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中작가 유력" 도박사 예상 깼다…외신도 놀란 '한강의 기적'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53)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된 영국 문학상 부커상 측이 10일(현지시간) "엄청난 소식"이라며 수상을 환영했다.
한강은 2016년『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한국인 최초로 받는 등 부커상과 인연이 깊다. 한강은 지난해 7월 부커상과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이 다른 문화권의 넓은 독자층에 닿도록 도와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영문판으로 낸 출판사 등도 수상을 반겼다.『희랍어 시간』을 번역 출간한 펭귄 랜덤하우스 계열 출판사인 헤이미시 해밀턴의 사이먼 프로서 디렉터는 주영 한국문화원에 성명을 보내 "한강과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모두에게 얼마나 멋진 순간인가"라며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고 밝혔다.
프로서 디렉터는 "한강은 탁월한 아름다움과 명확성으로 글쓰는 작가이고 고통스러운 질문에 단호하게 직면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이어 "그는 어떤 다른 작가와도 다르게 보고, 생각하며, 느낀다"면서 "그의 작품은 경이로움이자 선물"이라 강조했다.
편집자 시절『채식주의자』의 영문본 출간에 기여했던 작가 맥스 포터는 이날 가디언에 "이제 새로운 독자들이 한강의 기적적인 작품을 발견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설가 데보라 레비도 가디언에 "한강이 가장 심오하고 숙련된 작가라는 걸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면서 "잘하셨다, 당신이 우리의 2024년 노벨상 수상자가 되어 정말 기쁘다"고 축하했다.
외신들 "예상 못했다…中 작가가 받을 줄"
외신들은 "한강의 수상은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surprise) 결과"라는 반응을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는 발표 전 도박사들은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로 불리는 여성 작가 찬쉐(残雪)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매체인 피가로도 미국의 토머스 핀천, 프랑스의 미셸 우엘벡 등 유력 후보 명단에 한강의 이름은 없었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국 가디언은 "한강은 가부장제·폭력·슬픔·인간애 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했다"고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201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았고 일본에서도 'K-문학'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며 "한강은 그중에서도 보편성과 문학성에서 선두를 달렸다"고 평했다.
아울러 외신들은『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 등에 투영된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평론가와 학계의 평가를 전했다. NYT는 한 작가와 2016년 했던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작가가 9세에 경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강제 진압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그의 관점을 형성했고, 그 관점이 작품에 반영됐다고 전했다.
한강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소년이 온다』와 관련, "저는 경찰의 급습을 목격했고, 그와 동시에 부상자들에게 헌혈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도 기억한다"고 NYT에 전했다. 한 작가는 "인간은 왜 이토록 폭력적인가, 그리고 인간은 왜 이토록 숭고한가라는 두 개의 수수께끼가 내 마음에 각인됐다"면서 "소설을 쓸 때면 항상 이 주제로 돌아가게 된다"고 전했다.
NYT는 평론가 포로치스타 카푸어의『채식주의자』 리뷰를 인용해 "한강은 한국에서 선견자(visionary·미래를 내다보는, 귀감이 되는 인물)로 정당하게 칭송받아왔다"고 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교수인 안키 무케르지는 NYT에 20년간 매년 한강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무케르지 교수는 "한강의 글은 몸의 정치, 성별의 정치, 국가에 맞서 싸우는 정치를 다룬다"면서 "그러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글을 매우 유쾌하게, 초현실적으로 쓴다"고 평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소년이 온다』를 '합창'에 비유한 평론가 라라 팜크비스트의 글을 소개했다. 팜크비스트는 "이 '합창'에는 죄도 없이 가족을 잃은 사람, 학자, 투옥된 사람들, 과거의 상처를 견디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평했다. WP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작별하지 않는다』가 내년 1월 호가스 출판사에 의해 미국에서 출판된다고 소개했다.
외신들은 한강의 개인사도 조명했다. NYT는 한강이 어릴 적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자주 이사를 했다고 소개했다. 한 작가는 2016년 NYT 인터뷰에서 "힘들었지만, 책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말했다.
프랑스 피가로는 한강이 10대 시절 스웨덴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러시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등을 탐독했으며 이런 독서 경험이 그의 글쓰기에 영감을 줬다고 소개했다.
NYT "여성이 韓노벨상 가뭄 끝낸 건 놀라우면서 즐거워"
이번 한 작가의 수상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다양성과 결부해 분석한 기사도 나왔다. NYT는 "최근 몇 년간 스웨덴 한림원(노벨 문학상 수상자 결정 기관)은 여성 수상자 수와 유럽·북미 이외 지역 출신 수상자 수가 적다는 비판을 받은 후 수상자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2020년대 여성과 유색인종 수상자를 열거했다. CNN은 "1901년 이래 노벨 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여성은 18번째이며, 한강은 한국인 첫 수상자"라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NYT는 "일부 학자와 번역가들은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작가가 여성인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강의 작품을 영어로 낸 페이지 모리스 번역가는 NYT에 "한국에서 여성이 한국 문학의 '노벨상 가뭄'을 끝내는 사람이 된 걸 보는 건 놀라우면서도 즐거운 일"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현대 한국 문학의 대부분은 여성 소설가에 의해 쓰여진다"면서 "그러나 한국 언론과 문학계에서는 나이든 남성 작가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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