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그랜저 이겨보자"… 기아 K8, 애매한 위치에도 지켜낸 고급감
플래그십 아니지만 플래그십 만큼 힘줬다
강력해진 안전 보조 사양, 호불호 없앤 내외관
K9에 밀려 플래그십의 아성은 가질 수 없고, 형 격인 현대차 그랜저와는 같은 크기 탓에 항상 경쟁자로 거론되는 비운의 기아 K8. 올해 3년 만의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작정이라도 한 듯 거대한 몸매와 고급감으로 그랜저의 판매량을 추격하고 나섰다.
호불호 갈리던 외관을 누구나 좋아할 법한 보편적 얼굴로 갈아엎고, 각종 편의사양과 첨단 사양을 플래그십 수준으로 갖춘 것이 특징이다. 올해는 풀체인지 1년에 가까워진 그랜저를 '신차 효과'로 이겨볼 수 있을까.
기아 더 뉴 K8 하이브리드를 직접 시승해봤다. 국내에서 약 500km를 고속도로부터 막히는 시내 도로까지 다양한 구간에서 달려봤다.시승 모델은 K8 하이브리드 시그니처 트림으로, 가격은 5679만원이다.
기아 K8은 보자마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몰라보게 바뀐 얼굴을 하고 있다. 기존 K8이 호불호 갈리는 외관일지라도 스포티하고 젊은 감각을 내세웠다면, 이번엔 아예 중장년층을 공략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중후해졌다. 부분변경이면서 풀체인지 수준의 변화를 이뤄냈다.
K8의 이미지 변화는 두툼해진 두께에서부터 확 와닿는다. 기존에 보닛이 얄쌍하게 떨어지면서 화려한 그릴과 함께 젊은 느낌을 냈지만, 이번 부분변경을 거치면서는 보닛이 거의 직각으로 뭉툭하게 떨어지며 인상이 한층 점잖아졌다.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화려하게 펼쳐졌던 기존 그릴은 심심할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본닛 끝부분이 가로로 길게 정리되면서 그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같이 매끈해졌고, 대신 기아 패밀리룩인 ㄱ자 헤드램프가 자칫 심심할 뻔 했던 얼굴에 포인트를 줬다. 기존 K8의 외관을 화려한 그릴 탓에 불호라고 느낀 이들도 이번 모델에서는 마음을 내려놔도 되겠다.
측면으로 돌아서면 얼굴에서 느껴졌던 중후함이 조금은 사라진다. 마치 쿠페 모델처럼 깊게 깎아낸 루프라인 덕분이다. 얼굴과 달리 측면에서는 중장년층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듯 스포티한 맛이 더해지면서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 후면 리어램프를 깊게 처리해 측면에서도 선명하게 리어램프의 끝부분이 보이는데, 여기에서도 젊은 느낌이 더해지는 듯 하다.
후면부는 전면부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반영하면서 수미상관의 법칙을 온전히 따랐다. 기존 리어램프의 특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범퍼가 통통하게 차오르면서 볼륨감과 덩치가 더욱 커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처리된 후면과 날렵하게 내려오는 뒷 유리창이 잘 어우러진다.
풀체인지 수준의 외관에 만족스러운 마음을 갖고 차 문을 열어젖혔더니,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뻗은 디스플레이와 터치식 공조 조절부, 널찍한 내부까지 기존의 것을 모두 유지했기 때문이다. 내부를 들여다보고나서야 '부분변경' 모델이란 점이 실감났다.
내부는 기어노브가 변경됐다거나, 디스플레이가 추가됐다거나, 물리 버튼이 들어가는 큰 변화는 주지 않았지만 곳곳의 소재를 바꿔 고급감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시트의 세로줄이 촘촘해지면서 가죽 질감을 살렸고, 크래시 패드 상단부와 무릎이 닿는 콘솔 하단 측면부에 부드러운 느낌의 소재가 적용됐다. 스티어링휠 중앙에 크게 위치했던 기아 엠블럼은 오른쪽으로 치우쳐지면서 여백을 살렸다.
기아가 K8 전면에서 추구했던 정제된 고급감은 앰비언트라이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타 고급 차량에서 이곳 저곳 화려하게 앰비언트라이트를 배치하는 것과 달리 K8은 양쪽 도어와 크래시패드 중앙까지 보일듯 말듯 얇게 배치했다. 대단히 고급스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화려함보다는 정제된 고급감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괜찮은 변화다.
다만 외관 만큼 큰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겠다. 특히 외관의 호불호를 없앤 것 처럼, 기아 차량의 대표적인 호불호 요소인 터치식 공조 조절부 대신 물리버튼이 들어갔다면 더 좋았을 듯 하다. 현대차 그랜저 내부에 적당한 물리버튼들이 배치된 것 처럼 말이다.
달리기를 할 땐 어떨까. 운전석에 앉아 본격적으로 주행을 시작하자, 더 뉴 K8의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운전 욕심이 커진 보조 기능 때문이다.
K8은 전작 대비 차선 중앙을 유지해주는 보조 기능이 강화됐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을 켜지 않았음에도 어디에서나 차선을 고집스럽게 잡아준다. 스티어링휠의 제어 강도도 강해졌다.
기본적으로 차선유지가 되게 설정됐는데, 이전 버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운전자가 운전을 오롯이 하는게 아니라 차랑 같이 하는 기분을 느끼기 해준다. 여기에 주행보조 옵션을 켜면 운전자가 가고싶어도 갈수 없을 정도로 스티어링휠이 단단하게 잡아끈다. 기존보다 탄탄하게 잡아준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이 기능은 직선 도로에선 충분한 만족감을 줬다. 흔들림 없이 차선 유지를 정확하게 해내면서 자신감을 높여주기 충분했다. 잠시 커피를 집어들 때, 룸미러를 볼때, 화면에 버튼 하나를 누를 때도 시선을 떼기 무서운 초보자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고마운 기능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전구간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어댑티드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한 상태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완만한 커브는 잘 돌아내지만 급커브 구간에 진입하자 차선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선 중앙을 정확하게 잡아내야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가운데를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애쓰는 느낌이 역력했다.
차선 내에서만 움직인다면 차선 끝에 살짝 가까워져도 여유를 줬던 기존 버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차량의 고집이 강해진 탓에 스티어링휠이 묵직해지면서 운전자가 원하는대로 조작하는 데에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마치 차와 '내가 맞다'고 서로 우기면서 싸우는 기분이다.
강력해진 고집을 제외하면 차량의 성능은 흠잡을 곳이 없다.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 이상 하이브리드차 특유의 울컥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연비는 감격스러울 정도다. 시승을 모두 마친 후 확인한 연비는 18.9km/L. 커다란 몸집을 하고도 120km를 달리는 동안 한칸도 닳지 않는 기적을 보여줬다.
K8을 플래그십이라 부를 수 없게 만드는 K9의 단종설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이번 부분변경을 거친 K8은 이를 어느정도는 감안한 모습이었다. 플래그십이라면 화려하고 젊은 얼굴보다는 중후하고 점잖은 디자인이 어울리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면에서 이번 K8은 어느순간 플래그십을 떠맡는다 해도 충분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형 격인 현대차 그랜저에 가려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한 K8이 올해는 그랜저를 넘어설 준비를 단단히 마친 듯 했다. 그랜저보다 평범하고 잘생긴 얼굴, 그랜저만큼 커진 크기, 그만큼 높아진 가격. 준대형 세단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제 K8을 선택지에 당당히 올려도 좋겠다.
▲타깃
-준대형 세단, 그랜저는 흔해서 싫고 수입차는 꺼려진다면
-패밀리카가 꼭 SUV일 필요는 없다
▲주의할 점
-얼굴 값으로 갑자기 올라버린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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