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스민 바다, 안산 대부해솔길

조회 2812025. 2. 28.

밀물 땐 고요한 바다가, 썰물 땐 맑은 갯벌이, 오전엔 평화로운 해변이, 오후엔 황홀한 노을빛이, 때마다 다른 얼굴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대부해솔길. 오늘은 방금 세수한 듯 맑은 얼굴을 드러낸 갯벌을 걸으며 슬며시 찾아온 봄빛을 발견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안산의 올레길, 대부해솔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대부해솔길은 해안선을 따라 대부도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산책길이다. 방아머리 선착장을 시작으로 구봉도와 대부남동, 선감도, 탄도항을 거쳐 대송 단지까지, 대부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빠짐없이 즐길 수 있는 11개 코스로 이뤄져 있으며 총 길이는 91km다. 화려한 조명이나 편의시설 없이 자연친화적으로 조성되어 더욱 매력 있는 길. 소나무 숲길부터 염전길, 석양길, 바닷길, 갯벌길, 포도밭길, 시골길 등 다채로운 풍경을 품고 있다. 한 번에 모두 둘러보기 힘들기 때문에 취향이나 소요 시간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방아머리에서 돈지섬안길까지 이어지는 1코스와 방조제의 풍경이 펼쳐지는 2코스. 대부해솔길의 백미로 꼽히는 1코스는 너른 서해안 갯벌을 빼곡한 해솔 숲이 병풍처럼 둘러싼 모습이 멋진 구간이다. 중간중간 바닷길을 연결한 개미허리 다리와 낙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구봉도 낙조 전망대가 있어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다만 11.5km로 다소 긴 편인데, 1코스가 부담스럽다면 1-1 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대부도 관광안내소를 순환하는 코스로, 북망산까지는 1코스와 동일하지만 이후 도심으로 내려와 바다향기 테마파크를 둘러볼 수 있는 평탄한 코스다. 거리도 1코스의 절반인 6km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2코스는 24시 횟집에서 출발하여 바구리방조제, 새방죽방조제를 지나 작은잘푸리방조제에 도착하는 총 5km의 코스로 1~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거리가 길지 않지만 해안가 갯벌과 진달래 향기 둘레길이 어우러져 작은 산과 서해의 매력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다.
이외에도 낚시터와 선재대교를 지나는 3코스, 작은 섬과 유리섬 박물관 등 볼거리가 다양한 4코스, 선착장과 방조제, 염전 등을 구경할 수 있는 5코스, 창작센터와 수련원 등을 거치는 6코스, 둘레길과 수목원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6-1코스, 민속 박물관을 지난 6-2코스, 퇴적암층과 수목원을 지나 황금산을 오르는 7-1코스 등 매력적인 코스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대부해솔길의 백미, 구봉도
대부해솔길은 천혜의 자연 풍경을 품고 있지만, 도심에서 금세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접근성을 자랑한다. 단원구 산업단지를 빠져나와 시화방조제를 건너면 바로 대부해솔길의 시작이다. 방조제를 건너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데다, 방조제 중간에 해상공원인 시화나래조력공원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시화나래조력공원에는 식당과 카페, 전망대 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잠시 쉬어가거나 배를 채우기 좋다.
오늘의 코스는 1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 구봉도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해 낮은 봉우리인 구봉이를 오른 후 개미허리 아치교를 건너 낙조전망대를 찍고, 선돌바위와 종현농어촌체험마을로 내려와 원점 회귀하는 길이다. 대부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구봉도를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으며 대부해솔길의 주요 명소들을 품고 있어 이곳만 돌아도 대부해솔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구봉도는 아름다운 봉우리 아홉 개로 이뤄져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때 묻지 않은 숲속 산책로와 평화로운 해안 길, 화려한 침식 지형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이름처럼 본래 섬이었으나 염전이 조성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구봉도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에 나섰다. 구봉도의 대부해솔길은 주차장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입구에 이름이 크게 적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순식간에 자연의 품에 안기게 된다. 횟집과 펜션이 즐비한 거리에서 온통 향긋한 소나무로 뒤덮인 숲길로 옮겨온 것. 아직 한기가 가시지 않은 숲속이지만 새잎을 틔운 나뭇가지와 눈이 녹아 촉촉한 흙 내음이 봄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숲이 우거질수록 햇볕을 받지 못한 산속의 눈은 두텁게 쌓여있었다. 봄을 만나러 온 길에 당당히 진을 치고 있는 눈이 얄미웠다. 가파른 산은 아니지만, 경사를 만날 때마다 신발이 미끄러져 속도가 더뎠다. 바위 구간에는 채 녹지 못한 눈이 얼어붙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봄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너무 서둘렀나 싶은 후회가 들 때쯤 계단 아래 구봉이 약수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봉이 약수터는 음용이 가능한 약수터로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눈 덮인 산길을 올라오느라 바짝 탄 목을 축이기 위해 손 우물을 만들어 물을 받았다.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이상하게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경쾌함이 짜릿했다. 피로가 쌓인 탓인지, 아니면 정말 물맛이 좋아서인지 마치 생명수처럼 달콤하고 힘이 났다. 어느 정도 목을 축이고 나자 그제야 약수터 아래 드러난 서해 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말간 얼굴을 드러낸 자갈밭과 갯벌이 햇볕을 받아 쉼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약수터 위로 산길은 아직 남아있지만, 봄볕의 이끌림에 홀린 듯 바닷가로 내려갔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이토록 반가운, 봄
구봉도에서 만난 서해 바다는 이미 봄의 기운이 완연했다. 바다가 물러난 갯벌에는 바지락이 꿈틀대고, 진흙은 갓 뽑아낸 가래떡처럼 찰기를 머금고 있었다. 온 세상이 반짝이면서도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 지나온 눈 덮인 산길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비로소, 그토록 기다려온 봄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썰물 때에는 바닷길이 훤히 드러나 굳이 산길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봄볕이 스며들지 못한 산길을 뒤로하고 쉴 새 없이 빛나는 자갈밭으로 향했다. 왼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오른쪽에는 숨 쉬듯 부푸는 갯벌이 펼쳐졌다. 다듬어지지 않은 울퉁불퉁한 돌밭을 걷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봄 내음에 취해 한참을 걷다 보니 어디선가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듣다 보면 함께 웃음이 나는, 전염이 강한 웃음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 몇 분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지락을 발견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따스한 봄기운에 기분이 좋은 건 우리만이 아니었나 보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조금 더 걷자 말로만 듣던 개미허리 아치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야 땅 위에 다리가 있는 오묘한 풍경이지만, 밀물 때는 바다를 사이에 둔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다. 작은 두 섬과 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멀리서 보면 개미허리를 닮아있다 하여 개미허리 아치교라 불리게 됐다. 다리 위를 걸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다리에 오르는 계단이 있어 망설임 없이 올라섰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또 달랐다. 좌우 어디를 바라봐도 너른 갯벌과 서해 특유의 고요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 깊은 곳까지 차분하게 가라앉는 풍광이다. 개미허리 아치교는 그 자체로도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지만, 이곳이 품고 있는 풍경 또한 대부도 제일의 명소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다리 위에 한참을 서서 온몸으로 햇볕을 받아내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무채색의 바다는 볕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바로 봄빛이구나.

사진=월간 아웃도어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개미허리 아치교를 마저 건너면 약간의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 위에서 충분한 힐링을 즐긴 덕에 남은 산행이 힘들진 않다.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나무 데크길이 나타나면 곧, 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낙조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낙조전망대는 나무 데크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서해안의 아름다운 낙조와 대부도의 비경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에 독특한 조형물 하나가 우뚝 서있는데, 일몰과 노을빛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름하여 ‘석양을 가슴에 담다’. 화창한 아침이기에 금빛의 동그란 띠와 비스듬한 사선으로 뻗는 조형물 사이로 황홀한 석양을 상상해 본다. 세상의 모든 스위치를 내린 듯 그 흔한 파도마저 없는 바다는 한없이 평화롭다. 석양이 없이도 아름다운 대부도의 전경에 감동이 밀려온다. 다음엔 꼭 석양 때에 맞춰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아직 만조가 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반대편 해안 길로 돌아나가기로 했다. 개미허리다리 초입과 이어지는 이 해안 길은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져 정말 산책하듯, 편안하고 느리게 걸을 수 있다. 곳곳에 땅이 드러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내는 바다를 벗 삼아 해안 길을 천천히 걸어본다. 여전히 파도 소리조차 없는 바닷가는 한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바닥이 평평하니 길은 금세 마을에 닿는다. 이곳은 대부해솔길의 체험 명소로 잘 알려진 종현어촌체험마을이다. 아직 완전히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비교적 한산하지만, 따뜻한 봄이 오면 가족단위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갯벌 조개잡이부터 미꾸라지 잡기, 물놀이, 갯벌썰매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즐기기 좋아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다.
꿈에서 깨어나듯, 대부해솔길을 빠져나와 시내로 돌아오자 배가 출출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트레킹 명소답게 맛집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어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갯벌 근처가 으레 그렇듯, 구봉도 역시 바지락칼국수가 유명하다. 근처에 칼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유가네 칼국수의 본점이 있어 큰 고민 없이 들어갔다. 선택한 메뉴는 바지락칼국수와 해물파전. 푸짐한 양과 화려한 비주얼이 단숨에 눈길을 끈다. 맛도 훌륭하다. 바지락이 양껏 들어간 칼국수의 국물은 시원했고, 면발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본점의 위엄이 느껴졌다. 해물파전은 이름만 해물파전인 도심의 것과는 달리 새우, 조개, 오징어 등 각종 해산물이 가득해 서해의 향이 온전하게 전해졌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오니 해를 중천에 둔 구봉도는 더욱 따뜻해져 있었다. 껴입었던 바람막이를 벗어던지며 생각했다. 진짜 봄이 왔다.

사진=월간 아웃도어
이 콘텐츠가 마음에 드셨다면?
이런 콘텐츠는 어때요?

최근에 본 콘텐츠와 구독한
채널을 분석하여 관련있는
콘텐츠를 추천합니다.

더 많은 콘텐츠를 보려면?

채널탭에서 더 풍성하고 다양하게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