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김건희 비판하자 행정관료들이 벌인 일
[이동연]
▲ 2016년 10월 18일 문화예술인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 문화예술 긴급행동 및 기자회견에 참석해 예술검열 반대와 블랙리스트 사태를 규탄하고 있다. |
ⓒ 유성호 |
블랙리스트는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존재했고, 지금도 더 강렬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에도 블랙리스트 사건들이 버젓이 자행되고, 실제 사건화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잠재적, 비가시적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문화예술의 장에 내면화한다.
노골적이고 공공연한 검열이 가시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블랙리스트의 시대는 종결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블랙리스트는 언제나 이미 영원하고, 블랙리스트 작동 주체들은 다시 유령처럼 귀환하고 반복한다.
무도한 정치권력, 뻔뻔한 행정관료들은 블랙리스트의 제단 위에 다시 등장하고, 반블랙리스트 문화 행동의 바리케이드를 조롱하듯 타고 넘는다. 여전히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지고, 정권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풍자하면 당장 정치권력이 행정관료를 엄호하면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여왕처럼 "저놈의 목을 쳐라"라고 명령한다.
선제적 블랙리스트화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개인이나 단체를 미리 가지고 있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보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는 해당 지원기관의 예산 자체를 미리 삭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2022년 10월 5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으로부터 부천국제만화축제 수상작인 '윤석열차' 관련한 질의를 받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지원하되 권력을 비판하면 배제하겠다"는 기존의 블랙리스트 작동 방식은 애초에 배제할 필요도 없게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선제적 블랙리스트화"하고 있다. 예산이 없으면 애초에 작동시킬 권력의 블랙리스트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판하는 자들에게 아예 국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려는 "선제적 블랙리스트화"가 더 심각한 블랙리스트가 아닐까? 그들은 예산과 행정을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고 사전에 지원의 싹부터 거세해 버린다. 블랙리스트는 비가시적이고 내면화하면서 다시 작동한다. 그들에게 블랙리스트가 반복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위임받은 정치권력의 오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은 선출된 권력이다. 정치권력은 4년에서 5년 선거를 통해 권력 행사의 여부를 국민으로부터 심판받는다. 정치적 권력 집단은 그래서 자신에게 표가 될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보수 정치권력 집단은 예술인이 대체로 진보적이어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수 정치인이 집권하게 되면 예술인의 지원에 대해 항상 전제를 단다. 가령 국가를 비판하는 예술인들은 지원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진보적인 예술인들은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라기보다는 행동가에 가깝다는 편견을 갖는다.
심지어는 진보적인 현장 예술인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근근이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실력 있는 예술가들의 지원을 상대적으로 방해한다는 생각도 한다. 정치권력은 그래서 예술가들에 대한 세밀하고 보편적인 지원에 부정적이고 이들의 활동에 국가 예산을 차단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것이 위임받은 정치권력이 문화예술계를 대하는 일반적인 통치술이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내세운 가설을 기성 사실화하여 예산의 삭감과 배제가 당연한 것으로 착각한다.
정치권력은 단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집단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이유로 예산 지원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이미 블랙리스트 행위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2022년에 제정된 '예술인 권리보장법' 8조 2항을 위반한다.
'예술인권리보장법' 8조 2항
국가기관등 및 예술지원기관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또는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피부색,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과 관련된 사항, 임신 또는 출산과 관련된 사항,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예술지원사업에서 특정 예술인 또는 예술단체를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럼에도 위임받은 정치권력이 블랙리스트를 반복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들의 가정 혹은 가설이 타당하고 정의롭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이나 가설이 오류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오인을 진실로 믿는 잘못된 정치적 신념 때문이다.
▲ 2022년 4월 14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등 문화예술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전직 장·차관들의 블랙리스트 사태 책임 공무원 징계 중단 청원을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다만 그들은 정치권력의 요구에 복종하여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실행에 가담한 행정관료는 위에서 지시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력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라는 주장은 상급자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스스로 거세한다.
왜냐하면 정년이 보장된 행정관료에게 상부 지시 항명 행위는 스스로 불편할 뿐 아니라, 진급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행정관료는 조직 내 불편함과 신분 상승의 욕망을 위해 명령 복종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명령 복종이 자명하지 않은데도 자명한 것처럼 스스로 정당화하는 논리는 관료주의가 재생산하는 명령의 오인 효과이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과 상통한다. 행정관료 신분의 제도적 지속성과 그들이 정치권력을 핑계 삼아 말하는 명령 복종 불가피성은 블랙리스트 실행을 통상적인 행정 처리로 오인하는 자기방어 기제에 기인한다. 그 오인 효과는 "관료주의는 영원하다"는 신념이 생산하는 것이다.
정치권력과 행정관료의 암묵적 담합
블랙리스트는 정치권력과 행정관료의 이중의 요인효과가 만들어낸 암묵적 담합을 통해 재생산된다. 정치권력은 정치적인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들은 블랙리스트도 통치술의 한 방법이라 말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임에도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국민을 대변하여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은 행정관료를 통해 정치적 행위를 이행한다. 그래서 행정관료의 복종과 동의가 없으면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행정관료는 정치권력이 요구하는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권력 투쟁의 장에 참여한다. 공을 세우고 승진을 하고 정권이 바뀌면 입장 선회하여 또 명령에 복종하면서 정치권력이 임명하는 자리에 앉는다. 행정관료의 도움 없이는 정치권력의 블랙리스트는 작동될 수 없다.
우리가 작게나마 양심 있는 행정관료의 윤리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 암묵적 담합의 철회 가능성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행정관료이다. 문화와 예술을 대하는 정치권력의 윤리적 성찰도 중요하지만, 정치권력의 부당한 지시에 맞서 저항할 줄 아는 행정관료의 도덕적 양심도 중요하다.
저항이 없으면 블랙리스트도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저항이 없으면 블랙리스트는 무의식화, 내면화한다. 자기검열과 침묵이야말로 정치적 블랙리스트를 개인화하는 행위이다. 이 역설적인 말은 예술인들의 저항을 촉발시킨다. 예술인의 현장의 목소리는 정치권력과 행정관료의 암묵적 담합이 재생산하는 포스트 블랙리스트의 사태를 철회시키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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