된다.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와 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신 기업은 유무형 인프라를 활용해 청년들에게 직무 경험을 제공하는 구조다. 일 경험 관련 예산은 도입 첫해인 2023년 553억원에서 2024년 1718억원, 지난해 2140억원으로 늘었다.
여러 정부 부처가 함께 준비 중인 ‘쉬었음 청년’ 대책에서도 대기업들을 청년 일 경험 제공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 시장에서 사회초년생에게까지 직무 경험을 요구하는 기류는 앞으로도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기업들이 범용형 인재를 많이 뽑아 교육하는 방식이었지만 경제가 정체기, 쇠퇴기에 들어서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즉시 투입이 가능한 인력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어떤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지보다 자신의 적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페셜리스트’의 역량을 갖춰나가는 게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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