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돌아왔다... '시궁창' 강물에서 일어난 반전
기후위기로 드러나는 온갖 환경문제와 불평등 문제, 그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을 기록합니다. 기후위기가 왜 나의 문제인지 공감대를 만들고, 우리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기 위해 생태공동체로서 공존하는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기자말>
[안미선 기자]
▲ 지난 8월 26일 팔현습지를 안내하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무처장 |
ⓒ 안미선 |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다리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고무장화를 신고, 카메라를 멘 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금호강과 산을 가리키며 그동안 목격한 야생동물들을 일러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가 사는 곳, 수달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여러 갈래로 자란 커다란 왕버들이 줄지어 섰다. 나무에 딱따구리들이 사는 구멍도 보였고 말조개의 껍데기가 풀숲에 놓여 있었다.
금호강에서 본 웃음 자국
비에 불어난 물은 갈대 더미를 실어 왔고, 물이 범람하고 떠난 자리엔 환삼덩굴이 우거졌다. 흐르는 물에 수초가 보이고 우렁이들도 작은 바위에 붙어 있었다. 흰목물떼새가 떠다니는 아래쪽으로 두 마리 잉어가 지나갔다. 잠시 파인 그 자리는 강이 웃으며 지어 보인 자국 같았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강 문화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산업화로 강이 오염되니까 강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대구는 산업화를 겪으면서 섬유공장이 굉장히 많이 생겼어요. 상류에 영천댐이 생겼고 산업화로 오염물질이 들어와서 금호강은 그 피해를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악취가 나서 접근을 못 할 정도였고 시궁창 수준이었어요."
금호강은 바람에 비파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맑은 강이라는 뜻이다. 영천댐이 포항제철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0년에 완공되자 금호강으로 오는 수량이 줄었다. 도시화가 되면서 생활하수, 축산농가 폐수, 염색공단 오염수로 강의 수질은 악화되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으로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페놀이 두 차례 낙동강으로 유입되어 상수원이 오염되었다.
▲ 대구시 금호강 팔현습지 |
ⓒ 안미선 |
공사를 예고하는 노란 깃발이 나무 옆에 꽂혀 있었다. 팔현습지는 생태자연도 1등급지가 포함돼 있고, 많은 면적이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생태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데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이 핵심구간을 가로지르는 보도교 탐방로를 건설하려고 한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2021년)를 실시했는데, 법정보호종 야생생물의 종수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수근 사무처장은 말했다. "새로 탐방로를 만든다고 하는데, 자전거로 겨우 1분, 걸어서 5분의 시간을 단축하려고 수백억 원을 들여 새 탐방로를 짓겠다는 겁니다. 습지 뒤쪽의 수성패밀리파크와 아래쪽의 동촌유원지를 잇겠다는 건데, 그건 지금 있는 산책길이나 자전거도로, 다리로도 충분합니다." (관련기사: 몇 분 단축에 혈세 170억 원을? 대구서 벌어지는 일 https://omn.kr/288ky)
산과 물 사이를 가르는 탐방로가 설치되면 야생동물의 이동통로와 서식지가 심각하게 파괴된다. 왕버들숲도 사라지고 산과 강의 생태계가 교란된다. 또한 대구시는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면서 교량을 건설하는 등 일대를 관광단지로 조성하려고 한다.
"이전에는 강 밖에서 강을 봤다면, 요즘은 강 (안)을 많이 걸어요. 우리나라 하천은 깊지 않거든요. 강 안에서 강을 바라보면 강을 알게 됩니다. 금호강을 보면 어렸을 때 본 강을 되찾고 고향에 온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논밭이 사라지면서 바뀌었지만, 강은 옛 모습으로 회복이 되어 고향을 되찾은 기분이 들죠. 그래서 더욱더 강을 지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 28일 팔현습지를 국가습지로 등재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 3997명의 서명부가 대구시에 전달되었다. 금호강은 강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강을 떠났을 때 강이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되살아난 강은 기억을 연결해 주었다. 강촌 주변 동네 사람들도 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강이 아직 살아 있고 그 사실을 몸소 보고 느꼈으니 지키고 싶어 한다고.
"팔현습지 보존 운동을 하면서 주민과 함께 하는 운동을 회복했습니다. 주민과 만나고 습지 탐방 행사를 하고, 서명운동도 하고, 함께 산책하면서 활동 속에 교감했습니다. 사실 산업화를 겪으면서 저도 금호강을 떠났어요. 금호강이 워낙 오염되어서 다시 갈 생각을 못 했던 거죠. 저뿐 아니라 금호강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정서를 겪었을 거예요. 우리에게는 살아난 이 강이 정말 소중합니다. 금호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26일 인터뷰하는 정수근 사무처장 |
ⓒ 안미선 |
"4대강 사업 후 강은 강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강이라 이름 붙었는데 보로 막았으니까 강이 아닌 공간이 됐거든요. 옛날 강의 모습과 지금 강의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낙동강에 8개의 대형 댐(보)이 들어와 부작용으로 녹조 현상이 굉장히 심해요. 수심이 깊어서 야생동물도 못 삽니다. 생물종들 입장에서는 4대강 사업은 심한 테러행위죠. 왜곡된 강의 구조를 바꿔서, 녹조도 사라지게 하고 야생동물 서식처로 회복시켜 주고 싶습니다."
하천 땅은 개발의 표적이었다. 파크골프장 붐이 일었고 주차장과 체육공원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천은 국가부지라 돈이 들지 않는다는 인식은 곧 손쉬운 개발로 이어졌고, 그게 하나의 모델처럼 되었다. 대구시는 지난 7월 2일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디아크 문화관광 활성화 사업' 기공식을 열었지만 '금호강 하천점용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시공사와 계약하고 기공식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하천 개발의 표준이 된 모델의 시발점은 한강 개발에 있고, 그 모델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를 설치하고 수심을 깊게 하고 제방을 쌓고 관광지로 만든 한강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강의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그런 하천의 이용 방식이 전국의 강에 적용되었다. 4대강 사업은 사람들이 강을 떠나고 잊은 자리에서 쉽게 진행됐다. 강에 보를 세우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어 인간이 이용하게 만들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선전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리기 위해 활동했다. 4대강 사업은 22조 원이 투입되어 강에 보를 설치하고 대규모의 모래를 준설했으며 댐과 제방을 축조하고 자전거 도로를 건설했다. 그 결과 국민의 식수인 강에서 녹조가 창궐하고 마이크로시스틴 독성이 검출되었다. 물고기와 동물들은 떼죽음을 당했고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수질과 생태계 개선이라는 원래 명목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실행되는 동안 이를 막기 위해 낙동강을 숱하게 다녔다. 하지만 결국 2012년에 사업이 완공되었을 때 그에게 심한 좌절감과 우울감이 왔다.
"정부에서 밀어붙여서 강을 막아버리면서, 강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아무리 우리가 해봐야 국가가 밀어붙이면 강이 파괴되는데, 강의 죽음을 목격하는 자체가 되게 힘들었죠. 그런데 녹조 현상이 시작되는 걸 보고 강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일어났죠. 그때부터 계속 강을 다니면서 상황을 다시 알리고 활동하게 됐죠.
강의 원래 모습을 확인하고 강이란 지금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낙동강의 녹조가 심한데도 인식이 잘 안 바뀌어요. 강이 오염되면 식수가 오염되니, 인간을 위해서라도 녹조와 유기물로 썩어가는 건강하지 못한 강을 회복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보를 개방하자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옵니다. 금강과 영산강 같은 경우 수문이 열린 적이 있지만, 낙동강의 경우는 경상도의 보수적인 정치지형 속에서 수문 개방의 시도를 거의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물은 흘러야 합니다."
▲ 팔현습지를 안내하는 정수근 사무처장 |
ⓒ 안미선 |
"청도 삼평리 주민들과 함께한 '탈송전탑' 투쟁을 했어요. 주민들이 직접 도움을 요청했어요. 핵발전소의 전기를 실어 나르기 위한 송전선로가 밀양과 청도를 거쳐 도심으로 가는데 주민들이 생존투쟁을 위해 반대 운동을 했지요. 환경운동이 별다른 게 아닙니다. 그들이 피해를 입고 도움을 청할 때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함께하는 과정입니다.
구미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산업 문제도 그 지역 사람들이 요청해서 찾아가 연대했습니다. 저는 환경운동은 현장성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가게 되면 그 특징을 알게 되고 관계를 맺게 되잖아요. 객체가 아닌 주체로 관계를 맺게 되니까 못 본 척할 수 없게 되고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남을 통해 사람이든 자연이든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운동을 이어 나가는 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8월 28일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와 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작년에 탱크 모터 교체 작업을 하다가 노동자가 비소 중독으로 죽고 세 명이 다쳤다. 또 냉각탑 청소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죽고, 지난 8월에는 하청노동자 한 명이 열사병으로 죽었다. 안동환경운동연합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 각종 산업재해로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총 15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인간의 권리와 강의 권리는 이어져 있다. 인간을 짓밟는 사회가 강물을 더럽히고, 강을 추방하는 사회가 사람들의 기본권도 저버리는 것이다. 죽거나 다치고 쫓겨날 위기에 놓인 이들과 환경을 함께 지켜내야 모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개발 논리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이익만을 염두에 둡니다. 다리를 만들고 공원을 만드는 건 인간이 편리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죠. 하지만 자연에 가보면, 그 사람들이 눈으로 못 보는 세상이 있어요. 그곳은 무수한 생물들이 사는 공간입니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에게 인식 시켜주고 싶은 거예요. 그 자리가 무수한 생명들이 사는 공간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될 때, 정책이 바뀔 수 있습니다. 장소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고 개발을 최소한으로 하고 생명체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는 환경운동은 보존 운동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변하게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 활동을 알리기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한다. "일기를 쓰듯" 기록하면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문제와 지역 환경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렸다. 그는 자연에서 본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의 일몰, 새벽 강물 속에서 눈을 마주친 수달, 멸종 위기에 놓인 새들의 소리, 날마다 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빛...
"이 활동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함께 공감을 나누면서 위로도 받았습니다. 저도 많이 성장했고 자연을 접하면서 힘도 많이 얻었습니다. 젊은 분들에게 이 활동을 많이 권하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가 일상 속에서 산과 강을 평소에 많이 찾으면서 자연과의 접점을 늘려 교감을 찾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연이 어떤 힘과 에너지를 불어넣는 본질적인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라드 맨리 홉킨스(영국의 시인)의 '신의 장엄'이라는 시에서 '신은 따뜻한 가슴과 찬란한 날개로 굽은 세상을 품에 안고 있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곳에서 저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두 팔을 양쪽으로 활짝 폈다. 강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이 다시 강의 삶을 찾게 해줄 사람들이 되려고 이곳에 모이고 있었다. 이 강이 다시 살아나 사람들 곁에 흐르고 있으니 사람들도 몫을 다해 이 강을 지켜낸다면, 죽어가는 모든 강들의 희망이 될 것이다. 강은 기필코 되살아날 수 있다고, 다 함께 흐를 수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필자 소개] 안미선: <다정한 연결>,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저자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참고자료 <달구벌 유사> 김영현 지음, 영남대학교출판부, 2020년. <녹조라떼 드실래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지음, 주목, 2016 <월간팔현> 2024년 8월, 팔현습지를 지키는 예술행동 환경단체 “금호강 ‘팔현습지’ 국가습지로 지정해야” <경향신문>2024.8.28. “야생동물의 집, 산책로 공사 앞둔 팔현습지 살려주세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정 구역에 ‘금호강 산책로 조성사업’ 예고 <한겨레> 2023.8.31.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 구속…중대재해법 두번째 사례 <연합뉴스> 2024.8.29. ‘사망사고 3건’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 구속… 중대재해법 위반 영장 발부 두 번째 <한국일보> 202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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