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 경영진 형사처벌·차입매수(LBO) 규제등 예상
궁지 몰린 MBK…최악의 경우 탈(脫)서울 가능성도
PE업계 재편 예상…한앤컴퍼니 최대 수혜 급부상
거액 물린 메리츠금융 私債영업 접고 정통IB 선회
MBK 꺾은 고려아연 최윤범…“금융업 더 잘할 사람”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나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나중에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8개월째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홈플러스-고려아연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비 효과’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고려아연 사태’는 70년 넘게 동업했던 최씨와 장씨 집안의 경영권 분쟁이고, ‘홈플러스 사태’는 국내 2위 대형 마트인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문제들을 말하기에, 겉으로는 전혀 별개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태 모두 자본시장의 ‘선수들’이 깊이 연루돼 있습니다.
우선 두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MBK가 있습니다. 또 MBK의 최대 경쟁자인 한앤컴퍼니는 물론 IMM, 스틱, 스카이레이크 등 주요 사모펀드를 포함해 사모펀드 업계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사모펀드업은 원래 외부 변화에 민감합니다. 금융그룹의 ‘큰형’ 격인 KB금융과 신한금융을 위협할 수준으로까지 성장한 메리츠금융그룹이 고려아연과 홈플러스 두 곳 모두에 조 단위의 대출을 해줬다는 사실도 자본시장에 파장을 던집니다.
홈플 사태 고려아연 분쟁 종결 촉매제
홈플러스 사태와 고려아연 사태는 서로 큰 영향을 미칩니다. 고려아연 분쟁에서 최윤범 회장 측이 정기주총을 통해 승리한 데에는 홈플러스 사태도 한몫했습니다. 분쟁을 주도하는 MBK가 ‘먹튀와 모럴 해저드의 전형’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여론은 물론 법원까지 사실상 최윤범 회장 손을 들어줬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쩌면 홈플러스 사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종지부를 찍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홈플러스 사태를 조사 중인 금융감독원은 홈플러스 경영진과 MBK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전에 신용등급 강등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이 같은 혐의가 확정되면 홈플러스 경영진에 대한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MBK에 대해서도 행정제재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MBK와 홈플러스가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과 상거래채권 전액 변제 등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강등 직전에 카드 대금을 기초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판매한 신영·하나·현대차·유진투자증권은 홈플러스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김광일 부회장과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대표 등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자본시장금융투자법 위반 혐의로 반부패수사3부에 배당했습니다. 여기에 공정위와 국세청까지 나서 MBK와 홈플러스를 조사 중입니다.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총 7조 2000억 원의 인수대금 중 MBK 블라인드펀드에서 조달한 2조 200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5조 원을 사실상 외부 차입으로 마련했습니다. 홈플러스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과도한 외부 차입과 그로 인한 막대한 금융비용 부담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금감원·검찰 MBK 전방위 압박
최근 국회에서는 민주당 등 야당을 중심으로 사모펀드의 과도한 차입매수(LBO)를 규제하기 위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야당 의원들과 대학교수 등 패널들은 사모펀드의 차입매수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의견입니다. 이를 위해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기업에 손실을 입히는 차입매수 행위를 결정한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공시의무, 내부통제 의무, 이해상충 방지, 신용공여비율 제한 등의 규제를 추진하자고 주장합니다. 민주당 등 야당은 이와 별개로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만큼, 김병주 회장이 2조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국회와 금융당국, 검찰과 공정위, 국세청 그리고 시장 관계자들의 전방위적 압박을,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인 MBK와 김병주 회장, 김광일 부회장은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요? 특히 대다수의 예상대로 오는 6월 대통령 선거에서, MBK에 대한 처벌과 사모펀드에 대한 강력 규제를 벼르는 민주당으로 권력이 이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당시 현재현 회장은 1조 원 규모의 사기성 CP 발행 혐의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LIG건설의 구본상 부회장은 회사 부도 직전에 2000억 원 규모의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구씨 가문은 핵심 계열사인 LIG손해보험을 KB금융에 매각해 투자자 손해를 전액 보상했고, 이로써 징역 4년으로 감형받았습니다.
동양·LIG 사례에 비춰볼 때, 신용등급 강등 직전에 700억 원 규모의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한 MBK와 홈플러스 경영진 역시 형사처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 경우 현재 홈플러스 공동대표인 김광일 부회장이 가장 먼저 대상이 될 것입니다. 김병주 회장의 경우, 홈플러스의 실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국적도 미국이며 주로 해외에 체류하고 있어 형사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김광일 MBK 부회장은 국내 사모펀드 업계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기에, 그가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시장에 미칠 파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김병주 私財 출연 2조냐 1000억이냐
민주당 등 야당은 MBK 김병주 회장에게 2조 원의 사재 출연을 요구합니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기준 홈플러스에 투자한 MBK 3호 펀드가 투자 원금 대비 2.1배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MBK가 운용 및 성과보수로 1조 원 가량을 챙긴 점을 감안할 때, MBK 측이 정치권의 압박이 심해지면 최대 1조 원 정도는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물론 시장 논리로만 보면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은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일부에서는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발표 등을 인용해 김병주 회장의 자산이 무려 98억 달러(약 14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실제와 다릅니다. 김병주 회장의 자산이라는 것은 사실상 해외 LP(기관투자가)들이 맡긴 자산일 뿐입니다. 사모펀드는 LP들이 맡긴 돈을 잘 운용해 수익을 낸 뒤 이를 돌려주고, 그 과정에서 운용‧성과 보수를 받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사모펀드 회장과 대기업 총수 겸 오너 회장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모펀드의 회장이나 대표는 어디까지나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야당이 2조 원의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데 반해 김병주 회장과 MBK는 아직까지는 일부 상거래채권 변제 등을 위해 1000억 원 정도만 내놓겠다는 입장입니다. 2조 원과 1000억 원의 거대한 간극은, 사모펀드 산업을 바라보는 정치권과 MBK의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쨌든 시간이 흐를수록 MBK와 김병주 회장에 대한 정치권과 행정권력의 압박은 더 거세질 것이고, 그들은 점점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특히 비즈니스 측면에서 이런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국내에서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펼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펀딩은 물론, 신규 투자기업 물색이나 인수합병(M&A), 인수 기업의 엑시트(EXIT) 등도 모두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MBK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대한민국을 떠나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입니다.
MBK 서울 떠나 홍콩이나 싱가포르 옮길까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MBK가 자금 조달은 90%를 해외 LP들로부터 하지만, 투자와 엑시트의 주요 무대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탈(脫)서울’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면서도, 최악의 경우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MBK의 운용자산(AUM)은 45조 원, 약 300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이에 비해 한앤컴퍼니는 대략 20조 원, IMM은 10조 원, 스틱은 7조 원 수준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 전체 운용자산이 150조 원 가량임을 고려하면, MBK가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MBK가 한국을 떠난다면 국내 자본시장에 줄 충격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MBK가 오는 6월 말까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첫 투자처가 고려아연인 6호 펀드는 10조 원이 목표인데, 이미 7조 원 이상을 모았습니다. 당연히 6호 펀드의 LP 다수도 해외 기관투자가들입니다. SK그룹의 리밸런싱 과정 등에서 재확인되었듯, MBK나 한앤컴퍼니 같은 초대형 사모펀드는 조 단위 자금이 필요한 국내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M&A에 필수 존재입니다. ‘먹튀’라는 이상한 논리로 무조건 비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홈플러스-고려아연 사태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은 곳은 MBK의 최대 라이벌인 한앤컴퍼니입니다. MBK와 한앤컴퍼니는 해외 자금이 국내에 투자될 때 사실상 관문 역할을 하는 국내 유일 사모펀드들입니다. MBK 김병주 회장과 한앤컴퍼니 한상원 대표는 몸은 한국인이지만 국적은 모두 미국입니다. 두 회사는 사업상으로도 경쟁하지만 여러 이유로 감정적으로도 불편한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앤컴퍼니 독주체제 바람직하지 않아
이번 사태로 MBK의 비즈니스가 크게 위축되거나 최악의 경우 한국에서 철수한다면, 한앤컴퍼니 외에 해외 자본을 받아 줄 다른 채널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적 네트워크나 그동안의 트랙레코드를 고려할 때, 한앤컴퍼니가 독주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모든 시장이 그렇듯, 특정 기업이 독주하는 현상은 해당 기업은 물론 산업 전체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금융당국자라면 이런 문제까지 고민하면서 정책을 펴야 합니다. 시장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런저런 음모론이 떠돌고 있기도 합니다.
사모펀드 업계는 이번 홈플러스-고려아연 사태의 불똥이 MBK를 넘어 업계 전반으로 튈까 우려합니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MBK는 토종 사모펀드가 아니다”라고까지 주장하며,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혼을 내더라도 MBK만 대상으로 하고 업계 전체를 싸잡지는 말아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차입매수(LBO) 관련 규제입니다.
현재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할 때는 대체로 절반은 자체 펀드 자금, 나머지 절반은 금융기관 차입으로 충당하는데,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한다면 업계가 받을 타격은 적지 않습니다. 연기금‧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의 출자 가이드라인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강제 규제는 곤란하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입니다. 시장 상황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금융당국은 차입매수에 대한 직접 규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메리츠 김용범, 삼고초려 ‘IB 대부’ 정영채 영입
시가총액에서 KB금융‧신한금융과 경쟁하며 대한민국 증권시장의 ‘밸류업(value-up)’ 선두 주자로 떠오른 메리츠금융그룹은, 특이하게도 이번 홈플러스 법정관리 사태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모두 엮이고 말았습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0월 고려아연의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1조 원을 6.5% 금리로 빌려줬습니다. 앞서 지난해 5월에는 메리츠증권‧메리츠화재‧메리츠캐피탈 등 3사가 홈플러스의 인수금융을 리파이낸싱하면서 1조 2000억 원을 10% 이상의 고금리로 대출해줬는데, 홈플러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물론 담보로 잡은 홈플러스 매장 가치가 5조 원 이상이어서 장기적으로 채권 회수에 큰 문제는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메리츠금융이 물리고 말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앞으로 법원에서 홈플러스 회생안을 마련할 때, 채권자인 메리츠금융도 정치 논리에 따라 어느 정도 양보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홈플러스 사태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담보로 잡은 매장과 점포 등 부동산을 메리츠금융 마음대로 처분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메리츠금융은 지난해 2조 원 이상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주력사인 메리츠증권만 해도 1조 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렸지만, 시장에서는 ‘사채(私債)업자’라는 혹평도 없지 않습니다. 홈플러스나 고려아연처럼 급전이 필요한 기업을 찾아다니며 부동산이나 지분을 담보로 고금리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방향 전환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메리츠금융그룹 김용범 대표이사 부회장은 ‘IB 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을 상임 고문으로 영입했습니다. 정영채 사장에게는 메리츠 외에도 여러 곳에서 영입 제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용범 부회장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정 고문을 영입한 이유는, 부동산 담보와 고금리를 노린 위험 높은 영업에서 벗어나 DCM(부채자본시장), ECM(주식자본시장), 그리고 M&A 등 정통 IB 부문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전략 때문입니다. 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KB증권처럼 제대로 된 플랫폼을 갖춰 기업들의 다양한 금융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메리츠금융의 이러한 전략은 올 3분기 메리츠증권이 ‘초대형 IB’로 지정되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최윤범, ‘단군 이래 최대 분쟁’ 이겼지만 ‘內傷’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은 학생 수가 적지만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에머스트대학과 컬럼비아대 로스쿨 출신입니다. 뉴욕주 변호사를 거쳐, IB 업계의 ‘골드만삭스’에 비견되는 미국의 유명 로펌 ‘크라벳’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일했습니다. 최윤범 회장이 지난달 정기주총에서 막강 사모펀드 MBK를 물리칠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경력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시장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대단히 스마트한 인물”이라고 말합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M&A 전문 변호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상상 초월의 갖가지 법무 기술과, 그야말로 ‘신공(神功)’이 동원된 ‘단군 이래 사상 최대 경영권 분쟁’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번 분쟁에서 승리한 최윤범 회장에 대해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제조업보다는 차라리 금융업을 했으면 더 잘했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내놓습니다.
지분 경쟁에서 34%를 보유한 최윤범 회장 측이 41%를 가진 MBK‧영풍 측보다 7%포인트 뒤지고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영풍과 고려아연 사이에 순환출자 구조를 만든 뒤 이를 근거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 25%에 대한 의결권을 무력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으로 몇 년간은 법적 분쟁이 계속되겠지만, 지분이 적은 최윤범 회장 측이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했지만,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도 ‘승자의 저주’가 우려될 만큼 내상(內傷)이 큽니다. 순전히 외부 차입으로 방어한 만큼 재무 부담이 힘겹습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생각도 못 합니다. MBK 역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김병주 회장은 기관투자가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영풍의 백기사로서 고려아연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고 일반 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적대적‧약탈적 M&A’라고 비난합니다. 양측이 모두 힘든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타협 가능성, 혹은 분쟁의 출구는 없을까요?
MBK도 최윤범도 출구 찾지만 길 안 보여
현 상황에서 더 급한 쪽은 MBK로 보입니다. 바로 홈플러스 사태 때문입니다. MBK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이번 고려아연 인수를 주도한 김광일 부회장이 형사처벌 등으로 ‘유고’ 상태에 이를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MBK가 대한민국에서 계속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려아연에 계속 매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고려아연에 투자한 1조 6000억 원을 회수하고 떠나고 싶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를 받아 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사주는 것이지만, 현재로선 그럴 만한 자금이 없습니다. 최 회장 측이 백기사를 동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습니다. 재계에서 금기시하는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최 회장은 이미 인심을 잃었고, 고려아연 분쟁 자체가 33% 지분을 가진 장씨 집안에 16% 지분을 가진 최씨 집안이 도전한 구도였던 만큼,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한때 최 회장 측 우군으로 거론됐던 현대차‧한화‧LG그룹 등도 실제로는 전혀 그런 의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일각에서는 최윤범 회장이 주식을 팔고 떠나는 시나리오도 제기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자본시장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설령 그럴 뜻이 있어도,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대한 6000억 원 투자와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인 미국 이그니오홀딩스 인수와 관련한 의혹 및 부담 때문에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합니다. 이처럼 MBK도, 고려아연 최 회장도 당분간은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시간과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습니다. ‘홈플러스-고려아연 사태’는 서로 다른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당사자들까지 겹치면서, 작은 파문에서 출발했지만 자칫 예상치 못한 충격파를 자본시장 전체에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합니다. 매우 신중하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소의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세상사 다 그렇지만 수단과 방법이 지나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박종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