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신약 개발에는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단순한 연구개발(R&D) 성과만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기술력과 임상 데이터는 기본이고, 이를 기반으로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도 이제는 바이오텍이 단순한 연구소가 아니라 철저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14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진행한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바이오텍이 경쟁력을 입증하려면 기본적인 임상 파이프라인의 값어치를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며 “R&D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출시했을 때 시장성이 떨어지거나 경쟁사 대비 차별화되지 못하면 투자를 받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바이오 외길' 전문성 갖춘 헬스케어 전문 VC
김 대표는 국내 1세대 바이오·헬스케어 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다. 그는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미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수과정을 거쳐 1997년 LG화학기술연구원 생활건강연구소에 입사했다. 2000년 TG벤처(현 큐캐피탈파트너스) 심사역으로 합류하면서 투자 업계에 발을 디뎠고, 이후 한솔창업투자·인터베스트 등을 거쳐 2016년 LS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김 대표의 강점은 연구자 출신의 1세대 벤처캐피털리스트라는 것이다. 지금과 비교해 박사 과정을 이수한 바이오투자자가 많지 않았던 시절, 그는 드물게 박사 학위를 가진 심사역이었다. 바이오 기업이 기술 개발부터 임상, 인허가, 상업화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가 설립한 LSK인베스트먼트 또한 심사역들을 모두 바이오·헬스케어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해 이 같은 강점을 극대화했다.
김 대표는 “투자 대상 기업의 임상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적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 LSK인베스트먼트의 차별점”이라며 “투자 결정에서 기술적 요소가 전부는 아니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투자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다소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최근 바이오 업계의 투자 혹한기가 지속될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상장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임상1상만 넘어가도 펀딩이 수월했던 과거와 달리 보수적 투자기조가 이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임상 파이프라인에 대한 밸류에이션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R&D만큼 중요한 '신약 시장성'
김 대표는 R&D 역량만큼 신약의 시장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기술 개발을 잘 해도 이미 앞서나간 경쟁사들이 많거나, 시장에 내놓았을 때 경쟁사 대비 수요가 떨어지면 큰 의미가 없다”며 “다른 곳들보다 앞서든, 기술 자체의 희소성이 높든, 경쟁우위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는 전 세계 시장이 하나의 시장이기 때문에 국내 바이오텍들도 결국 해외에 있는 바이오텍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그들이 갖지 못한 경쟁우위 요소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LSK인베스트먼트의 운용자산(AUM)은 약 2300억원이다. 2020년 1000억원을 돌파한 뒤 2022년에만 ‘엘에스케이 헬스케어 4호 펀드’ 와 ‘엘에스케이 헬스케어 5호 펀드’를 결성하면서 2000억원을 넘어섰다. 아울러 지난해에는 투자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방사성의약품(RPT) 전문기업 셀비온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멀티플 6배의 성과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바이오와 헬스케어 분야 투자에 집중할 것”이라며 "투자를 판단하는 요소는 파이프라인의 시장경쟁력"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얼리스테이지인 바이오텍 위주로 투자했지만, 이제는 레이트스테이지까지 투자 영역을 조금 더 넓히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바이오 산업과 투자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당부했다. 김 대표는 “바이오 기업은 대부분 학교나 연구소, 혹은 다른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는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창업한다”며 “정부 차원의 R&D, 창업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사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