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도 스태프도 없다...헬로우, AI 감독님! [스페셜리포트]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5. 12. 1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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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동구의 한 스튜디오 속 병실로 꾸민 단출한 세트장. 조명은 환히 켜져 있지만 배우는 없다. 자리를 대신 채운 건 덩그러니 앉아 있는 마네킹 하나. 무표정한 마네킹을 찍는 촬영장은 적막하기만 하다. 촬영용 카메라도, 배우의 대사도, 감독의 “큐!” 사인도 없다.

세트장 촬영은 5분도 채 안 걸려 마무리된다. 마네킹 손끝 각도와 눈높이 정도를 기록하면 끝이다. 대신 옆방에 있는 모니터에 한 줄의 프롬프트(명령어)가 입력된다. ‘슬픔이 느껴지는 눈빛, 손끝이 떨리는 여성 주인공 컷, 35㎜ 렌즈 질감.’

몇 초나 지났을까. 가만히 앉아 침묵만 지키던 마네킹 배우는, 모니터 속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는 여배우로 진화한다. 눈빛은 촉촉하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린다. 인공지능(AI)이 마네킹 의상과 포즈를 학습한 후 입력된 감정과 표정을 합성한 결과다.

이제 AI가 메가폰을 잡는 시대다. AI에 입력한 프롬프트 한 줄이 연출의 언어가 되고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이 촬영 대신 장면을 완성한다. 감독과 배우, 작가와 스태프가 필수였던 영상 제작 패러다임이 요즘은 AI와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AI 도구만 있으면 블록버스터급 영상도 1인 제작이 가능해졌다. 시간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만큼, 콘텐츠 기업은 요즘 너도나도 AI 스터디에 빠져 있다. 글로벌 AI 영상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37억달러였던 시장 규모는 2030년 422억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한국 콘텐츠 업계에도 AI 실험이 이어진다.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광고 등 장르를 불문하고 AI 기술을 내세우는 기업이 늘어나는 중이다. 음악·더빙 같은 기술도 함께 발달하면서 A부터 Z까지 AI가 만들어낸 콘텐츠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AI가 주도하는 영상 혁명, 그 최전선을 들여다본다.

AI가 콘텐츠 시장에 일으킨 변화

비용 절감 그 이상…패러다임 시프트

AI가 콘텐츠 업계에 가장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역시 ‘효율’이다. 비슷한 영상을 만들더라도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들게 됐다.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필요했던 대규모 CG와 특수시각효과 작업이 프롬프트 한 줄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이 만든 AI 영화 ‘중간계’에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크리처 18종을 전부 AI로 합성해 만들어냈다. 해외 로케이션 비용이나 적합한 촬영지를 찾기까지 시간과 수고도 줄어든다.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는 한여름에 눈 내리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대신 버추얼 프로덕션(가상세트·VP)을 적용, 이질감 없는 설원 풍경을 완성했다. AI 콘텐츠 스타트업 비글루 관계자는 “CG 작업 기간을 기존 대비 약 10배 이상 단축시켜 2주로 줄이고 비용은 90% 아낄 수 있다”고 했다. AI 영상 제작 스튜디오 스튜디오프리윌루전 관계자 역시 “제작 기간 6개월을 6주로, 50명으로 구성하던 제작 팀을 8명으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영향력은 단순 비용 절감, 그 이상이다. AI가 제작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기획 → 촬영 → 편집 → 후반작업 등 순차공정이던 기존 제작 단계에 변화가 찾아왔다. 현재는 AI 프리비주얼링(사전 시각화)-가상세트(VP)-자동합성-실시간 보정-생성형 후반이 이제는 순서 상관없이 ‘병렬 구조’로 짜인다. 기획과 동시에 촬영과 편집이 들어가고 실시간으로 후반작업이 이뤄지는 식이다.

기획 단계서부터 변화가 확연하다. AI 덕분에 이제 시나리오보다 콘티가 먼저 완성될 정도다. 과거에는 줄거리를 먼저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이를 그림으로 구체화한 콘티를 그렸다. AI 작가 탄생 이후엔 달라졌다. 작가가 키워드만 입력하면 대사·장면 구조·카메라 워크가 자동으로 제안되는 기술을 갖췄다.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은 텍스트 프롬프트로 전체 영상 콘셉트를 1분 내 생성, 사전제작(프리프로덕션) 기간을 2개월에서 2주로 단축했다. 한 영화 제작 PD는 “AI 도입 이후에는 기획 회의가 아니라 ‘AI 모델 학습’이 전체 제작 과정 중 첫 번째 단계가 됐다. 콘티 작성 시간도 과거와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까지 내려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감독 연출 고민도 AI가 덜어준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어떻게 영상화할지 AI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예수 일대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제작사인 모팩스튜디오는 언리얼엔진과 오픈소스 모델을 결합해 AI 프리비주얼링을 구축했다. 감독은 프롬프트만 입력·수정해도, 상상했던 장면을 미리 보거나 쉽게 바꿀 수 있게 됐다. 제작 효율은 5~6배 상승했다.

촬영 현장도 달라졌다.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세트를 짓는 대신 AI 가상 세트를 세운다. 녹색 스크린과 AI 배경 합성만으로 실제와 거의 차이 없는 촬영이 가능해졌다. 순수 AI로만 영상을 제작할 경우 아예 촬영 현장이 없다. 카메라와 배우도 필요 없다. 기존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카메라·배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실사와 구분이 어려운 수준까지 향상된 품질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예를 들어 비글루는 최근 공개한 드라마 속 드론샷과 카 액션 장면을 AI로 대체해냈는데 이질감이 없다는 호평을 받았다.

편집과 후반 보정 작업에도 AI가 효율을 끌어올린다. AI 영상 스타트업 큐브베리는 립싱크 엔진 ‘싱크업(SyncUP)’을 활용해 대사와 캐릭터 입 모양을 자동 매칭한다. 대사의 억양·호흡·감정을 수치화하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구현하는데, 실제 배우와 구별이 어려운 수준이다. 덕분에 더빙과 자막 편집 시간을 절반까지 아낄 수 있게 됐다.

음악이나 효과음 제작도 마찬가지다.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은 AI 폴리(Foley) 시스템으로 효과음을 자동 생성한다. 과거에는 발소리나 문 여는 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같은 효과음을 폴리 아티스트가 직접 녹음해왔다. 콘텐츠와 어울리는 OST도 이제는 AI가 자동으로 작곡해낸다.

AI가 필수 요소로 부상하다 보니 영상 제작에 필요한 인력도 달라졌다. 김지현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는 “이제 촬영감독 옆에는 AI 슈퍼바이저가, 편집실에는 데이터 큐레이터가 필요해진 세상”이라며 “AI는 시간과 장소 제약을 넘어 창작 스케일을 키우고 감정의 깊이를 확장하는 필수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모팩스튜디오는 각 영역에 세분화된 전문직 대신 ‘신(新)제너럴리스트’를 육성 중이다. AI 도구를 통합 운용하며 전체 서사를 판단하는 인력이다. “AI가 영상 제작 일자리를 줄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또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 공통된 전언이다.

비글루가 공개한 AI 숏드라마 ‘지옥에서 찾아온 나의 구원자’ AI 활용 이미지. 마네킹 촬영에 AI 작업을 더해 섬세한 표정 연기를 이끌어낸다. (비글루 제공)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7호 (2025.12.03~12.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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