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적 묘사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다, 한국 극사실주의 거장 이석주 작가
사실적 묘사를 통해 일상 세계를 화폭에 담고, 인간 존재의 내면을 탐구한다.
이석주 작가의 작품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든다.
빈 의자에 하얀 천이 흘러내리듯 걸쳐 있다. 갈기를 휘날리는 말과 함께 오래된 시계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 닿을 듯 사실적 작업으로 완성한 사유의 공간이 고독과 허무 등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석주’는 한국 극사실주의를 거론할 때 첫 번째로 언급되는 이름이다. 추상화 일색이던 1970년대, 손끝에 거친 질감이 느껴질 만큼 사실적인 벽돌 그림으로 한국 미술사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작가가 바로 그다. 그러나 이석주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하이퍼리얼리즘적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부대끼고, 시간과 존재라는 무형의 사유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극사실주의 화풍을 이끌며 일상성과 초현실성이 공존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이석주 작가. 12월 개인전을 앞둔 그에게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예술철학을 물었다.
이석주 작가는…
197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1981년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30년간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극사실주의적 작업을 시작해 1981년 제30회 국전에서 특선을, 1983년 아시아미술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한 한국 극사실주의 1세대 작가다.
지난해 11월 개인전을, 올해 6월 그룹전을 마쳤다. 근황이 궁금하다
12월부터 시작되는 개인전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바쁘게 작업하고 있다. 요즘은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극사실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당시 현대적 경향의 작업은 대부분 추상미술에 집중돼 있었다.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는 시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실과 미술을 분리해 보는 접근 방식이 내게는 와닿지 않았다. ‘당장 버스비가 없어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있는데, 왜 이런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미술에 반영될 수 없는가’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때부터 현실을 세밀하게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극사실주의에 대한 이해도는 어느 정도였나?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하이퍼리얼리즘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점차 극사실주의적 작업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처음부터 이런 작업 경향을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극사실주의가 주류가 아니다 보니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면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당시 국전의 서양화 분야가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뉘어 있기는 했지만, 관념적인 정물화나 인물화가 아니라 극사실적 묘사로 현실을 반영한 작품에 대한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나 역시 구상 부문이 아닌 비구상 부문에 출품해 수상했다. 극사실주의와 구상미술에 대한 당대 인식을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일화다.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은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과 비슷하지만 본질은 다른 것 같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는 하이퍼리얼리즘과 달리, 나는 사물의 외양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일상에 대한 자각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선구자인 선친 이해랑 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리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지가 연출한 연극 <죄와 벌>에 하숙집을 배경으로 바느질 등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 모습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리얼리즘이구나’ 느낀 적도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서사가 있는 작품을 하고자 하는 창작 욕구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던 듯하다.
영감을 받은 작가나 작품이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렘브란트, 카라바조, 쿠르베를 좋아했다. 특히 쿠르베는 현실 세계를 예술에 적극 반영한 작가다. 극적 명암을 통해 대상에 존재감을 부여하고, 작품 안에 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할 만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는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확신한 건 대학 졸업 무렵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나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그 매개체로 당시 내가 발견한 것이 바로 그림이다.
‘벽’으로 1981년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벽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1970년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면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였다. 신진 작가를 발굴해 소개하는 기회도 좀체 없었다. 당시 미술대학 졸업생으로서 느낀 막막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 줄 사물이 벽이라고 생각했다. 뚜렷한 명암 대비와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벽이라는 소재가 지닌 상징성과 당시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일상’ 연작에서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느껴진다
당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탐독했다. <아웃사이더>는 ‘문학과 같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들이 왜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답을 ‘아웃사이더’라는 키워드에서 찾는다. 그 시절에는 나 역시 아웃사이더라는 개념에 깊은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흘렀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학교 앞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을 담은 ‘3시 35분’이다. 특별한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그저 흘려 보내다 보면 내가 이 순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잊을 때가 있지 않나. ‘일상’ 연작 역시 그 순간, 나 스스로 존재를 자각해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19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내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거리 풍경을 담거나 현실을 화폭에 끌어오는 작품을 지속하면서 문득 인간 존재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삶은 유한하기에, 그 유한성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사물을 통해 존재, 시간, 내면에 대해 사유할 공간을 마련한 ‘사유적 공간’ 연작을 작업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
시간의 흔적과 존재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소재를 선택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시계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달리는 말과 낡은 책, 빈 의자 역시 시간의 경과와 존재에 관한 깊은 성찰을 의미한다.
낯선 이미지가 결합돼 있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나의 사물로는 현실을 반영하거나 내면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이미지를 한 화면에 조합하는 방식을 택하게 됐다. 낯선 이미지가 한 화면에서 결합되면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물 사이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다만 초현실주의가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나는 다양한 사물을 통해 현실과 인간 실존 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작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나?
프린트를 한 뒤 덧그리는 방식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한다. 먼저 본을 뜬 뒤 아크릴물감으로 에어브러시 작업을 한다. 아크릴물감이 마르면 그 위에 유화물감을 사용해 붓으로 그림을 다시 그린다. 에어브러시는 면과 면을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지만, 작품에 무게감을 더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화 작업은 작품에 깊이감과 풍미를 더하는 과정이다.
1970년대에는 에어브러시 작업자가 별로 없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다
에어브러시는 장비 자체가 상당히 예민해 작업하기에 까다로운 편이다. 당시에는 에어브러시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작업 방법을 혼자 터득해야 했다. 거금을 들여 구입한 장비를 한두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그래도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 보니 에어브러시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장비와 사용 방법이 익숙해질 때까지 실패를 거듭해 마침내 작업에 점차 속도가 붙었다.
1000호가 넘는 대작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세밀한 묘사가 필요하다 보니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소요될 것 같다
쉬운 장르가 어디 있겠냐마는, 작업 특성상 시간을 훨씬 많이 투자해야 한다. 교수로 재직할 때도 조교들이 내게 연락하는 것이 가장 쉽다고 했다. 시간이 나면 무조건 작업을 해야 하니 대부분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하는 만큼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크게 좌절하기도 한다. 몇 달 동안 작업에 매달렸는데 결과물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를 때는 ‘이제까지 뭘 했나’ 싶은 허탈한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캔버스 앞에 서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림만큼 현실과 내면의 세계를 담아내는 데 적합한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손으로 직접 캔버스에 색을 쌓아가며 입체감과 깊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작가의 정신과 영혼을 불어넣는 행위와 같다. 나에게 이런 아날로그식 회화 작업 과정은 가장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표현 방식이다.
작업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영화를 보거나 등산을 한다. 와인을 좋아해 작업실에서 혼자 마시기도 한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명상이나 기 운동을 한다.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작가로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없거나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갈등에 골몰해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태를 가장 경계한다. 그럴 때는 지금 내가 작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순수한 무아지경의 상태로 작업에 빠져들기 위해 노력한다. 명상과 기 운동은 정신적 괴로움과 욕망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12월부터 시작되는 개인전 <In Time Space: 인 타임 스페이스>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나?
이번 전시 역시 시간과 존재라는 키워드가 주제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존재가 아닌, 내면에 스며들어 사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이끄는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데 집중했다.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전시를 관람할 때 관객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까?
‘이 그림은 존재를 표현한 것이구나’, ‘이 그림은 시간을 표현한 것이구나’ 해석하기보다는 부담 없이 전시를 방문해 작품이 주는 감상을 있는 그대로, 차분하게 느끼면 좋겠다.
향후 작업 계획이 궁금하다
과거 그림을 보면 너무 움츠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는 에너지가 넘쳤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소극적으로 변하더라. 그런 내 모습이 싫다.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거나 구성에 변화를 주는 등 에너지를 발산하는 작업물을 통해 조금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이석주 개인전 <In Time Space: 인 타임 스페이스>
장소. 아트큐브 투알투
기간. 2024년 12월 5일~2025년 1월 10일(일요일, 월요일 정기 휴무)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563 1층
문의. 02-556-1880
ㅣ 덴 매거진 2024년 12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사진 김덕창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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