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사태, 선관위가 단독으로 욕먹는 이유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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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20세기만 해도 선거에 관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면, 선관위가 아니라 행정부가 욕을 먹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대선 3개월 전인 1992년 9월 18일에 민주자유당(민자당) 탈당 선언을 하고, 김영삼 대통령이 대선 1개월 1일 전인 1997년 11월 7일에 신한국당 탈당 선언을 한 데는 그런 시대 분위기도 한몫했다. 선거 불공정은 행정부 책임이라는 인식이 지배했던 시절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선관위가 단독으로 욕을 먹는 일이 많다. 일례로, 인터넷·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손수제작물(UCC)을 통한 유권자의 의사표시가 제약됐던 2010년 지방선거 때는 비판의 초점이 선관위에 집중됐다. 이듬해 6월 1일 발행된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2000-2010 선거 시기 유권자 수난사'는 2010년 선거관리의 문제점을 결론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선관위는 선거법상 유권자는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누구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다가 처벌받은 예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사이트를 옮겨가며 반복해서 표현했을 경우에는 단순한 의사표시도 조직적·계획적 선거운동으로 보아 처벌하고 있다."
그 이전 같았으면, 위 인용문의 첫 글자는 "선관위는"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은"이 됐을 것이다. 위 리포트는 결론의 마지막 문장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아닌 선관위를 거명한다.
"과거 권위주의정부 시절 관권·금권 선거를 막기 위해 마련되어 현재의 달라진 선거문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법의 개정도 시급한 문제임은 물론이거니와, 선관위·검경 등 단속기관의 규제 일변도의 법 적용과 유권자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해야 할 법원마저 법조문에만 매달린 판결을 내리는 관행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선관위가 단독으로 질타를 받는 사례는 이 외에도 많다. <공법학연구> 2012년 제13권 제3호에 실린 김태홍 동의과학대 교수의 논문 '헌법상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과 구성상의 문제점'에 이런 대목이 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특히 2010년 지방선거, 2011년의 각종 보궐선거, 서울시 주민투표 및 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서 보여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는 20년간 성공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헌정 경험이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0년 이후의 특징은 선거법 위반의 건수는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법과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 시비를 둘러싼 논란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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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지방선거에서 서울 송파구 등 일부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 열린 '선관위 해체, 재선거 실시'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 ⓒ 권우성 |
선관위는 검찰·법원보다 훨씬 일찍 '시녀 생활'을 청산했다. 검찰·법원은 6월항쟁을 계기로 그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한 데 비해, 선관위는 3·15부정선거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경험한 뒤부터 독립노선을 걸었다. 중앙선거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헌법에 등장한 것도 3·15부정선거 3개월 뒤인 1960년 6월 15일이다.
1952년 및 1954년 헌법의 제53조 제3항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거에 관한 개표 보고는 특별시와 도의 선거위원회가 입후보자의 득표수를 명기하여 봉함한 후 참의원의장에게 송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의 선거위원회는 내무부 산하였다. 그랬던 기구가 1960년에는 중앙선거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헌법의 한 파트를 차지했다. 이는 선관위를 정부와 떼어놓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민적 의지의 산물이었다. 1960년에 헌법기관으로 격상된 중앙선거위원회는 1963년 헌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완벽한 의미의 선관위 독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960년 이후로는 국민과 정치세력들의 감시로 인해 선관위 차원의 부정선거가 종전처럼 쉽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 후로는 집권당의 부정선거가 선관위보다는 각급 행정관청에 좀 더 의존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1960년 이후로 한국인들은 선관위에 힘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다. 다른 국가기관들이 선관위를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는 선관위의 독립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선관위의 비대화를 조장하는 원인이 됐다. 위 논문에 따르면, 1963년에 348명이었던 선관위 직원은 1994년에 1872명, 2012년에 2677명이 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숫자는 3034명으로 늘어났다.
2012년에 발표된 위 논문은 "현재의 선거관리위원회 조직 규모는 발전된 민주주의국가에 비하여 상당히 큰 편"이라면서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다 보니 많은 예산과 권한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보다 권력적·규제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뿐 아니라 그 이상의 부조리도 양산할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 위에 언급된 2010년 지방선거 사례는 선관위가 행정부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유권자를 억압할 소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2004년의 노무현 탄핵 사태는 중앙선관위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지적한 데도 기인한다. 이는 이 기구가 충분한 근거도 없이 정권의 명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금의 선관위는 이승만 때의 내무부 선거위원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정권과 무관하게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선관위에 대한 견제 시스템은 3·15 부정선거의 악몽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를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키고 힘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던 1960년의 패러다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선관위 견제를 위해 감사원 감사 등을 허용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정권보다 선관위가 일차적으로 욕을 먹는 것은 선관위가 정권으로부터 독립돼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굳이 독재자가 출현하지 않더라도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에 의해 얼마든지 침해될 수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부실한 체질을 반영한다. 검찰·법원을 개혁하듯 선관위도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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