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호황인데…반도체 역대급 실적의 역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 국면에 진입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가 폭증했고, 이에 따라 제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최근에는 낸드 공급 부족 현상까지 나타나며 공급자 우위 구조가 공고해졌다.
공급 물량이 늘고 제품 가격이 올라가며 메모리 반도체 업체는 역대급 실적을 거두고 있다. 올 1분기 삼성전자 잠정 영업이익은 57조2000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755% 오른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다. 오는 4월 23일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할 SK하이닉스도 만만치 않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월 들어 SK하이닉스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새로 낸 미래에셋·유안타·키움·흥국·KB증권은 일제히 40조원 이상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합산 영업이익 500조원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두 회사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삼성전자 300조원, SK하이닉스 198조원이다.
하지만 호황 속 어두운 이면도 있다. 내부에서는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는 납품 단가 압박에 따른 소부장 업체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제기된다. 주식 시장에서는 반도체 회사 실적이 급등하는 가운데, 주가에 적용되는 배수(멀티플)는 낮아지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히려 부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장 깬 SK하이닉스
역대급 호황을 맞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막대한 이익의 성과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 실적이 급증하며 성과급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치는 높아졌지만, 보상 기준과 지급 방식에 대한 불만이 생기며 노사 간 긴장이 확대됐다.
먼저 칼을 빼든 건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기존 기본급 1000%로 제한된 성과급 상한을 폐지했다. 그러면서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만약 SK하이닉스가 증권사 추정치처럼 영업이익 198조원을 달성하면 PS 재원은 19조8000억원 규모다. 이를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임직원 수 3만4500명으로 나누면 성과급은 평균 6억원가량 지급될 것으로 계산된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자 삼성전자 노동조합 또한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삼성전자 노조는 최근 약 40조5000억원 규모를 성과급 재원으로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연간 반도체 영업이익을 270조원으로 가정할 때, 영업이익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증권가 추정치처럼 올해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300조원 달성 시 노조 요구대로라면 성과급만 최대 4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이마저도 교섭 과정에서 성과급 요구 규모를 기존 영업이익의 20%에서 15% 수준으로 오히려 낮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임직원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 부담스럽다. 성과를 임직원과 어느 정도 나누는 건 당연하지만, 제조 업체인 만큼 연구개발(R&D)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성과를 주주와 나누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 45조원은 지난해 R&D 투자비용 37조7000억원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또한 지난해 삼성전자가 주주 약 400만명에게 지급한 배당금(약 11조1000억원)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외부 시선도 곱지 않다. 임직원의 성과급 요구가 무리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지난 4월 15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는 노조의 과도한 성과급 요구를 비판하는 일반 시민의 1인 시위도 벌어졌다. 자신을 ‘삼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60대 남성은 “현재 삼성전자 성과가 노조만의 초과 능력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라며 “때로는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노조를 공개 비판했다.
성과급 지급 문제를 원활하게 풀기 위해서는 회사가 여러 요소를 고려해 체계적인 보상 지급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성과가 났을 때 보상은 확대하되, 기준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삼성전자처럼 대규모 보너스 요구가 주주와 투자자 반발을 사는 경우, 일회성 협상보다 업황·현금흐름·주주환원과 관련해 보상 지급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납품 단가 인하 압박 지속
반도체가 호황이라지만 메모리에만 국한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동안 이들에 제품을 공급하는 일부 소부장 업체는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며 구조조정에 나서는 사례까지 등장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까지 주요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과 단가 협상을 완료했다. 일반적으로 두 회사는 연말연시 소재·부품 기업과 연간 제품 공급에 대한 단가 협상을 진행한다. 협상 결과, 반도체 호황 온기가 아직 소부장까지 확산하지 않은 분위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납품하는 상당수 소부장 기업의 제품 단가가 인하 또는 동결된 것으로 파악된다.
소부장 기업의 목소리는 명확하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는 오르는데, 납품 단가는 오히려 낮아지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주장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거래 구조상 가격 인하 요구에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을(乙)’ 위치인 소부장 업체는 ‘갑(甲)’인 대기업과 거래에서 협상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단가는 낮춰야 하는 압박이 거세다. 일부 업체는 이익률 악화에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한 소부장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단가 인상 얘기는 꺼낼 엄두도 못 낸다”며 “아무리 R&D에 투자하고 성능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는 매년 가격을 깎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어 “수익성 악화에 지난해 임원 절반 정도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품질을 유지하려면 소부장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법으로는 계약 구조 개선이 거론된다. 원가연동 계약과 장기 공급 계약을 확대하고, 대기업과 교섭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서지용 교수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3~5년 장기 계약과 사후 정산형 가격 방식을 확대하는 흐름”이라며 “이를 소부장까지 확장하면 납품 단가 압박을 줄이고 투자 확대와 품질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소부장 업체가 제품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 중요한 건 양보다 질”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업체도 국산화를 통한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중요한 만큼 테스트베드를 확대하고 소부장 전략 육성 지원을 통해 생태계를 견고하게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메모리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도 대체가 어려운 제품에 대해서는 마냥 단가 인하 압력을 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부각
주식 시장에서는 또 다른 역설이 나타난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주당순이익(EPS)은 계속해서 상향 조정되는데, 주가수익비율(PER)은 낮아지는 현상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낮은 멀티플이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PER은 각각 4.8배, 3.9배에 불과하다. 내년 실적 추정치를 기준으로 하면 각각 4배, 3.1배까지 떨어진다. 경쟁사 마이크론(약 22배)은 물론, 반도체 업종 평균(약 24배)과 비교해 차이가 크다.
그동안 국내 증시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정부 들어 상법 개정 등 증시 활성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며 주가지수가 치솟았다. 4월 16일 한국거래소 종가 기준 코스피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2025년 6월 4일 이후 125% 상승했다.
다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여부에는 아직 물음표가 붙는다. 최근 코스피 PER은 약 7배 수준으로, 역대급 저점을 찍고 있다. 지난 10년간 코스피 PER이 8배를 밑돈 건 올해 포함 단 세 차례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 분쟁이 발생한 2018년 10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3월이 전부다.
증권가에서는 거시경제 환경에 따른 일시적 저평가일 뿐, 외부 환경이 개선되면 멀티플 상향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이란 사태로 거시경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자가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며 나타난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 업체 이익이 급증하는 국면에서 시장이 성장 지속 가능성을 더 엄격하게 보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급격히 상향 조정된 반도체 기업 실적 추정치가 기업가치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어느 정도 생기면서 낮은 PER이 형성됐다고 판단된다”며 “이 상황에서 이란 전쟁이라는 거시경제 불확실성까지 발생해 주가에 악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일부 진정되면 시장이 높아진 실적 추정치를 주가에 반영할 것”이라며 “주가 상승과 함께 PER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6호(2026.04.20~04.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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