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앨범에 정부가 강제로 넣었던 곡... 지금은 이렇게 한다
[이동민]
해방 이후 등장한 건전가요는 1950년대부터 60년 때까지는 주로 관변단체 성격의 민간단체에 의해 국민개창운동이나 가정가요운동 등의 모습으로 전개되다가, 1970년대 들어서 정부 주도로 바뀌면서 문화공보부(문화체육관광부의 전신) 주관하에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국가노래운동 형태로 보급이 추진되었다.
1980년대 전두환 군부의 쿠데타로 출범한 제5공화국 정부는 새 음반에 건전가요 1곡씩을 반드시 수록하게 하는 '음반삽입의무제'라는 정책을 내놓았고, 1990년대까지 그 강제력은 지속되었다. 록그룹 부활 1집인 'Rock Will Never Die'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헤비메탈 앨범으로 평가받는 시나위 1집 앨범에도 마지막에 앨범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전가요가 수록되어 있는 이유다.
그 와중에 '사회정화'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1980년 11월 1일 발족한 국무총리 소속의 기구인 '사회정화위원회'는 민간의 레코드사들을 압박하여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의 건전가요 앨범을 기획·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하였다.
정부와 관 주도로 보급된 건전가요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된 노래 통제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표면적으로는 건전한 대중가요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실상은 개인의 주체성과 사회의 다양성을 '국가'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담론 안에 가두고 발현하지 못하게 하는 전체주의 국가관을 종용하는 사상적 길들이기였다. 정부기관과 공안당국의 강요로 나온 건전가요 운동과 맞물려 운용된 음원 사전 심의제도는 '금지곡'이라는 낙인을 찍어 세상과 만나는 것을 가로막았다.
20세기 대한민국의 지나간 국민적 추억(?) 정도로 치부하기엔, 21세기 지금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 2022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6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정윤희 |
▲ 이명박 정부가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예술검열부터 박근혜 정부의 그것까지, 미진한 진상조사를 위한 정부 자료 접근권과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운용 ▲ 국가문화정책 플랫폼이 아닌 국정 홍보부처로 전락해 버린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직 개혁 ▲반헌법 범죄인 표현의자유 침해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위한 법제도 등
이 중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가까이 간 듯 보였던 '예술인지위와권리보장법'도 애초 예술인들이 작성한 법 초안에 담겨있던 국가기관 및 공무원 처벌 조항은 일방적으로 삭제된 채 입법 처리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국민의 문화권과 지속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위한 시급한 의제들은 뒤로 하고 "후쿠시마원전 오염처리수는 안전합니다"라는 대국민 홍보영상 송출기관으로 변신하면서 1970년대 문화공보부의 면모를 충실히 재현하였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 아래 예술인들을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고,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하여 문화예술계를 탄압한 이명박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청와대 문화특보로 활약했던 유인촌을 다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범죄 실행 실무자였던 용호성(당시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을 제1차관으로 임명하였다.
"건전 문화세력에 대한 전폭적 자금지원 및 좌파 자금줄 차단", "기재부는 문화부 예산을 정밀 검토하여 좌파지원예산은 전액 삭감하고, 우파 지원사업에 대규모 예산 지원" 등 소제목만 얼핏 읽어봐도 2000년대에 작성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시대착오적인 이념 정책들로 가득한 것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다.
▲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에 대한 2014년 세종도서 심사총평 부분 |
ⓒ 박경미 의원실 |
이명박·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가범죄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유인촌, 용호성 등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차관의 자리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앞세워 최근 이슈화된 독립영화를 비롯해 다양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맺기하는 예술분야의 지원예산 삭제를 통해 창·제작 생태계 주체들의 목을 비틀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기시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2017년 9월 26일 광화문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외쳤던 목소리를 다시 소환해 낼 수밖에 없다.
이명박과 유인촌의 불법적인 문화예술계 공공기관 장악 및 공작 정치는, 박근혜와 김기춘, 조윤선, 김종덕 등의 블랙리스트 범죄로 이어졌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보란 듯이 유인촌, 용호성 등 이념기술자들을 복귀시켜 예술계를 편향적으로 줄세우기 시키고 그들만의 편향적 사고에 순응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기억의 정치다. 일제강점기 노래 통제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부독재의 건전가요정책,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문화균형화전략 및 블랙리스트 국가범죄까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부의 이념 정책, 공작 정치는 단계적으로 심화되고 확장되어 왔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좌파로 낙인찍고 지원배제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길목을 차단하려 했던 블랙리스트 국가범죄. 그럼에도 배제되고 입틀막 당한 수많은 봉준호, 한강 등은 동트는 새벽을 열어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오롯이 개인의 감당으로 견뎌내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문화국가 원리를 바로 세우는 것, 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것, 문화행정을 철저하게 개혁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예술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등 국가 체제의 수호나 이념 부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부합하는 예술과 예술인 양성과 지원"이라는 해괴망칙한 구호들이 나오는데, 국가가 주도하여 건전가요 운동을 전개할 당시의 모습과 참 닮아있다. 지금 우리는 역대급 역행을 마주하고 있다.
개인의 감성과 생각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주체적으로 발현하는 것이 예술이다. 그 개인들을 국가가 좌파, 우파로 분류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려 하는 것이 검열이고 표현의 자유 침탈 범죄이다. 더불어 국가 운영체제나 주의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이다.
따라서 민주공화국의 헌법 질서를 짓밟고 표현의 자유라는 들판을 빼앗고, 소리 내는 주권자의 목을 비트는 부정한 공권력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국가범죄로 인한 참사의 한가운데 서 있고,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동민은 독립기획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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