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무 호수 조립까지 로봇이?! 현대차그룹이 꿈꾸는 미래 공장을 가다 [르포]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E-FOREST TECH DAY(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4'를 개최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장을 뜻하는 SDF(Software Defined Factory) 준비를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고, 곧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리다. 벌써 올해로 5회차다.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그리고 있는 미래형 공장에 대한 청사진을 현대차∙기아 의왕연구소에서 미리 만나보고 왔다.
이포레스트? SDF가 뭔데?
현대차·기아 E-FOREST센터 이재민 상무가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현대차그룹은 이포레스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 글자인 'E'는 효율적(Efficient)이고 경제적(Economical)으로 모빌리티 산업 환경(Environment) 진보, 그리고 소비자 및 파트너사에 최고의 만족(Excellence)을 담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로봇 기술, DX(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ICT(정보통신기술) 등의 요소와 가치를 연결해 모두(Everyone)를 위한 혁신을 이루겠다는 뜻까지 담았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현대차그룹이 준비중인 스마트 공장 브랜드가 '이포레스트'다. 공장 자체를 브랜드화 하겠다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공장'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위험하고 공해를 만드는 인식이 있는 만큼, 이러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명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SDF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차세대 똑똑한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인 SDV를 예로 들어보자. SDV는 중앙 컴퓨터를 중심으로 자동차의 거의 모든 부품이 서로 통신할 수 있다. 각 부품들을 제어하는 소프트웨어가 바뀌면 자동차의 성격이 바뀌는 방식이다.

공장도 똑같다. 지금까지 자동차 공장의 로봇들은 입력된 움직임만 반복했다.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기위해서는 설비와 로봇들이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공장 정체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나로 묶여 있다면? 프로그램 설정만으로 모든 로봇들이 이 차를 만들고 저 차를 만들고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각 부품을 만들고 물류 이동을 하는 과정까지 정교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 현대 기아차는 이렇게 강조한다. "제조 지능이 기업의 성장과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SDF로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건데?
차량 하부에 실제 주행환경과 같은 진동을 가하고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이상 소음 발생 여부를 검사하는 모습

공장이 SDF로 바뀌면 이렇게 저렇게 좋아진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지금도 자동차 잘 만들고 있는 공장을 굳이 복잡하고 힘들게 뜯어고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기아차는 크게 4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생산에 필요한 준비기간과 생산속도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DT) 가상환경 속에서 자동차를 개발하고, 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의 최적화된 설계까지 미리 검증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둔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계획을 수립해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신차를 만들어낼 준비를 할 수 있다.

두번째로는 설비 투자비 절감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만약 하나의 로봇이 경차부터 대형 SUV까지 전부다 조립할 수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큰 돈을 아낄 수 있다.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통해 신차를 만들 때마다 설비 투자비를 아낄 수 있으면 자동차 가격도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 장점은 소비자 대응 부분이다. 만약 신차에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1, 2, 3, 4의 과정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던 방식을 4, 3, 2, 1로 변경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변화를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과 수고가 필요했다. 하지만 SDF로 변경되면 이러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기능 개선과 추가도 그만큼 쉬워진다.

마지막 네번째 장점은 제조 품질과 성능이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오류를 최소화 시킬 수 있고, 그만큼 품질이 일정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사람보다 기계가 자동차를 조립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동차를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이번에 어떤 기술이 공개됐는데?
무한다축 기술을 활용해 하나의 부품 고정장치로 차량 외판을 조립하는 모습

새로운 제조 기술만 200여건이나 됐다. 이를 위해 4개의 테마관을 만들어 기술력을 과시했다. 단순히 현대 기아 뿐 아니라 현대모비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현대오토에버, 현대글로비스, 현대트랜시스 등 6개의 그룹사까지 참여했을 정도다.

가장 먼저 본 기술은 '무한 다축 홀딩 픽스처(고정장치) 기술'이다. 이름이 조금 어려운데, 쉽게 말해 각각의 부품을 조립할 때 이 부품을 잡아주는 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까지 도어, 후드, 휠 등 각각의 부품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각 부품 전용 고정장치가 필요했다. 이것을 하나의 기계가 각 부품에 맞춰 '변신'하고, 알맞게 잡아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한눈에 봐도 비용절감이 크게 가능한 장치다. 여러 개의 기개가 필요했던 것을 하나로 충분히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각각의 부품 정보만 입력하면 바로바로 고정장치가 바뀌니 유연한 생산도 가능하다.
SPOT 인더스트리 와이드 솔루션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개 'SPOT(스팟)'도 볼 수 있었다. 로봇 개가 공장에서 어떤 일을 할까? 바로 자동차 조립 품질 검수도 할 수 있고 공장 환경의 안전점검도 가능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이외에 자동차가 아닌 철강 산업이나 농업 부분에서도 로봇 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건을 적재한 물류로봇(우측)이 주변에 위치한 다른 로봇을 인식하고 이동하는 모습
차세대 물류로봇도 볼 수 있었다. 로봇청소기를 거대하게 확대시킨 것 같은 로봇이 커다란 짐을 싣고 자유롭게 움직었다. 지금까지 물류로봇은 정해진 구간만 이동할 수 있었던 반면 이번에는 스스로 길을 찾는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됐다. 여기에 물건 방향은 고정시킨 상태로 로봇이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공간이 제한적이어도 자유롭게 물건을 옮길 수 있다. 이 소프트웨어도 직접 개발했다고.
AI 비전 알고리즘 판단을 통해 로봇이 호스 부품의 형체를 인식하고 들어올려 엔진에 조립하는 모습
'비정형 부품 조립 자동화 기술'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다. 이름이 어려운데, 한마디로 호스나 와이어와 같은 형태가 딱 고정되지 않은 부품을 로봇들이 자동으로 조립해주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부품들은 사람이 조립했지만 앞으로 로봇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더 고른 품질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장점이 따라온다.
UAM 날개-동체 자동정렬 시스템
'UAM 동체, 날개 자동 정렬 시스템'은 기계가 얼마나 정밀하게 계측하고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 기아에 따르면 비행체 특성상 자동차 대비 10~100배 이상의 조립 정밀도가 필요하다. 고중량의 UAM 동체와 날개를 1㎛(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자동 정렬해가며 정밀하게 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3~5일 소요되는 과정을 단 몇 시간 작업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로봇과 비전 기술을 활용해 차량 도어 판넬의 표면 불량 여부를 검출하는 모습
이외에 공장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는 물론 물류까지 동기화 시켜주는 디지털 트윈, 자동차 외관의 품질을 자동으로 해주는 기술, 알루미늄 외판을 사람 대신 로봇이 자동으로 샌딩 해주는 시스템, AI 알고리즘으로 바람이나 소음 부분의 문제를 잡아내는 기술, 다양한 도로를 실험실에서 구현시킨 기술 등 나열하기 어려운 신기술들을 볼 수 있었다.
딥러닝 3D 비전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가 전기차 PE 모듈의 커넥터를 촬영해 조립 방향과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

차체 설계 부분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테슬라의 기가캐스팅을 연상시키는 '하이퍼캐스팅' 기술이 전시됐다. 기존 50개의 부품을 하나로 통합해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테슬라와 달리 수리 용이성까지 고려한 설계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것을 넘어서 차체 하부 전체를 하나의 부품으로 찍어내 완성시키는 기술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카본 패널은 물론 카본 섀시까지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카본 경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포를 최소화하는 기술까지 더해 완성도를 높였고, 3D 프린터 기술을 통해 카본 금형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이 자리에서 카본 콕핏 터브(Carbon Fiber Cockpit Tub)까지 볼 수 있었다. '고성능 수소 전기차용'이라고 부착된 글을 봤을 때 현대 N 비전 74 양산형 모델이 카본 차체를 쓸 확률도 높아 보인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계획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속단할 수는 없다.

이포레스트 : 소프트웨어와 로봇, AI로 움직이는 유연한 공장의 미래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행사장에 전시된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AAM 기체 'S-A2'의 13 축소 모형

이포레스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프트웨어와 로봇, AI로 움직이는 미래형 공장이다. 다양한 신차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추고 더 정교하게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줄었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성도 좋아질 것이고 로봇들을 100% 활용해 제작 단가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가 바뀌고 여기에 맞춰 공장도 바뀌고 있다. 공통적으로 지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더 좋은 차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을 것이고, 회사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래형 공장에는 한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사람'이다. 수많은 작업들을 사람대신 로봇이 대체하게 되면 그만큼 작업 기술자들이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된다. 물론 로봇과 소프트웨어를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수가 지금보다는 적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꿔야 한다. 자동차, 테크, 반도체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발전만이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는 것을 현대차그룹은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위치와 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