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긴 무명 시절이 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배우 정성일이 작품 출연 이후에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고백하며 화제가 됐다. 사실 데뷔만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배우의 현실이다.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출연료가 적거나 일정치 않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정성일뿐 아니라 채서안, 김지은, 공민정, 류현경, 원진아 등도 각자의 자리에서 땀 흘리며 버텨왔다. 긴 무명 시절에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간 이들의 이야기는 대중에게 뭉클한 응원과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정성일
<더 글로리> 이후에도 배달 아르바이트


배우 정성일은 MBN 예능 <전현무계획2>에 출연해 “<더 글로리> 끝나고도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물한 살에 연극을 시작하며 대학로를 전전했고, 대리운전·발레파킹·카페 오픈·와인바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더 글로리>의 정산은 이미 받은 상태였지만 큰돈은 아니었고 생활을 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고 한다. 긴 무명 속에서 “연기를 그만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다른 건 못 했을 것 같다. 잠깐 쉬어도 다시 돌아왔을 것”이라며 연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결국 <더 글로리>에서 하도영 역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인기 배우 반열에 올랐다. 무명 시절을 버티게 해준 건 결국 연기를 향한 집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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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서안
7개의 공장을 전전한 ‘알바몬’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학씨 부인 영란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채서안은 스스로를 ‘알바몬’이라 부를 만큼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하퍼스 바자 유튜브에서 “연기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하며 방향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떡 공장, 쿠키 공장, 전자제품 조립, 도어락 제조, 카드 단말기 제작, CCTV 품질 관리까지 무려 7곳을 거쳤다. 기름 냄새에 피부가 상하고, 단순 반복 노동에 지치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버텼다. 1996년생인 그는 본명 변서윤으로 2021년 KBS2 드라마 <경찰수업>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예명 채서안으로 활동을 이어가며 다시 연기 무대에 섰다. 힘겨운 시간에도 연기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 않았고, 독립영화 <도망자>와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등의 작품을 통해 조금씩 존재감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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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주연 촬영 중에도 카페 알바 3개

MBC 드라마 <검은 태양>에서 주연을 맡아 주목받은 김지은은 당시에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세 곳이나 병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SBS 예능 <동네멋집>에서 그는 “생계가 불안정해 부모님께 손을 덜 벌리려다 보니 알바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2016년 데뷔 이후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며 6년을 버텼지만, 오디션 탈락과 공백기도 겪었다. 한때는 서울 생활을 접고 인천 본가로 내려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를 포기할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감사히 여기며 연기를 놓지 않았고, 결국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와 <검은 태양>을 거쳐 <천원짜리 변호사>까지 주연으로 도약했다. 그의 끈질긴 버팀은 같은 길을 걷는 배우들에게도 큰 위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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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정
하루 600개 만두를 빚던 배우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친근한 이웃으로 얼굴을 알린 공민정 역시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갖고 있다. 그는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아기용품 박람회, 모델하우스 안내, 만둣가게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만둣가게에서는 하루 600개를 빚으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드라마 촬영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시절, 오디션이 있으면 흔쾌히 시간을 빼주던 사장님 덕에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갯마을 차차차>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제는 다수의 작품에서 개성 있는 조연으로 활약하며 ‘신스틸러’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의 진득한 땀방울이 지금의 공민정을 만든 밑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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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경
커피숍 알바생에서 28년 차 배우로

28년간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온 류현경도 한때 생계를 위해 커피숍과 돼지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손님이 ‘연예인 아니냐’고 물었을 때도 ‘아니다’라며 웃어넘겼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단순히 ‘닮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배우로 데뷔했음에도 스스럼없이 일을 이어간 건 자신감이었다. 서빙부터 단기 사무 아르바이트까지 가리지 않았고, 맡은 일엔 몰두해 성실히 해냈다. 그는 영화 <신기전>을 인생작으로 꼽으며 “그 작품을 찍고 평생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무명 시절에도 의연하게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경험은, 긴 커리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연기 철학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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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아
영화관 알바생의 꿈


원진아의 가장 오래한 아르바이트는 영화관이었다.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러 오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영화 <돈>으로 첫 무대 인사를 하던 날, 과거 내가 입었던 유니폼을 입은 영화관 친구들이 자신을 안내해 주는 순간은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고 한다. 2017년 1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주인공으로 낙점되기 전까지 그는 보험회사 계약직, 산후조리원 도우미, 청소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알바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 속에서도 독립영화 오디션을 보며 꿈을 이어갔다. 원진아는 한 인터뷰원에서 드라마 〈라이프〉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조승우가 “목욕탕 청소하는 신 보고 놀랐다. 제대로 하더라”고 말한 일화를 전하며 “청소 아르바이트 경험이 연기에 실감을 더해줬다”며 웃었다. 무명 시절의 눈물이 오늘의 원진아를 만든 셈이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