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준, 에드워드 리를 흐뭇하게 바라볼 한 사람
[임혜은 기자]
얼마만의 탈진모드 정주행인가. 이틀 만에 12화를 다 봐버렸다. 각자 폰 삼매경에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거실에 모여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을 시청했다.
이번 시리즈는 공개 당일부터 3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중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더불어 외식업계도 예약 급증으로 들썩이고 있고, 참여 셰프들의 인기는 스타급 배우 부럽지 않다.
광고나 개그 프로그램도 <흑백요리사> 패러디가 한창이다. 바야흐로 흑백요리사 열풍이다. 이 바람은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K푸드 돌풍의 화룡점정이 되고 있다. 그 속에 드리워진 손때 묻은 노스텔지어가 있었으니, 바로 'K할머니'다.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화면 갈무리 |
ⓒ 넷플릭스 |
안성재 셰프의 할머니는 이북 출신으로, 궁중요리 전수자이다. 어린 시절, 매일 약과를 만들어 파느라 집안은 늘 기름과 생강 냄새로 진동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 냄새가 너무도 싫었지만, 지금은 그립기만 하다고.
그때 접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토대로 만든 레스토랑 '모수'의 디저트가 바로 꽃 모양 약과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알큰하게 스며든 생강 냄새는 안성재 셰프만의 요리에 독특한 향기를 드리울 것이다.
▲ <흑백요리사> 나폴리 맛피아 사진: 넷플릭스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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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배추만두는 할머니의 동전지갑을, 파스타는 할머니가 자주 드시던 알사탕 모양을 착안해 만들었다. 어린 권성준 셰프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던 증조할머니의 손길. 그 투박한 손으로 쌈짓돈을 꺼내 손자의 여린 손안에 용돈을 쥐어 주었을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이답지 않게 강직한 권성준 셰프의 언행에서 그때 그 할머니의 단단한 사랑이 느껴진다.
▲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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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시리즈에서 모든 요리를 한식에 기반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며 역대급 서사를 선사하기도 했다. 특히, 남은 떡볶이 3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만든 세미프레도를 통해 한국 음식의 풍족함과 사랑, 배려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는 찡한 울림을 주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셰프일뿐 아니라 레스토랑 내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단체를 설립하여 여성운동, 노동운동 등을 펼친 인권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출연 이유를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파도 파도 미담뿐인 이 남자가 내 마음속엔 '한국사람 이균'으로 남았다.
▲ <흑백요리사> 철가방 요리사 사진: 넷플릭스 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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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2:0으로 이겼지만 여경래 셰프를 향해 큰절을 올리던 장면도 뭉클했다. 임태훈 셰프는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보육원에 가게 되었고, 2년 가까이 그곳에서 지내다가 할머니가 데리러 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 전단 돌리기, 음식 배달 등의 일을 하며 살림을 도왔다. 탈락을 앞두고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저를 키워준 할머니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는데 편집돼 아쉬웠다는 임태훈 셰프.
자신의 소장품이기도 한 진짜 철가방을 들고 첫 화에 등장해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던 그의 씩씩한 웃음은 할머니의 무한신뢰 덕분이 아닐까.
초딩 입맛 사로잡은 조리사 손맛
<흑백요리사> 속 셰프들의 레스토랑 예약은 연일 매진 사례다. 그러나 자신의 가게가 없어 유일하게 맛볼 기회조차 없는 셰프가 있으니, 바로 '급식대가' 이미영씨다. 15년 동안 초등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하고 올해 정년퇴직한 그녀는 모든 요리를 초스피드로 끝내고 심사 전까지 고고한 여유를 누린 유일한 요리사이기도 하다.
흑백 팀전에서 첫 번째 테이스팅 후 재료를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했을 때 "그거 뭐 써는 데 몇 분 걸린다고"라는 어록을 남긴 진정한 재야의 고수답다. 조리사 근무 당시, 초등학생들이 음식을 맛보며 '우주만큼 사랑합니다'라는 편지를 써준 적도 있다고 하니, 어찌 아이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꿀맛 나게 만들지 않을 수 있으랴. 식판 가득 퍼준 것은 손주들을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할머니댁에 가면 마당 한구석엔 가마솥이 놓여 있었다. 그 큰 솥에 끓여낸 재첩국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뽀얀 국물에 부추를 한 움큼 썰어 넣으면 시원한 재첩국이 완성된다. 손톱 한만 조개를 혀로 오물거리며 까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호박과 양파를 넣어 고추장에 버무린 재첩 무침이 밥상 위에 오르면 식구들의 숟가락도 덩달아 바빠지곤 했다. 그 맛이 그리워 어른이 돼서 유명 식당에 가 먹어 보았지만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순 없었다.
아흔이 넘어 정신이 흐려진 어느날, 요강 안에 걸레와 신발을 넣고 우리집에 데려다 달라며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계시던 나의 할머니. 평생 낮은 자리에서 집안 식구들을 위해 쓸고 닦았던 세월을 몸은 기억하고 있던 것인가. "김치에 밥 한 숟갈 먹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요양병원 침대 위에서 눈을 감으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산업화와 민주화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그늘 아래 한 떨기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녹여낸 대한민국의 할머니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가슴은 뜨듯했고, 우리의 식탁은 아름다웠다. <흑백요리사> 속 셰프들의 서사는 우리 모두의 서사가 되어, K푸드의 국물이 되어 이제 전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녹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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