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타주는 커피 조심해야'... '커피사' 사건의 파장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서울시는 6일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 공무원의 퇴폐 및 위생업소 감시요원제를 실시, 시 산하 전 공무원이 한 달에 적어도 한 건 이상 씩 위반업소 적발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했다."
1985년 11월 6일 자 <동아일보>가 전한 내용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이 제도 실시 이후에 의무 보고 실적이 나쁜 직원이나 부서의 장은 위반업소 정화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 문책키로 했다. 단속 적용 대상 업소 1순위는 음란비디오 상영 다방이었고 2위는 퇴폐이발소였다. 이어서 쇠고기 고시가격 위반 정육점, 쇠고기 정량 표시제 불이행 음식점 등이 대상이었다. 서울시는 이미 담당 공무원을 통한 단속에서 시내 6199개 이발소 중 2157개를 퇴폐업소로 적발한 상태였다. 이발소의 35%가 여자 면도사를 두고 퇴폐를 강요하던 시절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억압은 극에 달해 있었고, 군사정권을 지지하여 온 미국에 대한 대학생들의 저항이 본격화되었다.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에 이어 1985년 5월 23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서울 지역 5개 대학교 학생 70여 명이 반미구호를 외치며 서울 소재 미국문화원을 점거하여 사흘간 농성을 벌였다.
▲ 금품을 털기 위해 쥐약을 탄 커피를 먹여 주유소 종업원을 살해한 '커피사' 사건이 터져 남이 타주는 커피도 조심해야 하는 불신 풍조를 조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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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범죄와의 전쟁으로 가는 길목은 이렇게 어둡고 불안했다. 힘없는 시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스톱을 치고, 중소도시를 넘어 농어촌 지역까지 티켓다방이 넘쳐났다. 다방에서 쿠폰과 같은 티켓을 구입한 후 커피를 들고 배달 온 여성과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변태 영업 형태였다. 문제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넘어 성매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거세진 국산차 마시기 운동, 커피전문점 문화의 확대에 따른 전통 다방의 자구책이자 궤도 이탈이었다.
북한에도 커피숍이
이런 혼란한 시대에 남북적십자회담 제9차 본회의가 북한 평양에서 이루어졌다.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7차례 열렸다 중단된 회담이 재개된 계기는 1984년 9월 서울과 경기 지역 폭우로 인한 수재민 발생이었다. 북한의 조선적십자사가 수재민 구호물자를 보내오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85년 5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8차 회담, 그리고 8월 27~28 양일간 평양에서 열린 제9차 회담의 합의에 따라 9월 20일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이산가족의 고향 방문과 상봉이 이루어졌다. 남북 예술단 상호 교차 공연도 이루어졌다. 통일의 문이 열리는 분위기였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 시내의 모습과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이 비록 제한된 내용이지만 신문 보도와 TV 화면을 통해 남쪽에 전해졌다. 처음으로 북한의 다방과 커피 뉴스가 전해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마치 해외토픽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남쪽에서는 외채절감운동의 하나로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에 북에는 커피숍에 등장하고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했다는 뉴스였다.
▲ 2016년 3월31일 북한 평양의 코피 숍 '금릉' 입구에 한 여성 바리스타가 서 있는 모습. 평양은 스타벅스를 아직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의 몇 안되는 주요 도시이기는 하지만 이제 평양에도 커피점이 넘쳐나고 있다고. |
ⓒ AP/연합뉴스 |
<조선일보>는 8월 9일 고향방문단 행사에 앞서 북한의 실상을 전하면서 다시 창광산여관 커피숍을 소개했다. 이 커피숍은 북의 '대외봉사총국'과 '조총련상공인연합회' 부회장과의 합작으로 설치되었다는 소식, 개점 축하 연설에서 북한 당국자는 '합영법'을 마련해 주고 커피점까지 합영토록 배려해 준 김정일에게 최대의 영광과 감사를 보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이 커피숍 소식을 전하면서 <조선일보>는 "북한도 무언가 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장차 북한 내부의 모순을 비판하는 점화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논평도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7월 13일 방콕에서 발행되는 영자 신문 <더 네이션The Nation>의 보도를 인용하여 북한이 태국으로부터 커피를 수입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취재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동아일보> 기자는 '평양에서의 3박 4일'을 전하면서 평양 고려호텔에서 마신 커피맛을 이렇게 얘기했다. "커피맛은 우리나라에서 과거 나왔던 첫 국산 커피맛이었다. 프림을 주지 않아서 달라고 했더니 접대원이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접대원이 가져온 것은 우유였고, 커피에 넣으니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북에는 아직 커피가 대중화되지 않은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또 다른 기자는 9월 24일 '북한 75시간'이라는 제목의 취재기를 통해 북한에서 만든 코피잔에까지 "한글과 영어로 함께 표기"했다며 제한된 수준이지만 개방으로 나아가는 북의 의지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회담에 참석했던 <조선일보> 기자 또한 9월 7일 자에 '평양은 변하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평양에 콜라와 함께 커피도 있었다는 소식을 매우 신기한 듯 전했다. 고려호텔의 아침 식사 때마다 뜨거운 커피가 제공되었다는 것과 회의장에서는 'Coffee with Milk'라는 영어 표기가 선명한 캔커피가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이 기자 또한 개방의 몸짓을 시작한 것이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덧붙였다. 한 세대 동안 닫혀있던 북의 모습을 보며, 개방된 남쪽의 발전에서 긍지를 느끼고 있던 우리 언론의 모습이었다.
개방사회를 자랑하던 남쪽에서 1985년 당시 야쿠르트 배달원 55세, 술집 마담 50세, 해녀 50세, 화장품 외판원 45세, 전화교환원 43세, 다방 마담 40세, 버스 안내양 27세 등이 각급 법원에서 나온 여성 직업 정년 관련 판례들이었다.
1985년 4월 서울민사지법이 교통사고를 당한 23세 된 여직원의 손해배당청구심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6세이며,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통례"라는 이유로 26세까지의 직장 수입만을 인정했다. 6월에는 ' 20세 정년'을 항의하다 매를 맞고 병원에 누워있는 버스 안내양 조모양(23세)의 소식이 전해졌다. <경향신문> 6월 8일 자였다. 버스회사 측은 당시 관행대로 18~20세 사이의 안내양이 회사에 애착심도 많고 일도 열심히 하며, 20세가 넘어서면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로 안내양의 정년을 20세로 정해 놓은 것이었다. 동생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취업한 것이 발각된 조양은 항의를 하였고, 이 과정에서 구타를 당한 사건이었다.
요즘 북한에서도 커피와 커피숍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금릉커피숍, 련광커피숍, Café Sacher 등 유명 카페 이름도 들린다. 모두 외신을 통해서다. 1985년 이전으로 돌아간 듯, 세계에서 북녘을 가장 모르는 것은 우리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1985년 기사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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