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장강명도 몰랐다…잠자는 교과서 저작권료 매년 수십억

이영근 2024. 9.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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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을 통해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장강명 작가. 저작권법에 따라 출판사 등은 사전 통보 없이 교과서에 글을 싣는 대신 사후적으로 이를 저작권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사진 폴인, 송승훈


장강명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이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말을 지난달 말 지인에게서 들었다.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를 통해 확인해보니, 단편소설 『알바생 자르기』 등 총 9건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수업 목적으로는 5번 활용되기도 했다. 지난 6일 장 소설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알고 보니 내가 교과서에 열 번 이상 글이 실린 저자였다. 정말 큰 영광”이라면서도 “자기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걸 저자가 이렇게 늦게 아는 상황이 이상하기는 하다. 저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관례는 부조리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법 25조에 따르면 교과서엔 공표된 저작물을 저자의 허락 없이 게재할 수 있다. 다만 출판사 등은 문화체육부 장관이 지정한 보상금수령단체를 통해서 사후적으로 저작권료를 보상해야 한다. 현재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문저협)가 보상 업무를 맡고 있다. 문저협이 출판사로부터 저작권료를 선(先) 징수하고 저작권자에게 후(後) 분배하는 구조다. 문저협이 연락을 하거나 저작권자가 직접 신청해야 보상금이 지급된다.

장은수 출판평론가가 자신의 글이 교과서에 수록됐다는 연락을 출판사로부터 받았다고 13일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장 평론가는 "돈은 두번째 문제고, 아이들이 내 글로 어떤 학습을 하는지 궁금한데 저자에게 사후적으로라도 잘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페이스북 캡처


문제는 보상은커녕 자신의 작품이 게재된 사실조차 모르는 작가가 적잖다는 점이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도 최근에서야 9건의 글이 교과서에 수록됐단 사실을 알았다. 그가 옮긴 그림동화 『고릴라』는 2010년 교과서에 실렸지만, 어디에서도 수록 사실을 전해 듣지 못했다고 한다. 장 평론가는 문제가 공론화된 최근에서야 한 출판사로부터 교과서 수록 사실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의지를 조금만 가지면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는 유명 작가도 수년째 연락을 못 받고 있다는데, 이는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강양구 지식큐레이터도 2013년부터 27건의 글이 교과서에 게재됐지만 통보를 받지 못했다. 강 큐레이터는 “교과서에 실린 글도 저작권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는 사회에서 저작권 존중 문화가 생길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사이 작가들에게 분배되지 못한 저작권료는 매년 문저협에 수십억씩 쌓이고 있다. 문저협이 공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징수액은 2023년 47억9195만원, 2022년 47억1105만원, 2021년 43억5477만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분배액은 27억2019만원(2023), 21억6985만원(2022), 21억8078만원(2021)으로 절반 남짓에 그쳤다. 이렇게 누적된 2023년 교과서 이월보상금은 153억2123만원에 달한다.

김영옥 기자


미(未)분배 보상금은 공고일로부터 5년이 지나면 문체부 승인 아래 창작자 권익 옹호 등 공익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2022년에는 ‘기후위기 대응 문학작품집 발간 및 북콘서트 사업’, ‘보상금 정산분배 투명성 제고 및 보상금 시스템 고도화’ 등 사업에 14억5450만원이 쓰였다. 이를 두고 “결국 협회가 관리하는 돈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보상금을 적극적으로 분배할 인센티브가 적다”(정연덕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3월 문체부는 미분배 보상금 125억원을 누적하는 등의 방만한 운영을 했다는 이유로 음반산업협회에 대해서 보상금 수령단체 지정을 취소한 적이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문저협 관계자는 “출판사, SNS 등을 통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상금 분배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개인 연락처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보상을 마쳐야 징수액의 15%가량을 수수료로 온전히 받아 협회 운영 자금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협회로서도 인센티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이 정한 기간은 5년이지만 실제로는 10년까지 저작권자에 연락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관련 홍보를 고도화하는 한편 저작권자를 위해서 미분배 보상금을 활용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성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저작권법 25조 10항은 미분배 보상금을 7가지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정작 권리자를 위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분배 보상금을 저작재산권자의 실업보조금이나 자녀장학금 또는 예술인복지법상 복지기금 출연(出捐)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근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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